지자제는 돈선거 안 되게(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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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앙정치권은 물론 지방에서도 벌써부터 지방의회선거 열기로 들떠 있는 현상에 대해 우리는 매우 우려하고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새해예산안과 추곡가수매동의안 등을 건성건성 심의했던 여야는 국회 폐회와 동시에 지자제선거대책 체제로 기민하게 전환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입후보 지망자들도 각 지역에서 이미 얼굴알리기에 과열현상마저 빚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편량이 평년에 비해 급증하고,뷔페예약이 꽉 차고 있으며,인쇄소는 달력·연하장·명함주문이 쇄도해 밤샘작업을 하고 있다는 보도다.
3월 중으로 예정된 선거일자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같은 과열현상은 한층 심화될 게 틀림없다. 30년 만에 부활되는 지자제인 만큼 어느 정도의 과열현상과 부작용은 사실 막을래야 막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부작용의 최소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정부와 유권자가 정당과 출마후보자들의 과열·타락활동을 견제·감시하는데 앞장서고 정당과 후보당사자들 스스로도 조기과열현상을 자제하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지자제선거는 이 나라의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에 결정적 요인이 되기 때문에 그 첫 선거가 지금까지 보아온 금권·타락·비리의 욕된 전통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지자제 자체의 소중한 효용까지 백안시되는 상황이 올까 우려되는 것이다.
따라서 각 정당이 앞장서 지방자치의 중앙예속화를 꾀하는 듯한 선거전략은 처음부터 바로 잡아져야 하고 우리 경제에 주름살을 더하게 할 금권선거 양태는 사라져야 된다. 또 지자제가 지방주민의 자치권 행사임을 깊이 인식,광역의회선거에는 중앙당이 지원하되 지방당의 철저한 주도 아래 맡겨져야 한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여측이 후보자의 경선방안마저 제기하는 판에 야측이 중앙에서 후보자를 공천하겠다는 발상을 고수하고 있음은 적이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기초의회선거에 정당이 개입하는 일은 결단코 배격돼야 한다. 선관위와 사법당국은 그런 사례가 드러나면 엄정한 조처를 취해야 할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정부·정당·유권자들은 2만명쯤으로 예상되는 후보자들의 금권·타락·탈법 선거양상을 막는 제도적 장치와 감시기능을 마련하는 데 진력해야 한다.
일부에선 다가올 선거에 풀릴 선거자금을 2조∼4조원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뜩이나 새해 경제전망이 어둡고 특히 제조업의 투자여건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 그같은 대규모 소모성 자금이 물가 및 사회에 미칠 교란요인과 심리적 영향을 모두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지자제 실시로 향후 20년간 29번의 각종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예상임을 직시,이번 지자제선거만은 철저한 선거공영제로 돈 안 드는 선거풍토를 정착시키는 계기로 삼아야만 한다. 그런 측면에서도 광역·기초의회선거의 분리방안에 우리는 찬성할 수 없다.
유권자들은 돈을 뿌리는 후보자들이 당선되면 결국은 들어간 돈을 보상받기 위해 이권에 개입할 가망성이 높다는 점을 인식,그런 부류에 대해선 철저히 고발·거부하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주민복리와 주민자치를 위한 지자제가 일부 지방의원 개인들의 복리와 중앙정치를 위한 도구 및 수단으로 전락하는 사태만은 사전에 결단코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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