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번엔 북한판 이스칸데르…러·하마스 '단비'된 김정은 무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일(현지시가)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 이후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 주택가에서 발견된 미사일 잔해를 우크라이나군 폭발물 처리반이 수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일(현지시가)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 이후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 주택가에서 발견된 미사일 잔해를 우크라이나군 폭발물 처리반이 수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북동부의 격전지 하르키우에서 북한제로 추정되는 미사일 파편이 발견된 가운데 이스라엘군이 수거한 미사일 잔재에도 한글이 포함된 로트번호(제조번호) 등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유럽과 중동에서 전개되는 ‘두 개의 전쟁’에서 각각 러시아,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에 무기를 공깁하는 ‘어둠의 무기상’ 역할을 한다는 추정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지난해 11월 6일 중앙일보 1·6면〉

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하르키우 드미트로 추벤코 검찰청 대변인은 “지난 1월 2일 강타한 여러 미사일 중 시각적, 기술적으로 러시아 모델과 다른 것이 발견됐다”고 언론에 설명했다. 그는 “이 미사일은 생산 방식이 현대적이지 않고, 이전의 표준적인 이스칸데르와 차이가 있었다”면서 “북한의 미사일과 유사하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개발한 이스칸데르와 유사하지만, 직경이 약간 더 크고 내부 노즐과 전기 배선, 후면 부품에서 차이가 있었다는 근거 등도 제시했다.

우크라이나가 공개한 무기는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인 'KN-23'으로 추정된다. KN-23은 러시아가 개발한 이스칸데르(9K720, 나토명 SS26 스톤)을 본 따 만든 것으로, 최대 사거리는 400㎞ 가량이다. 한반도 전역이 타격권에 들어간다. 러시아의 이스칸데르는 최대 사거리 500㎞의 전술탄도미사일로 정밀 유도가 가능하고 전술 핵탄두도 탑재할 수 있다. 이동식 발사대(TEL)에서 쏠 수 있어 기동성과 생존성이 높은 편이다.

우크라이나가 확보한 현장 증거들은 전날 미국 백악관이 “러시아가 북한 미사일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고 밝힌 '작심 브리핑'의 배경이 됐을 수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기자들에게 러시아 접경 지대에서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를 향해 발사된 북한제 미사일의 탄착 지점을 표시한 지도도 공개했다.

北무기, 포탄·미사일 목마른 러시아에 단비됐나

지난해 8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수 공장을 시찰할 당시 공개된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로 추정되는 무기 사진(왼쪽)과 지난 2일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에 러시아가 발사한 미사일 잔재의 모습(오른쪽). 군사 전문 블로그와 소셜미디어(SNS) 등에는 "유사한 지점이 보인다"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X(옛 트위터) 계정 @IntelCatalyst 캡처

지난해 8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수 공장을 시찰할 당시 공개된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로 추정되는 무기 사진(왼쪽)과 지난 2일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에 러시아가 발사한 미사일 잔재의 모습(오른쪽). 군사 전문 블로그와 소셜미디어(SNS) 등에는 "유사한 지점이 보인다"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X(옛 트위터) 계정 @IntelCatalyst 캡처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러시아는 포탄 한 발, 미사일 한 발이 아쉬운 상황이다. 지난해 여름 시작된 우크라이나의 대반격 이후 양측의 전투는 ‘1m 땅 빼앗기 싸움’으로 비유될 만큼 치열하다. 러시아는 지난해 12월 30일과 지난 2일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와 하르키우 등에 200발이 넘는 미사일을 쐈다. 그간 미사일 재고 부족 등을 이유로 무인기(드론)를 활용한 공습에 치중해 온 러시아가 대대적인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자 서방과 우크라이나에선 경각심이 크게 고조된 상태다. 그 배경에 북한의 미사일 제공이 역할을 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 중동에서 이스라엘 전쟁이 터진 이후 미국이 ‘두 개의 전선’을 지원하게 되면서 러시아가 이를 틈타 전세를 압도하려는 작전에 나섰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미국·우크라이나가 잇따라 북한의 무기 지원 증거를 언론에 공개한 건, 북한이 러시아에 건넨 무기들이 전장에서 적잖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하마스·후티 반군 미사일 파편서도 한글 발견”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이 탄도미사일과 미사일 발사대를 러시아에 공급했으며, 최근 우크라이나 공격에 사용됐다"고 밝혔다. 커비 조정관은 "이는 중대하며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AFP=연합뉴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이 탄도미사일과 미사일 발사대를 러시아에 공급했으며, 최근 우크라이나 공격에 사용됐다"고 밝혔다. 커비 조정관은 "이는 중대하며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AFP=연합뉴스

북한은 오래 전부터 중동 이슬람 무장정파·단체에게 무기를 제공하는 ‘큰 손’으로 활동해왔다. 앞서 지난 4일 미국의소리(VOA)는 “하마스와 후티 반군이 이스라엘을 향해 사용한 무기의 파편에서 한글로 보이는 식별 표시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VOA가 입수한 사진들을 보면 이스라엘군이 수거한 대인 살상용 로켓추진유탄 발사기인 F-7의 신관(기폭 장치)에 ‘비저-7류’, ‘시8-80-53’ 등의 식별 글자가 적혀 있다. 아울러 VOA는 후티 반군이 지난해 10월 31일 발사했다가 요르단에 의해 요격된 순항 미사일의 엔진 덮개로 추정되는 물체에서 ‘1025나’라고 유성펜으로 적힌 글씨가 선명했다고 전했다. 하마스에 대한 원거리 지원 사격에 나선 후티 반군 역시 북한제 무기를 들여온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중동 예멘의 후티 반군이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한 순항미사일의 잔재에서 '1025나'라는 한글이 적혀 있었다고 미국의소리(VOA)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VOA 홈페이지 캡처

지난해 10월 중동 예멘의 후티 반군이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한 순항미사일의 잔재에서 '1025나'라는 한글이 적혀 있었다고 미국의소리(VOA)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VOA 홈페이지 캡처

북한은 그간 하마스 등에 대한 무기 지원과 관련한 국제 사회의 의혹 제기에 “근거 없는 거짓이자 대북 비방 책동”(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이라고 발끈해왔다. 그러나 VOA에 보도된 잔해들은 북한 무기 제공설이 사실임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화력에 비해 열세인 하마스가 지난 10월 7일 과감하게 영토 침투 작전을 벌인 배경엔 이런 북한제 신무기의 획득이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도 나온다.

VOA의 보도와 관련해 미 국무부는 “북한은 이란과 시리아를 포함해 이 지역에 무기를 판매해 온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면서 “이스라엘군이 회수한 F-7 등을 포함해 북한산 무기가 하마스로 이전되는 경로는 다양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