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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따발총, 구식 불새-2…'어둠의 무기상' 김정은 돈버는 방법 [지구촌 위협하는 北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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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월 3~5일 대구경방사포탄 생산 공장을 비롯한 중요군수공장을 현지지도 하면서 '저격무기'를 직접 쏘는 모습.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월 3~5일 대구경방사포탄 생산 공장을 비롯한 중요군수공장을 현지지도 하면서 '저격무기'를 직접 쏘는 모습.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오래된 재래식 무기로 두 개의 전장에서 '어두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9월 직접 방러, 블리다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담한 뒤 다량의 포탄과 탄약을 러시아에 공급 중인 가운데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도 북한산 무기가 쓰이고 있다. 국정원도 김정은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포괄적 지원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한 정황을 파악했는데, 무기 판매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1일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

명분은 '반미 연대'지만, 김정은의 노림수는 돈벌이다. 국제사회의 전방위 제재 등으로 경제난에 빠진 김정은으로서는 '무기 공장'을 본격적으로 가동하며 활로를 찾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또 현대 전장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첨단 무기체계가 아니라 오랜 기간 검은 커넥션을 통해 유통해온 구식 무기가 예상 밖의 특수를 맞으며 불법행위의 집약체인 'NK 방산'이 두 전장을 흔들 수 있는 변수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구소련제 재래식 무기의 '역습'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하마스 대원들이 지난달 초 이스라엘 기습 작전 감행 당시 '58·68식 보총'(구소련 AK-47·AKM 소총 개량)과 로켓추진식 유탄발사기(RPG) 'F-7', 대전차 미사일의 일종인 '불새-2' 등 북한제 무기들을 사용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의 전장에서 노획한 무기들의 모습. 무기에는 북한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뢰와 로켓추진식 수류탄(RPG)인 'F-7'(붉은색 띠)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의 전장에서 노획한 무기들의 모습. 무기에는 북한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뢰와 로켓추진식 수류탄(RPG)인 'F-7'(붉은색 띠)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군 관계자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전장에서 노획한 지뢰와 대전차 유탄발사기, 드론 등의 무기를 언론에 공개하면서 "하마스가 기습 공격에 사용한 무기 가운데 이란산과 북한산이 각각 10%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가자지구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중 이스라엘 공수부대원이 사용한 CH-53D 헬기를 격추하는 등 하마스가 대전차 기능을 넘어 자유자재로 쓰고 있는 '불새-2'는 구소련이 1970년대 대전차 미사일로 개발한 9K111(미국과 NATO는 AT-4 '스피곳'으로 명명)를 들여와 역설계 과정을 거쳐 자체적으로 생산한 모델이다.

하마스가 이번 기습공격에 사용한 무기들은 대부분 10~20년 전에 반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인 38노스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했던 2014년 분쟁 당시 하마스는 북한으로부터 로켓과 군용 통신장비 등 매입했다"며 "레바논계 계열사를 통한 제3자 거래로 우회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확전 변수 '시아 초승달' 모두 北과 무기 커넥션

북한산 무기가 이슬람 무장세력의 손에 들어간 경로는 '불법 무기의 허브'인 이란이 중심이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남포항에서 선적된 무기는 해상에서 불법 환적을 거쳐 이란에 도착한 뒤 예멘-이집트를 거쳐 가자지구와 연결된 국경도시인 라파를 통해 지하터널로 가자지구까지 이동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실제 2009년 12월 북한의 이란행(行) 군수물자가 태국 방콕공항에서 압수된 적도 있다. 하마스 소탕을 위해 가자지구에서 지상전에 돌입한 이스라엘군이 땅굴 파괴를 최우선시하는 것은 군수품 보급을 우선 차단하기 위한 측면도 있는 셈이다.

특히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친이란 시아파 주도의 '시아 초승달 벨트' 세력의 참여 정도가 확전 여부를 판가름할 것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공교롭게도 헤즈볼라(레바논), 키타입헤즈볼라(이라크), 후티 반군(예멘), 이란, 시리아 등이 모두 북한산 무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정보당국은 북한산 무기 수출이 '현재 진행형'일 가능성도 주시 중이다. 국정원은 정보위 보고에서 "과거 북한이 하마스와 헤즈볼라에 대전차무기나 방사포탄 등을 수출한 전례가 있는 만큼 이 지역 무장단체 또는 제3세계 국가에 무기 판매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월 3~5일 중요군수공장을 시찰하는 모습. 그는 초대형 대구경 방사포탄, 저격무기, 전략순항미사일 및 무인공격기 엔진, 미사일 발사대차 생산공장을 집중적으로 둘러봤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월 3~5일 중요군수공장을 시찰하는 모습. 그는 초대형 대구경 방사포탄, 저격무기, 전략순항미사일 및 무인공격기 엔진, 미사일 발사대차 생산공장을 집중적으로 둘러봤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날고기는 첨단무기 위주의 현대전에서 큰 쓸모가 없을 것으로 여겨졌던 구소련 기술 기반의 북한산 재래식 무기들이 변수로 떠오른 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이 확보한 하마스의 무기 중에 '방-122' 포탄은 우크라이나에서도 역시 발견했는데, 구소련제 다연장로켓포에 들어가는 122mm 포탄이다. 두 개의 전장에서 동시에 등장한 '방-122'는 북한제 방사포탄을 뜻하며, 북한이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때 사용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러시아의 인권단체인 '굴라구'가 입수한 러시아의 대북 무기 구매 목록에는 6·25전쟁 당시 '따발총'으로 불리며 수많은 국군 피해를 낳은 PSh-41 기관단총과 RPD 덱탸료프 경기관총,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이 툭하면 들고 나오는 '서울 불바다론'의 뒷배인 170㎜ '주체포'와 포탄 등도 이름을 올렸다.

군 당국도 북한이 러시아에 지원하는 무기·장비류는 ▶상호 호환이 가능한 122㎜ 방사포탄·152㎜ 포탄 등과 T 계열 전차 포탄 ▶방사포·야포·소총·기관총·박격포 ▶휴대용 대공미사일·대전차미사일 등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대남 무력 적화 전력투구 北 '뜻밖의 효과'
북한은 최근까지도 한반도 적화통일을 의미하는 '영토 완정(完整)'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대남적화 의지를 꺾지 않았다. 이를 위해 한국보다 우위를 보이는 재래식 무기의 생산과 실전 훈련에 전력을 다해왔는데, 전쟁이 터지면서 뜻밖에 새로운 수요가 생성되는 효과를 얻은 것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 16일 블라디보스토크 크네비치 군비행장에서 극초음속미사일 킨잘이 장착된 미그-31 전투기를 만져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 16일 블라디보스토크 크네비치 군비행장에서 극초음속미사일 킨잘이 장착된 미그-31 전투기를 만져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실제 러시아에 대한 무기 판매는 김정은의 새로운 돈줄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실제 북한산 무기를 투입하면 자연스럽게 성능에 대한 검증도 이뤄질 것이란 점에서다. 큰손인 러시아를 '바이어'로 잘 확보하면 불법무기에 수요가 있는 반미 성향의 제3세계 국가, 중동의 무장세력 등에 대한 홍보 효과는 배가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사회는 북한발 불법 무기거래를 막기 위한 대한 대책 마련에 분주한 분위기다. 한·미·일 3국 외교장관은 지난달 26일 성명을 통해 "북한이 우크라이나 정부·국민을 대상으로 사용될 군사장비·군수물자를 러시아에 제공하는 걸 강력히 규탄한다"며 양국을 향해 "관련 안보리 결의를 준수하고 이를 위반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앞서 유엔 인도지원조정실(OCHA)은 지난 5월 '북한의 소형무기와 경화기:인식가이드'라는 제목으로 북한의 무기 밀수출 수법과 북한제 무기 식별 방법 등을 담은 가이드북을 발행하기도 했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러 간 무기거래로 북한산 무기의 성능이 검증되면서 북한 무기와 관련 기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며 "김정은이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무기수출을 주요 외화벌이 창구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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