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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기숙이 소리내다

시대정신 대변자가 총선 승리…양극화된 정치 타파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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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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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치러지는 22대 총선을 통해 진영논리와 양극화한 정치를 타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거대 양당에 도전하는 다양한 신당이 추진되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4월 치러지는 22대 총선을 통해 진영논리와 양극화한 정치를 타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거대 양당에 도전하는 다양한 신당이 추진되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미국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최근 높은 비율로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주요 이유로는 정치 양극화에 의한 의회 마비를 꼽았다. 우리 국민도 양극단 정치에 신물을 낸다는 점에서 미국과 다를 바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끌었던 지난 1년 반 남짓의 정치는 암울했다. 대선의 경쟁자였던 두 사람이 양당을 장악하고 연장전을 벌이고 있어 그렇다.

선거는 유권자가 표로 각 정당을 평가하는 가장 정확한 민심의 바로미터다. 모든 선거 결과는 승리한 정당을 통해 시대정신을 대변한다. 반복되는 선거를 통해 정치인은 민심 읽는 법을 배우고, 다음 선거 승리를 위해 시대정신을 담은 비전을 제시한다. 선거가 지속될수록 민주주의는 점점 더 좋은 정치로 발전할 거란 기대가 가능하다. 그런데 왜 민주화 이후 거듭 발전해 온 우리 정치는 최근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을까.

그래픽=박경민 기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최근 급격히 정당의 기능이 쇠퇴한 이유는 선거가 본래 기능인 ‘경쟁’을 상실한 데 있다. 민주화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빈부격차에 따른 거주지 분리(segregation)가 일어났고, 유권자도 2000년대 중반 이후 계층투표를 해왔다. 그 결과 상당수 지역구에선 투표를 해보기도 전에 선거 결과 예측이 가능해졌다. 영·호남처럼 지역주의가 심한 곳은 물론이고 서울도 예외는 아니다. 몇몇 지역구와 마포·용산·성동구를 제외하곤 강북은 민주당, 강남은 국민의힘 당선 가능성이 높은 ‘안전 의석(safe seat)’이다. 경쟁 의석이 다수 사라지면서 정당은 더 이상 민심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됐다.

‘공천=당선’에 정치권 민심 무시
극단적 후보 선호하는 현상 심화
제3당, 거대 양당 기득권 깨야

안전 의석이 많아질수록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의석을 몇 석 잃더라도 당 장악력과 후일을 위해 자기 사람을 공천하려는 욕심이 강하게 들 것이다. 반정치적이거나 비정치적인 유권자가 다수 정당원으로 유입되면서 당내 경선에서 사이다 발언의 극단적 후보가 인기를 끌자 정치 양극화는 점점 심해졌다.

물론 어느 정도의 경쟁 의석이 남아 있기에 선거가 다가올수록 각 당은 쇄신도 하고, 민심을 받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 결과 역대 총선에서 수 개월 전의 여론조사 결과대로 선거 결과가 나온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앞서던 쪽은 안주하다 패하고, 뒤지던 쪽이 강하게 쇄신해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재보궐선거는 오롯이 정부와 여당을 심판하는 기능을 하지만, 총선은 시대정신이 중요하다. 2012년 총선에서 이명박 정부심판·교체 여론이 50%가 넘었지만 새누리당은 총·대선 모두 승리했다. 2016년 총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가 40%가 넘었기에 새누리당의 압승이 예견됐지만, 김상곤 혁신위원회로 쇄신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이 됐다.

2012년 총선 당시 여당의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김종인 비대위원을 영입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내세워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차별화함으로써 승리했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이념성이 강한 통합진보당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고리로 후보 단일화를 했다. “야당이 자동으로 정권심판 표를 얻는 건 아니다. 민주당의 이념적 좌클릭이 위험한 수준”이라는 필자의 경고를 외면한 채, 다 이긴 선거라고 생각했던 민주당은 총선과 대선 모두 패했다.

총선에선 여당 못지않게 야당의 비전도 중요하다. 시대정신은 그 시기 국민의 강한 불만과 욕구가 분출하면서 표출된다. 이번 총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국민의힘은 적어도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었다는 점에선 성공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취임사에서 “정치인이나 진영의 이익보다 국민 먼저”라고 일갈했다. 새해 첫날 발표된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양당 지지도가 오차범위 내에서 엇비슷하게 나타난 건 한 위원장 취임 효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동훈 체제는 이명박 정부 임기 말 차별화를 시도했던 박근혜 비대위와 달리 한계도 분명하다. 임기 중반도 안된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여당이 택하기 어려운 선택이기 때문이다. 정부 견제 여론이 흔들림 없이 높은 게 그 증거다.

여전히 높은 견제 여론은 민주당에 반사 이익을 안겨줄까? 정부 견제만 내세워 민주당이 참패했던 대표적인 선거가 2008년 총선으로 투표율이 46.1%에 불과했다. 친민주당 성향 유권자에게 무조건 지지란 없다. 민주당이 시대정신에 부응하지 못하면 기권으로 양당을 심판해왔다. 민주당 승리가 항상 높은 투표율에 의해 추동됐던 이유다.

실제 언론사의 신년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양당 각각 1당이 될 수 없다는 응답이 과반에 달한다(중앙일보 1월 1일자). 반면, 양당 모두를 심판해야 한다는 여론(한국일보)이나, 신당이 출범하면 지지하는 정당을 바꿀 의향이 있다(중앙일보)는 여론은 적지 않다. 야당이 반사 이익만으론 승리할 수 없다며, 민주당이 혁신하지 않으면 제3당이 출현할 거라고 필자는 오래전부터 경고해 왔다.

선거의 핵심은 경쟁이다. 그래야 의원이 공천자가 아니라 민심에 충성하게 된다. 제3당은 안전 지역구에도 경쟁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양극화된 정치를 타파하고 진영논리를 극복하는 시대정신에 부합한다. 이미 기득권화된 민주당은 누워서 떨어지는 감이나 먹으려다 이낙연 신당 소식에 화들짝 놀라 만류하는 연서명을 했다. 하지만 그들 기대와 정반대로 양당 경쟁에선 국민의힘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신당이 등장해야 친야당 기권표를 흡수함으로써 여당의 독주를 막는데 성공할 것이다.

◆조기숙=정치분석가로 활동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홍보수석을 지낸 인연으로 지난 20년간 친민주당 논객을 자처했다. 최근엔 한국 정치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에 초당적인 논평가로 돌아왔다. 한국 정치의 혁신을 갈망한다.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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