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 경협의 올바른 전략(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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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내 업체끼리 과당경쟁해선 안돼
모스크바의 정상회담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한소 관계의 진전은 이제 경제협력의 공식화라는 보다 실질적 차원의 외교적 후속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바로 이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내년 1월 서울에서 제2차 한소경제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따라서 양국은 한 달 가량 남은 기간에 우리측이 내놓을 협력자금의 규모와 협력의 세부방안 등에 대한 각각의 입장을 서둘러 확정지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세부적 경협방안의 작성에 앞서 그것의 기초가 되어야 할 한소 경협의 기본전략을 확립하고 협력사업에 직접 나설 기업의 바람직한 자세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양국 관계개선의 출발점부터 우리 쪽은 통일외교와 안보차원의 성과를,소련은 경제적 실리를 중시해온 점에 비추어 앞으로 있을 경협문제의 협상에서 우리가 일정규모의 협력자금 제공에 합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수긍한다 하더라도 경협의 적정규모가 얼마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따를 수 있을 것이다.
그 규모는 어차피 외교적 협상에 맡겨질 수밖에 없을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대소 경협자금은 통일이 실현될 때까지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경제적 부담의 일부라는 점이 반드시 사전에 고려돼야 할 것이다.
규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경협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실천전략이다. 협력사업분야의 합리적 선정,협력추진과정의 낭비적 요소 제거,소련 진출기업의 과당경쟁 방지 등은 경협의 효율적 전개를 위한 필수적인 요건들이다.
소련의 엄청난 국토와 방대한 인구,그리고 당면 경제상황의 어려움과 복잡함을 감안하면 우리에게는 힘겨운 규모의 경협자금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얻게 될 가시적 성과는 극히 미미한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외화에 흐르기 십상인 외교적 행사들과 대기업들의 부산한 진출 준비활동 및 잦은 상담들은 지금까지 소련정부와 국민들의 기대를 크게 부풀려 놓았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두 갈래가 아닌 다급한 문제들의 신속한 해결이 한소 경협으로 이뤄지지 않을 때 상대국이 품게 될 실망감과 그로 인한 양국 관계의 손상 가능성을 우리는 지금부터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경협자금의 효율적 운용은 진출기업의 과잉경쟁하에서는 결코 달성되지 않는다. 이미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과잉경쟁의 폐해를 우려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서는 해당 대기업들의 책임과 함께 정부의 잘못을 아울러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상품수출·자원개발·합작투자·건설진출 등 분야를 가릴 것 없이 소련에서 먼저 사업을 벌이기만 하면 경협자금을 우선적으로 따낼 수 있다는 기대가 업계에 확산돼 있고 대소정책 전개과정에서 정부가 보인 일거수일투족은 그같은 기대를 조장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협력자금 따내기에 급급한 협력사업 전개가 알찬 경협의 결실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소련 진출에 나선 기업들은 지금부터라도 협력자금 배정을 노린 과잉경쟁에서 탈피하기 위해 자율적인 협의·조정의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며 정부는 경협자금의 효율적 운용을 위한 지침을 하루빨리 작성,공개함으로써 민간기업의 진출활동을 건실한 방향으로 유도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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