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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채병건의 시선

‘기만의 심리전’ 북한의 복어 전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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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채병건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Chief에디터
채병건 국제외교안보 디렉터

채병건 국제외교안보 디렉터

이쯤 되면 북한이 신무기를 내놓을 때 나름 일관된 전술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과장의 심리전’ 또는 ‘기만의 심리전’으로 이름 붙일 수 있다.

북한이 지난달 군사정찰위성을 띄워 괌과 하와이의 미군 기지를 찍었다는데 정보당국의 반응은 ‘글쎄올시다’에 가깝다. 서브미터(1m 이하)급의 정밀한 해상도를 갖췄는지, 우주 공간에서 위성을 미세하게 움직여 특정 좌표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는 얘기다. 북한은 지난 9월 전술핵잠수함이라며 김군옥함을 공개했는데 전문가들의 반응이 뜨악했다. 직경에 비해 길이가 너무 길어 안정적으로 순항할지조차 의심스럽다고 한다. 서구의 한 분석가는 여기저기서 뜯어 붙인 조각으로 몸통을 비정상적으로 늘린 것 같다며 프랑켄슈타인 잠수함, ‘프랑켄서브’로 지칭했다.

신무기 발표 때 위협 부풀리기
사실과 거짓 뒤섞어 혼선 유도
그러다 실전 핵무기 운용 시험

대체로 핵잠수함, 군사위성과 같은 핵심 전력은 드러내지 않는 게 상식이다.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 숨겨야 상대의 허를 찌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상식에 역행한다. 노출을 즐기며 실제 이상으로 자신을 부풀리니 복어를 연상케 한다.

북한의 복어 전술은 웃고 넘기면 그만일까. 그렇지 않다. 과장된 심리전의 노림수는 허풍을 허풍으로 끝내지 않는다는 기만술에 있다. 북한은 기이한 잠수함, 증명되지 않은 위성을 과시한 뒤 결국 1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쐈다. 이번에도 허세를 부린 뒤 진짜 주먹을 실험했다.

2012년 4월 북한은 열병식 때 신형 ICBM을 공개했다. 일부 서구 전문가들이 영상을 들여다보니 외양이 희한했다. ‘모형 ICBM’을 열병식에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북한은 2016년엔 원형의 핵탄두 사진을 공개했는데 트위터엔 ‘디스코 볼’이라는 비아냥이 올랐다. 연회장 천장에 매달려 번쩍거리면서 빛을 내는 게 디스코 볼인데, 사진을 보면 디스코 볼이 연상된다. 그랬던 북한은 이제 미 대륙 전역을 미사일 타격권으로 놓고 있다. 디스코 볼 북한은 2016년 1월 이미 ‘수소탄 핵실험’을 마쳤다.

과거를 보면 미래를 안다. 지금 북한의 프랑켄서브는 디젤 엔진 소리를 온 바다에 내뿜으며 뒤뚱뒤뚱 잠항해 자신을 노출하는 바보 잠수함일지라도 20년 후에도 그러리라고 예단할 수 없다. 20년 전 북한을 기억하면 북한의 20년 후는 더욱더 ‘양탄일성(兩彈一星, 원폭과 수폭 양탄과 인공위성)’에 가까워질 것이다.

북한을 바라보는 접근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서구 정치외교학적 접근법이다. 서구적 합리성의 관점에서 보면 북한을 규정하는 키워드는 예측 불허, 비합리, 인권 유린, 독재가 된다. 핵탄두야말로 절대 외부에 노출해선 안 되는 전략무기인데, 이를 공개하는 게 대표적인 비합리적 행위에 해당한다. 서구적 시선에서 보면 북한의 과장된 부풀리기는 약속했던 강성대국을 만들지 못한 북한 리더십의 조급함을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내재적 접근법이다. 노동신문 등 북한 내부 문헌에 천착해 북한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내재적 접근법으로 보면 북한의 3대 세습은 북한이 김일성 이후의 후계 체제를 지키기 위해 강구해낸 유일한 선택지가 된다. 물론 서구적 접근이 국내외 주류의 시각이다. 하지만 때론 내재적 접근이 북한의 속내를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북한의 핵 무력 부풀리기가 그렇다.

지금 북한이 가장 절실하게 추구하는 목표는 뭘까. 두 가지다. 먼저 핵 무력 완성이다. 둘째는 미국의 핵 무력 용인이다. 즉 북한의 목표는 ‘미국이 받아들인 핵보유국 북한’이다. 북한이 일관되게 미국을 향해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라며 ‘대결에도 대화에도 열려있다’고 발표하는데, 북한이 말하는 대화의 전제는 핵 보유 인정이지 핵 폐기가 아니다.

그런데 북한이 핵 개발을 차질없이 계속하려면 어디까지 왔는지를 숨겨야 하고, 반대로 핵 보유를 인정받으려면 여기까지 완성해놨음을 미국에 보여줘야 한다. 상충하는 두 목표를 모두 포괄하는 교집합은 어디까지 완성했는지를 놓고 사실과 기만을 섞어 판단을 흐리게 하는 심리전이다. 무엇이 허위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스럽게 만들어 때로는 북한을 과소평가하도록 유도해 핵 개발에 매진할 시간을 벌면서, 결과적으론 북핵 위협을 확장해 미국의 피로감, 또는 위기감을 키워 핵 보유를 상수화하는 양가적 효과를 노린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북한은 결코 우스꽝스럽지도, 예측 불가능하지도 않다. 과장 속에 뒤섞은 기만과 진실의 배합 비율이 달라질 뿐 북한은 핵 무력을 ‘개발하면서 인정받는’ 길을 일관되게 가고 있다. 북한이 조급하니 허풍을 떤다고 평가절하하면 어느 순간 뒤통수를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