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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감보다 진한 뜻밖의 죄책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69호 23면

목소리들

목소리들

목소리들
이승우 지음
문학과지성사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 ‘나’의 어머니는 치매 증상을 보인다. 어머니는 ‘나’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꿔 달라고 부탁한다. 큰아들이 카페를 차리는데 보태줄 돈이 없어 안타깝다면서. 어머니는 죽은 아들이 카페 개업을 준비 중이라고 믿는다. 작은아들의 전화를 받으며 큰아들의 이름을 부른다.

2021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이승우의 단편 ‘마음의 부력’은 죄책감에 관한 이야기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노인은 ‘아픈 손가락’이었던 큰아들이 죽자 그에게 해주지 못한 일들에 대해 생각한다.

노인을 특히 괴롭게 하는 것은 “대학원은커녕 대학도 졸업 못 하고 결혼도 안 하고 집도 없이” 살면서도 “돈 달라는 소리 한 번 안 한” 큰아들이 딱 한 번 도움을 청했던 그 날의 기억이다. “카펜가 뭔가를 하겠다고” 도와달라는 큰아들에게 노인은 나이가 몇이냐고,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고 다그친다. “성식이 사는 것 좀 보라”면서. 둘째 성식은 “대학 졸업하고 대학원도 다니고 결혼도 하고 집도 산, 그놈이 제힘으로 다 한” 장한 아들이다.

죄책감은 기억을 비틀어 놓는다. 노인이 성을 내자 큰아들 성준은 “그냥 해본 말”이라며 허허 웃고 만다. 하지만 성준이 죽자 노인은 “성식이는 대학원도 보내지 않았느냐”며 대드는 목소리를 듣는다. “그런 말을 할 애가 아닌데”도 그런 목소리가 들린다. 죄책감은 상실감보다 끈질기다.

새로 출간된  『목소리들』은 이승우의 열두 번째 소설집이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남겨진 사람들이 저마다 겪는 트라우마와 방황에 관한 이야기다. 새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한 아이가 어른이 돼 텅 빈 옛집을 찾고(‘공가’), 형의 마지막 부탁을 거절한 후 형의 부고를 듣게 된 동생은 죄책감에 괴로워한다(‘물 위의 잠’).

‘마음의 부력’을 포함해 총 8개의 단편이 담겼다. 인간의 불안, 욕망, 상실감과 죄의식 같은 주제를 끈질기게 탐구해온 작가 이승우의 집념과 특유의 섬세한 문장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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