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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전 韓이 만든 인태 보고서…지금 美국무부 책상에 놓인 까닭

중앙일보

입력

지난 8월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공동기자회견을 위해 오솔길을 함께 걸어 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공동기자회견을 위해 오솔길을 함께 걸어 오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워싱턴DC 국무부의 동북아 관련 핵심 관료의 책상 위엔 한국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가 놓여있다고 한다. 대통령실과 외교부가 발간한지 약 1년이 돼가는 이 보고서를 굳이 왜 챙기는 걸까.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3국 정상회의의 시발점이 돼줬기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해서라는 후문이다. 이 관료뿐 아니라 지난달 28~29일 워싱턴DC에서 만난 복수의 당국자들과 싱크탱크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한미일 3국 협력의 초석을 놓은 한국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이는 워싱턴DC에 이어 이달 초 일본 도쿄에서 만난 총리실 및 외무성 관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앞으로다. 워싱턴DCㆍ도쿄에서 한미일 3국 협력의 시동이 걸렸음을 자축하며 매번 언급된 단어는 '제도화(institutionalize)'였다. 3국 협력이 선언이 아닌 실제 패러다임으로 뿌리내리기 위한 앞으로의 조치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각국의 국내 정치로 인해 바뀌는 변수가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한미일 협력 관계를 상수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절실함이 워싱턴DC에선 특히 감지됐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미레야솔리스 연구원은 "지금은 경제 안보가 미ㆍ중 갈등 등 지정학적 이슈들과 복합적으로 연동되어가는 패러다임 전환의 시기"라며 "이런 상황에서 한미일 3국의 협력은 반도체 및 수출 등 다양한 이슈에서 한국 등 각국의 전략적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워싱턴DC 국무부. 한미일 3국 협력의 모멘텀을 이어가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었다. 전수진 기자

미국 워싱턴DC 국무부. 한미일 3국 협력의 모멘텀을 이어가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었다. 전수진 기자

같은 연구소의 앤드루 여 연구원은 3국 협력 강화 방안을 근력 강화 운동에 빗대어 설명했다. 그는 "다양한 루틴으로 꾸준히, 정기적으로 운동하면 없던 근육도 생기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근육 기억(muscle memory)라는 것도 생긴다"며 "한미일 3국 협력도 이렇게 발전시키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구체적 방법론은 없을까. 애틀랜틱 카운슬의마커스갈루스카스인태안보국장도 "한미일 3국 협력을 정상부터 실무까지 모든 수준에서 제도화하고 다양한 분야로 확장해야 한다"며 군사훈련을 예로 들었다. 그는 "한미일 군사훈련을 정례화한다면, 각국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이를 흔드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미레야 솔리스(왼쪽), 앤드루 여 연구원. 전수진 기자

브루킹스 연구소의 미레야 솔리스(왼쪽), 앤드루 여 연구원. 전수진 기자

한미일 협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대표적 국가는 중국이다. 실제로 중국에 대응해 '디리스크(derisk)', 즉, 위기를 해소 및 예방하는 것이 한미일 협력의 주요 목적이다. 그렇기에 자칫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가능성도 엄존한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여 연구원은 "중국은 지금 국가주의가 상당히 팽창하고 있기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며 "한미일이 불필요하게 중국을 괴물로 성장시키지는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국자들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한미일 3국 협력이 중국을 배제하거나 배타적으로 몰아붙이기 위함이 아니라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한편 한미일 3국 협력이 또 다른 3국 협력, 즉 북한과 중국ㆍ러시아 간의 협력을 가속화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3국 당국자 및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북·중·러 간 협력은 한미일처럼 혈맹 등 단단한 동맹으로 엮인 것이 아닌, 상황적 현상에서 진행되는 성격이 강하다는 의미에서다.

애틀랜틱 카운슬의 마커스 갈루스카스 국장. 북한의 '칠면조 패러독스'를 우려했다. 전수진 기자

애틀랜틱 카운슬의 마커스 갈루스카스 국장. 북한의 '칠면조 패러독스'를 우려했다. 전수진 기자

북한 역시 한미일 3국의 여전한 관심사다. 우크라이나 전쟁 및 중동 가자지구 등으로 인해 우선순위에는 밀렸다 하더라도, 북한에 대해선 워싱턴DC와 도쿄 당국자들 모두 한목소리로 대화를 촉구했다. 노리유키 시카타(四方敬之) 총리실 공보담당 비서관은 "북한과의 대화는 항상 열려있다"며 "일ㆍ북 정상회담 역시 우리는 열려 있다"고 말했다. 미국 측 역시 북한에 수차례 대화 의사를 전달했으나 실제 대화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위성 등 다수 도발을 이어가고, 국제사회에 그에 익숙해져 가는 국면에 대한 우려는 크다. 애틀랜틱 카운슬의 갈루스카스 국장은 이를 '칠면조 패러독스'로 비유했다.

'투키디데스 함정' 등으로 유명한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가 고안한 개념으로, 미국판 추석인 추수감사절에 먹는 칠면조 요리에 착안했다. 칠면조를 살찌우려는 농부가 계속 모이를 주면 칠면조는 그 상황에 익숙해지지만 어느 날 갑자기 죽임을 당한다는 의미다. 갈루스카스 국장은 "칠면조 입장에선 어제도 오늘도 똑같은 내일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만,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내일을 맞이하지 못한다는 게 '칠면조 패러독스'"라며 "북한 문제 역시 같은 길을 걷지 않도록 한미일이 3국 협력 체제 안에서 잘 궁리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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