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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작전명: 한미일 크리스마스의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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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 투데이·피플팀장

전수진 투데이·피플팀장

전투기 조종사 루카스 크라우치 미 공군 중위는 이라크전을 포함해 여러 전장의 하늘을 누볐다. 그가 발사 버튼을 누른 건 그러나 미사일만은 아니다. 곰 인형에 과자, 의약품을 담은 상자도 여럿. 미군이 매년 11월 말 진행하는 ‘크리스마스 선물 작전’에 참가하면서다. 미군은 매년 동맹국들과 함께 팔라우 등 태평양 50여개 도서 주민 2만 명을 위한 선물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낸다.

크라우치 중위는 최근 인도·태평양 사령부가 있는 하와이에서 기자와 만나 “이 작전만큼은 매년 손꼽아 기다렸다”며 “2021년은 특히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 요코타 주일미군기지에서 시작한 이 작전에 한·일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크라우치 중위는 “처음엔 한·일 참가자 모두 상대방을 앞에 두고도 나보고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며 “하지만 조금씩 마음을 열었고, 이 작전에 하나가 됐다”고 회상했다.

한국 공군이 지난 해 12월 태평양 도서 지역에 내려보낼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공군]

한국 공군이 지난 해 12월 태평양 도서 지역에 내려보낼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공군]

크라우치 중위를 만난 건 주한미국대사관이 마련한 ‘3국 협력을 위한 한·일 공동 취재단’으로서였다.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 합의로 물꼬가 마련된 한미일 3국 협력의 모멘텀을 키우고 다각화할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첫 방문지인 워싱턴DC부터 닷새간 진행된 회의는 약 20개. 이 자리에서 미 상·하원 의원, 정부 관료나 싱크탱크 전문가들이 빠짐없이 언급한 단어가 ‘(3국 협력의) 제도화(institutionalize)’였다. 어렵게 마련된 3국 협력을 각국의 국내 정치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상수가 되도록 기틀을 잡고 시스템을 세워야 한다는 얘기가 오갔다. 공화당 의원과 민주당 의원이 다르지 않았다. 이어진 일본 도쿄 세션에서도 마찬가지.

내년 한국의 총선과 미국의 대선. 이 파도를 캠프 데이비드 발 3국 협력이 넘을 수 있을까. 미국 측은 “백악관 주인이 바뀌어도 계속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주일대사를 지낸 공화당 빌 해거티 상원의원은 이름을 걸고 확언했다. 한국은 어떨까.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낸 알렉산더 대왕처럼 답은 단순하다. 친일·친미, 반일·반미 정쟁 전에 대한민국의 국익을 최우선에 놓는 것.

크라우치 중위가 들려준 크리스마스 작전에서 한 줄기 빛을 본다. 캠프 데이비드 합의 이전인 2021년 12월, 대통령 선거가 안갯속이었을 때도 한국과 일본 군인은 태평양 군도 어린이들을 위해 기꺼이 산타클로스 모자를 썼으니 말이다. 이 합의를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국익을 위해 세심히 제도화하는 게 자유와 민주주의, 법치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자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