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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민주당’은 정말 발목을 잡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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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허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허진 정치부 기자

허진 정치부 기자

국민의힘이 최근 전가의 보도처럼 쏟아내는 말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폭주로 국정운영의 발목이 잡혔다”는 한탄이다. 그런데 최근 만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우리가 뭘 하겠다는 게 있어야 발목이 잡히지, 하겠다는 게 없는데 뭔 발목이 잡혔냐”고 반문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도대체 국민의힘은 뭘 하려고 했을까.

일단 정권 교체 이후 국민의힘이 대표 상품으로 밀었던 법안이 뭐가 있나. 양곡관리법·간호법·방송3법 등 민주당이 밀어붙인 건 금방 알겠는데, 국민의힘이 밀었던 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솔직히 연금개혁이니 노동개혁이니 말만 그럴싸하고 행동으로 보여준 게 없지 않나. 여야 모두 정말 애타게 하고 싶은 게 있었다면 협상 테이블에 앉아 주고받기 시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5일 비공개 오찬 회동을 했다. [사진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5일 비공개 오찬 회동을 했다. [사진 국민의힘]

인사 문제도 그렇다. 국회 임명 동의가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곤 부적격 판정을 내리든 말든 거의 다 임명하지 않았나. 여당 의원들도 고개 저은 김명수 합동참모의장처럼 말이다. 물론 야당의 마구잡이식 의혹 제기가 겁나서 고위직을 꺼리는 인재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여야가 뒤바뀌었을 뿐 신상털이 인사청문회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여권의 위기감을 고조시킨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도 그렇다. 민주당이 뭘 했나. 반듯한 이미지의 진교훈 구청장을 데려다 당선시켰을 뿐 선거 원인제공자인 김태우 전 구청장을 다시 공천해 나락의 길을 깐 건 국민의힘이었다.

참패 후 여권의 핵심 난제가 된 김기현 대표 체제 유지 문제는 어떤가. “이대로는 도저히 내년 4·10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위기의 목소리가 분출하지만 이런 체제를 만든 건 누군가. 3·8 전당대회 과정에서 이미 본질적 모순이 잉태됐는데, 그때는 모두 침묵하고 외려 나경원 전 의원의 불출마를 요구하는 초선 의원 50명의 연판장이 나오지 않았나.

적전분열의 위기감을 증폭시키는 ‘이준석 신당’은 어떤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는데 생니를 뽑듯 현직 여당 대표를 축출한 건 누구였나. 모르긴 몰라도 이준석 전 대표는 권력 핵심부와의 직접소통을 원할 테지만 이러한 핫라인조차 남기지 않은 것도 야당 탓은 아니다.

측근이 1심 재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으며 사법 리스크가 위험 수위에 다다른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옹호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하면 저런 이 대표 덕에 그동안 핑계거리라도 있지 않았나. 윤석열 정부의 발목을 잡은 건 진정 누구였을까. 혹여 제자리걸음, 더 심하면 스스로 뒷걸음질 쳤던 건 아닐까.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