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디자인:터뷰] 허젠핑 “中, 그래픽 디자인 역사 짧지만, 거대한 시장 자체가 경쟁력”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차이나랩’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중국·독일 오가며 활약하는 ‘평면 디자이너’ 허젠핑
中, 그래픽 디자인 역사 짧지만, 거대한 시장 자체가 경쟁력
디자이너는 ‘변호사’ 같아야… 차별 없이 모두에게 좋은 영향력 주고파

왼쪽부터 중국 난징(2005)과 상하이(2006)에서 열린 '100 베스트 플라카테' 포스터와 2012년 열린 '100 베스트 플라카테' 공모전 포스터. 허젠핑 제공

왼쪽부터 중국 난징(2005)과 상하이(2006)에서 열린 '100 베스트 플라카테' 포스터와 2012년 열린 '100 베스트 플라카테' 공모전 포스터. 허젠핑 제공

잠들기 전까지 우리는 누군가의 ‘OO디자인_최종.ver’을 본다. 눈 뜨자마자 가장 먼저 보는 시계부터 욕실의 수전, 냉장고 속 우유팩, 출근길에서 보는 무수한 간판의 글자와 이미지도 모두 디자인의 산물이다. 이렇듯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누리는 일상 예술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디자이너가 있다. 포스터·브랜딩·출판·타이포그래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는 허젠핑(何見平)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허젠핑은 1995년 중국미술학원 그래픽디자인 학사, 2001년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미술학 석사, 2011년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문화사 박사 학위를 수료했다. 이후 베를린 예술대학, 중국미술학원, 홍콩이공대학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평면 디자인 업계에서 영향력 있는 작가로 부상했다.

그는 특히 활자가 주는 생동감을 작품에 잘 녹여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만든 포스터를 보면 활자와 이미지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하나의 그림처럼 느껴진다. 오랜 업력을 바탕으로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국제 포스터 비엔날레, 제슈프·바르샤바·닝보 국제 포스터 비엔날레,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DFA 아시아 디자인상 등 수많은 국제 디자인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분신술을 써야 할 정도로 바쁜 와중에도 ‘디자인으로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사명을 갖고 독일 베를린과 중국 항저우에 디자인 스튜디오 히자인(Hesign)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그는 세계 각국의 디자이너를 초청해 워크숍을 열고 디자인 전공 학생들에게 감각을 넓힐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7일, 한국에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서울 중구의 한 공유 오피스에서 만났다. 현역 디자이너의 ‘시각’은 어디에서 비롯됐고,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그에게 직접 물어봤다.

2023년 12월 7일, 서울 중구 중앙일보 네오스테이션에서 차이나랩과 인터뷰 중인 평면 디자이너 허젠핑. 차이나랩

2023년 12월 7일, 서울 중구 중앙일보 네오스테이션에서 차이나랩과 인터뷰 중인 평면 디자이너 허젠핑. 차이나랩

이하 그와의 일문일답.

당신의 정체성이 가장 잘 녹아 있는 작품으로 당신을 소개해달라.  

허젠핑(이하 허): 나는 중국 남방 지역인 항저우에서 태어났다. 항저우는 지형학적으로 산과 물이 많다. 한차례 큰비가 내리면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그 자체로 한 폭의 산수화가 완성된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 이 풍경이 독특하다고 느끼지 못하다가 산이 없는 독일(베를린과 북부 평원 지역)에서 생활하며, 고향 풍경이 특별한 것임을 깨달았다. 고향의 산수가 그리워서 상상하며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 유년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산수풍경은 내 디자인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포스터와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포스터에 그 이미지가 반영돼 있다.

왼쪽부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포스터와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포스터. 허젠핑 제공

왼쪽부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포스터와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포스터. 허젠핑 제공

디자이너의 눈에 비친 한국이 궁금하다. 당신을 만나기 전, 인스타그램으로 한국 방문 여정을 살펴봤다. 바쁜 와중에도 미술관과 갤러리를 다녀왔던데… 그곳에 가서 뭘 보았는지?

허: 바쁜 일정을 쪼개 리움, 아라리오 뮤지엄, 국립현대미술관, 리만머핀 서울,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등 꽤 많은 미술관과 갤러리에 다녀왔다. 그동안 아시아 현대미술의 거점은 두말할 것도 없이 홍콩이었다. 그러나 홍콩 경제가 침체기에 빠지면서 동아시아에서 서울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타데우스 로팍(Thaddaeus Ropac), 쾨니히(König)와 같은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갤러리가 서울에 오픈한 것을 보며 현대미술에서 서울이 갖는 영향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아라리오 뮤지엄이다. 한국적인 정취가 느껴지는 외관도 좋았는데 내부로 들어간 후 소장품에 깜짝 놀랐다. 바바라 크뤼거(Babara Krüger), 앤디 워홀, 백남준, 소피 셀(Sophie Cell), 네오 라우흐(Neo Rauch), 외르그 임멘도르프(Jörg Immendorff)의 작품이 전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작품들을 한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한국의 현대미술계가 국제적으로 지위가 있음을 방증한다. 동대문디지털플라자(DDP)에서 스테판 사그마이스터의 개인전 ‘Now is Better’도 봤다. 문화는 최고의 도시 풍경이다. 내가 보고 느낀 이 모든 것이 서울을 매력 넘치는 도시로 만들었다.

허젠핑이 한국에 와서 방문한 미술관과 갤러리 등 @인스타그램 he_jumping

허젠핑이 한국에 와서 방문한 미술관과 갤러리 등 @인스타그램 he_jumping

SNS에서 예상 밖의 게시물을 보기도 했다. 아주 자극적이고 강렬한 시위 문구를 올렸더라, 이런 시각은 우리에겐 색달랐다. 여기서 어떤 미학(美學)을 발견한 건가?

허: 광화문과 종로 일대를 산책하며 시위의 표어를 많이 봤다. 그래픽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시위 패널에 적힌 언어와 폰트가 내뿜는 에너지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타이포그래피에도 관심이 많아 눈길이 갔는데 간결하고 날카로운 문장에서 광고 카피가 주는 기운을 느꼈다. 사람들의 감정이 활자에 스며들어 그 활자의 이미지에서 공격성, 간결함, 생동감이 느껴졌다. 이런 것들을 보며 인간은 디자인 감각을 가진 타고난 동물임을 깨달았다. 그게 인상적이라 SNS에도 올린 거고.

허젠핑이 한국 거리에서 본 강렬한 시위 패널 @인스타그램 he_jumping

허젠핑이 한국 거리에서 본 강렬한 시위 패널 @인스타그램 he_jumping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김지하의 시(詩)에 영감을 받았다고 봤다. 한국 문화 전반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주목하는 한국 디자이너 혹은 아티스트가 있는가?  

허: 내가 한국어를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쉽다. 번역체에는 시인의 언어적 감각과 재능이 다 담기지 않는 것 같다. 김지하 시인을 처음 접하게 된 건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建三郞)*를 통해서였다. 대장부가 대의를 위해 우직하게 나아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의로움은 현대 상업 사회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이를 이해하는 사람도 거의 없기에 가치 있게 느껴졌다.
*오에 겐자부로는 한국의 군부 독재를 비판했다. 그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듣고는 와다 하루키 등 15명과 함께 군부 쿠데타 반대 성명을 발표했으며 1975년엔 김지하 시인 탄압에 항의하는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한국 아티스트는 실험 미술의 선구자인 이건용이다. 몸의 극단을 사용해서 창조한 그의 선묘 작품을 좋아한다. 그가 그린 모든 선에는 극도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특히 팔을 쭉 뻗어 촘촘하게 묘사한 선은, 한 가닥 한 가닥이 마치 수염 같다. 그 생생함을 잊을 수 없다. 그의 작품을 소장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중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독일 유학으로 유럽 현대미술의 영향도 많이 받지 않았나. 중국에서 한 발 떨어져서 본 중국 디자인의 현주소는 어떤가?

허: 중국의 그래픽 디자인 역사는 다른 나라에 비해 짧다. 덩샤오핑 개혁개방 무렵이니 50년도 안 된다. 그 사이에 홍콩과 대만, 일본, 유럽 그래픽 디자인의 영향을 차례로 받았다. 달리 말하자면, 중국 그래픽 디자인은 아직 ‘형성되고 있는 단계’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점은 여전히 많은 디자이너가 기술적인 부분만 중시하고 문화 이론 연구는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자신만의 독립적인 사상이 형성되기 전까지는 독립된 디자인 역사를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국은 장점도 많은 나라다.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시장 수용력을 갖고 있다. 아주 거대한 실험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 그래픽 디자인이 철학이나 예술 이론과 잘 결합하기만 한다면 중국 그래픽 디자인은 국제무대에서 주체적으로 역사를 써 내려 갈 수 있다고 본다.

허젠핑의 작품 전시회. 허젠핑 제공

허젠핑의 작품 전시회. 허젠핑 제공

중국이 거대한 실험 공간이라는 표현에 공감한다. 우리는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를 일상에서 늘 접한다. 일례로 샤오미 디자인은 한국에서도 통했다. 중국의 디자인이 세계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보는가?

허: 거대한 시장이 곧 경쟁력이다. 시장이 크고 수요가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다양한 디자인에 대한 요구가 늘 존재한다. 몇천 가지의 디자인 시안을 내놓으면 그중 하나는 글로벌 마켓에서 ‘대박’을 칠 수 있는 것이다. 디자이너에게 중국 시장은 걸음마 단계에서 바로 실전에 투입돼 온갖 실험과 시행착오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중국 디자이너들의 경쟁력은 풍부한 실전 경험에서 비롯될 것이라 생각한다.

왼쪽부터 2016년 체르노빌 참사 30주년 포스터, 빌헬름 데프케(1887~1950) 전시회 포스터. 허젠핑 제공

왼쪽부터 2016년 체르노빌 참사 30주년 포스터, 빌헬름 데프케(1887~1950) 전시회 포스터. 허젠핑 제공

현역에서 활동하면서도 후배 디자이너 양성과 커뮤니티 형성에도 힘을 쏟던데, 디자이너로서의 명성을 상업 목적이 아닌 공익을 위해서 쓰는 이유는 뭔가?

허: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그래픽 디자인도 다원화되어야 한다. 강자만을 위한 디자인이 아닌 약자나 소수를 위한 디자인이 있어야 한다. 히틀러 집권기 독일에는 나치 비판 선전물을 만들던 존 하트필드John Heartfield의 시위 포스터가 있었고, 현대에는 클라우스 스택Klaus Steack의 정치 그래픽 포스터가 이를 대변한다. 앞선 사례는 특정 체제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는 건전한 디자인 면모를 보여준다. 중국에도 이런 그래픽 디자이너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디자이너는 변호사와 비슷한 사람이어야 한다. 변호사는 의뢰인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그를 자신의 생계 수단으로 여기지만, 법을 핵심 가치로 삼아야 한다. 때로는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무료 소송도 도와야 한다. 디자이너 역시 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중심을 두고 사익만 좇는 것이 아닌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무상으로 디자인할 줄 알아야 한다.

허젠핑의 스튜디오 히자인에서 열리는 디자인서머(Design Summer). 북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등에서 주목받는 세계 디자이너를 독일과 중국으로 초청해 자국의 젊은 디자이너들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허젠핑 제공

허젠핑의 스튜디오 히자인에서 열리는 디자인서머(Design Summer). 북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등에서 주목받는 세계 디자이너를 독일과 중국으로 초청해 자국의 젊은 디자이너들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허젠핑 제공

디자이너에 대한 당신의 정의에서 사명감이 느껴진다. 마지막 질문이다. 허젠핑이 생각하는 디자인이란?

허: 나는 여태껏 좋은 디자인의 세 가지 조건을 독창성(Original), 혁신(Revolution), 시대를 초월하는 것(Timeless)이라고 주장해왔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좋은 의도를 가진 디자인을 장려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차이나랩 임서영 에디터·박지후 에디터
남정연 인턴 에디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