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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체조도, 체력장도 ‘나라의 몸’ 위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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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8호 23면

포스터로 본 일제강점기 전체사

포스터로 본 일제강점기 전체사

포스터로 본 일제강점기 전체사
최규진 지음
서해문집

“관공서 가운데 시간을 제일 잘 지키는 곳은 철도역이고 재판소는 시간에 아주 무관심하다. 호텔 모임은 잘 지키면서 조선 요리점 모임은 제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회의에 늦게 참석해야 점잖은 것으로 생각한다.”

1936년 동아일보에 실린 글이다. 당시 조선 사람들의 시간관념을 비판하는 이런 글이 게재된 날은 마침 6월 10일. 이른바 ‘시(時)의 기념일’이다.

이 낯선 기념일의 성격은 ‘시간 존중’ ‘비상시에는 먼저 시간을 잘 지키세요’ 등의 문구와 함께 시계를 그려 넣은 여러 포스터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일제는 일본에서 1920년 시작된 이 기념일을 이듬해 조선에도 도입했다. 이날에는 하루 세 차례 정해진 시간에 일제히 사이렌을 울려 시간관념을 심어주려 했는가 하면, 시계를 무료로 고쳐주는 행사도 열었다고 한다.

1929년 5월 5일 매일신보에 실린 조선소년총연맹 주최 어린이날 포스터. [사진 서해문집]

1929년 5월 5일 매일신보에 실린 조선소년총연맹 주최 어린이날 포스터. [사진 서해문집]

이 책 『포스터로 본 일제강점기 전체사』의 지은이는 “일제는 식민지 조선에서 시간관념을 ‘근대화’하려 했다”며 “특히 전시체제에서 사이렌은 궁성요배와 묵도, 방공공습경보 등을 통해 민중의 동작을 규칙적이고 민활하게 활동하도록 다그쳤다”고 전한다. 이를 비롯해 이 책에는 일제가 주도한 각종 기념일과 캠페인, 1915년 경복궁에서 열린 조선물산공진회를 비롯한 각종 박람회 등의 포스터와 관련 시각자료가 숱하게 실려 있다. 사학자이자 청암대 재일코리안연구소 연구교수인 저자가 일제강점기 매체와 문헌을 망라하며 10년 넘게 모은 것이라고 한다.

물론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는 법. 이 책 역시 포스터를 나열하는 대신 이에 담긴 선전과 메시지의 전후 맥락을 여러 연구와 각종 자료를 아우르며 핵심적으로 설명한다. 포스터 같은 시각자료만 아니라 이런 본문의 근거와 출처 역시 상세하게 밝혀 놓았다. 전체 700쪽 넘는 책에서 이처럼 출처와 근거를 담은 주(註)가 70쪽 가량 된다. 덕분에 포스터가 직접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이를테면 ‘몸’에 관한 이야기도 그렇다. 일제강점기 라디오는 음악과 구령을 들려주며 운동을 하게 하는 ‘국민보건체조’, 일명 라디오체조의 보급 수단이기도 했다. 라디오체조는 본래 미국의 여러 지역방송국에서 시작된 것을 일본이 모방한 경우다. 국가가 국민의 건강 증진에 힘쓰는 건 당연한 듯싶지만 1940년대 들어 라디오체조는 “국민총훈련”의 성격이 된다. 매일 아침 6시에 모여 국민의례와 라디오체조를 한 뒤 만세삼창을 하고 해산하라는 식이다.

1915년 경복궁에서 열린 시정 5년, 즉 일제의 조선 통치 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 포스터. [사진 서해문집]

1915년 경복궁에서 열린 시정 5년, 즉 일제의 조선 통치 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 포스터. [사진 서해문집]

전시체제에서 체력을 강조한 배경은 합격자에게 ‘체력장’이란 휘장을 주어 ‘체력장검정’으로 불린 체력검정에도 드러난다. “1000미터 속행은 다리의 힘을 길러 공습 등으로 교통기관이 파괴되었을 때 꼭 필요하며 (중략) 짧은 봉 던지기와 중량 운반은 상반신을 강하게 하고 방공훈련 때 물을 길어 나르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이는 여성 대상 종목을 해설한 대목이다. 국민건강주간, 아동애호주간 역시 ‘나의 몸’이 아니라 ‘나라의 몸’이란 걸 내세웠다.

저자는 포스터와 각각의 이야기를 계몽, 홍보, 사상동원, 전쟁동원 등 크게 네 갈래로 나눠 소개한다. 전시체제의 상황은 군 관련 기념일, 지원병 모집, 식량 증산 및 각종 공출 관련 포스터는 물론이고 실은 저축·보험·채권 등을 독려하는 포스터에도 담겨 있다.

특히 계몽과 홍보 관련 포스터는 일반적 통사에서 접하기 힘든 일제감정기의 생활사, 미시사를 보여주는 점이 흥미롭다. 예컨대 좌측통행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흰옷을 입지 말라는 색의(色衣)장려운동이나 몸뻬 착용이 얼마나 강제성이 있었는지 등을 알 수 있다. ‘어린이날’ ‘과학데이’ 등 당시 일제가 아니라 조선 사람들이 주도한 행사 관련 포스터들도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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