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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후 느려진 아이폰…5년 9개월만에 받은 '7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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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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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애플 아이폰 업데이트로 일부 기기 성능이 저하된 소비자 7명이 애플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2-3부(부장판사 박형준‧윤종구‧권순형)는 6일 “애플 본사는 원고 7명에게 정신적 손해에 대해 각 7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7년만에 난 결론이다.

“소비자에게 업데이트 선택권 안 줘” 고지의무 위반 인정

6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아이폰 '고의 성능저하' 관련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을 마친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변호사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아이폰 '고의 성능저하' 관련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을 마친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변호사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은 ‘업데이트로 기능이 저하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지 않은 애플에 “중요한 사항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고지의무를 위반했고, 소비자들은 이로 인해 업데이트 설치 여부 선택권‧자기결정권 행사할 기회를 잃었다”며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소비자기본법이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이나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거래 조건‧방법을 사용해서는 안되며, 물품 등에 관한 정보를 성실‧정확하게 재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서다.

재판부는 “애플과 소비자들 사이에 업데이트 설치에 대해 현저한 정보 불균형‧비대칭이 존재한다”며 “원고들은 업데이트가 일반적으로 성능을 개선하는 방향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이고, 성능제한이나 앱 실행 지연 등은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1심 재판부가 ‘사용자의 불편을 개선하고자 업데이트를 배포했다’는 애플 측 주장을 받아들여, 고지의무 위반에 대한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은 것과 달라진 판단이다. 법원은 정신적 손해에 대해 원고들이 청구한 각 10만원 중 7만원을 배상액으로 인정했다.

원고들은 애플코리아의 공동책임도 주장했지만, 법원은 ‘애플코리아는 기기에 관한 책임만 진다’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관련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며 이 부분 청구를 기각했다.

2017년 사건, 2018년 소송 시작… 5년 9개월만에 받은 ‘7만원’

이 사건은 2017년~2018년 1월 발생했고, 2018년 3월 소송이 시작됐다. 2017년 1월 23일 ‘iOS 10.2.1’ 업데이트, 2017년 12월 2일 ‘iOS 11.2’ 업데이트를 배포한 것이 시작이다. 애플은 2018년 1월 홈페이지를 통해 성능저하 가능성을 공지했지만, 그 전에 이미 업데이트를 설치한 아이폰 사용자들은  애플 본사와 애플코리아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6만명이 넘는 소비자가 모여 제기한 집단소송에도 1심은 아무런 배상책임을 묻지 못했다. 아이폰5‧5c‧5s 사용자 및 아이폰 사용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는 원고들이 포함돼있었고, 화면 터치 오류 등은 업데이트로 인한 아이폰 성능저하로 볼 근거가 될 수 없다며 기각됐다. 소비자들은 정보통신시스템을 방해하는 악성 프로그램을 배포했다며 정보통신망법 위반도 주장했지만, 정보통신망법은 하드웨어에 적용되는 법이라며 역시 기각됐다. 항소심에서 인정된 ‘소비자기본법상 고지의무 위반’ 주장은 1심에서도 했지만, 제대로 입증하지 못해 기각됐다.

항소심에선 아이폰 6s, 7사용자이면서 ‘업데이트 이후 성능 저하를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는’ 소비자 중 7명만 대표 원고로 남아 법정싸움을 계속했다. 1심에서 인정받지 못한 다른 기종 사용자들과, 애플이 공식적으로 공지한 ‘앱 실행 속도 저하, 스크롤 속도 저하’ 외의 기기오류는 주장에서 제외한 것도 유효했다.

업데이트 후 ‘성능 제한’ 사실상 인정
애플이 ‘고의로’ 아이폰 성능을 낮추는 업데이트를 배포했다는 의혹은 이번 사건에서 쟁점도 아니었고, 그간 법원에서 인정된 적도 없고 해외 사례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칠레에서는 애플이 소비자들에게 합의금을 주고 사건을 종결했고,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업데이트 관련해 벌금 부과처분이 내려졌지만 이때도 업데이트 관련한 구체적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였을 뿐 업데이트로 인해 아이폰 성능이 저하됐다는 기술적인 내용이나 판단은 없었다.

그러나 6일 재판부는 설명자료를 통해 “2016년 10월 경 iOS 10.2 버전을 사용하는 아이폰 6,7 시리즈에서 예기치 않은 전원 꺼짐 현상이 발생하자, 애플은 아이폰의 중앙처리장치(CPU) 및 그래픽 처리장치 일부 시스템 최고성능을 제한하는 기능(이하 ‘성능조절기능’)이 담긴 업데이트를 배포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1심이 업데이트로 인한 아이폰 성능 변화 주장을 ‘성능 저하’로 단정하지 않았던 것과 다른 점이다.

다만 다른 소비자들이 추가로 소송을 제기해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2017년 사건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시효 3년이 이미 지났고, 1심이 끝난 뒤 항소를 하지 않은 6만여명도 사건이 종결돼 더 이상 재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비슷한 사건이 있을 경우 근거로 삼을 선례가 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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