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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뜨는 부자와 지는 부자는?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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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의 최고 부자들은 그 나라 산업 구조를 방증한다. 셔터스톡

한 국가의 최고 부자들은 그 나라 산업 구조를 방증한다. 셔터스톡

한 국가의 최고 부자들은 그 나라 산업 구조를 방증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 최고의 부자는 화신백화점 박흥식 사장이었다. 국수 소면과 술을 팔던 이병철 회장은 해방 후 설탕과 섬유를 삼성의 주 종목으로 삼아 한국 최고 부자로 떠올랐다. 산업화 이후 건설과 자동차로 성공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반도체로 전자산업을 만개시킨 이건희 삼성 회장에 이어 요즘엔 모바일 서비스로 뜬 김범수 카카오 설립자, 바이오를 대표하는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또 부자들 총재산의 크기와 증감 여부는 그 나라 경제의 발전과 활력을 측정하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중국 부호들의 재산 순위를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후룬(胡潤)연구소가 최근 ‘2023년 후룬바이푸방(胡潤百富榜)’을 발표했다. 중국 100대 부자 순위인 셈이다. 이에 따르면 지난 9월 1일 기준 자산이 1000억 위안(약 18조원) 이상인 기업가는 30명, 100억 위안 이상인 기업가는 628명, 50억 위안 이상인 기업가는 1241명이었다.

3년 전인 2020년과 비교해 보자. 당시 기준 자산 1000억 위안 이상 기업가는 41명, 100억 위안 이상은 620명, 50억 위안 이상은 1171명이었다. 100억 위안, 50억 위안 자산가는 비슷한 수치인 반면 1000억 위안 이상의 ‘울트라 수퍼 리치’는 41명에서 30명으로 3년 사이 크게 줄었다.

상위 20명 부자의 경우 2023년의 개인 자산이 2020년에 비해 34%나 감소했다. 20명 중 16명은 재산이 감소했고, 11명은 상위 20위권에서 탈락했다.

중국의 대표 생수 기업 ‘농푸산취안(農富山泉)’의 창업자 중산산(鍾睒睒)은 2020년 3위에 올랐다. 그의 현재 자산은 2020년보다 850억 위안 증가한 4500억 위안(약 83조원)으로, 2021년 1·2위를 달리던 IT·전자상거래 거물들을 제치고 중국 최고 부자가 된 후 3년 연속 그 자리를 지켰다.

부의 성장세가 두드러진 사람 가운데는 쇼핑몰 핀둬둬(拼多多)를 창업한 황정(黃崢)과 인터넷 회사 왕이(網易)를 창업한 딩레이(丁磊)도 있다. 이들이 중산산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황정의 2023년 자산은 2020년 대비 22.7% 증가했고, 딩레이는 9% 증가했다. 이들 3명은 2020년 상위 20위 부자 중 자산 증가율 1·2·3위를 차지했다.

해외에서 중국 대표 부자로 잘 알려진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馬雲)의 자산 규모는 2020년 4000억 위안(약 73조원)으로 4위였으나 올해 들어 2300억 위안, 2020년의 57.5%로 줄어 10위로 내려앉았다. 지난 16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식 웹사이트에 공개된 서류에 따르면, 마윈 가족의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소재 신탁회사인 JC프로퍼티스와JSP인베스트먼트는 21일 알리바바 주식을 각각 500만 주 매각할 예정이다. 시가액은 합쳐서 8억7070만 달러(1조1283억원) 규모다.

문서가 공개된 이 날 뉴욕 증시의 알리바바 주가는 1년여 만에 최대 하락 폭인 9.1%를 기록하면서 200억 달러 이상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마윈의 주식 현금화에 대해 중국의 경제 발전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고 중국 당국의 압박으로 주식 보유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염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텐센트 창업자 마화텅(馬化騰)의 자산 순위는 2020년과 마찬가지로 2위였다. 하지만 자산 규모는 2020년 3900억 위안(약 71조원)에서 올해 2800억 위안(약 51조원)으로 줄었다.

특히 부동산과 태양광 업체 기업가들의 자산이 가장 많이 줄었다. 지난 2년 동안 500명에 가까운 기업인이 후룬의 전체 순위에서 밀려났다. 대부분 부동산 산업, 특히 부채가 높은 부동산 개발업체, 산업 장비 및 대형 보건 산업의 기업인들이다.

지난 1년간 부동산 개발업체 완다(萬達)의 왕젠린(王健林) 일가는 자산이 500억 위안(약 9조원) 줄어 감소 폭이 가장 컸고, 비구이위안(碧桂園)의 양후이옌(楊惠妍) 일가도 300억 위안(약 5조5000억원) 가까이 감소했다. 지난해 자산 규모가 230억 위안(약 31억9000만 달러)이었던 훙싱메이카이룽(紅星美凱龍) 창업자 처젠싱(車建興)은 기업 자금줄에 문제가 생겨 올해 100위권에서 탈락했다.

태양광 관련 산업으론 반도체용 실리콘 재료 기업 허성(合盛)의뤄리궈(羅立國) 회장, 룽지(隆基)실리콘 창업자인 리전궈(李振國) 부부 등이 재산 감소 폭이 큰 기업인으로 꼽혔다.

식품업계에서도 자산이 큰 폭 줄어든 기업인이 여럿 있다. 돼지고기 가격이 떨어져 타격을 받은 무위안(牧原)식품 창업자 친잉린(秦英林) 부부, 첨가물 사건으로 판매율이 떨어진 조미료 업체 하이톈(海天)조미식품의팡캉(龐康) 회장 등이다.

중국의 거대 부동산 기업들은 정경유착으로 덩치를 키워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거품이 잔뜩 꼈고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하락이 거품들을 터뜨렸다. 태양광 산업은 중국 정부의 ‘대약진 식’ 투자로 대규모 자금이 유입됐다. 하지만 업주들의 자금 유용과 생산품의 공급과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산업계의 위기를 반영하듯 시진핑 주석은 “외자기업의 합법적 권익을 보호할 것”을 강조했다. 28일 관영 신화사에 따르면 시진핑은 전날 열린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10차 집단학습에서 “법치는 최고의 비즈니스 환경으로, 개방적이고 투명하게 외국 관련 법률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화하고 외자기업의 합법적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 “국내외 규칙을 잘 활용해 시장화, 법치화, 국제화의 일류 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같은 발언들을 쏟아냈다.

시 주석의 발언은 반(反)간첩법 시행과 경영환경 악화 등 영향으로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기업들의 탈중국 행렬이 이어지자 외국 자본을 안심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중국 상무부 등에 따르면 올해 1∼10월 대(對)중국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전년 동기 대비 9.4% 줄었다. 국내 기업의 실적 부진과 해외 기업의 투자 감소라는 이중 악재가 중국 경제를 압박하는 형국이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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