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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싸움이냐"…총학선거 무산된 이 대학, 법원에 간 사연

중앙일보

입력

지난 22일 오전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에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총학생회장 선거를 앞두고 후보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뉴스1

지난 22일 오전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에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총학생회장 선거를 앞두고 후보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뉴스1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되었음을 공고합니다.”

지난달 26일, 한양대 총학생회 선거를 하루 앞두고 갑작스럽게 선거 무산 소식이 학생들에게 전해졌다. 투표를 시작하기도 전에 선거가 무산된 것은 학교나 학생회가 아닌 법원이 '선거 실시 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대학가 총학생회 선거가 곳곳에서 학생들의 외면에 무산되는 가운데, 일부 대학에서는 선거를 둘러싼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선거 규칙을 두고 법정 다툼까지 벌어지는 사례도 등장했다.

법원 가처분 결정까지 간 총학 선거, 왜?

지난 26일, 하루 앞둔 한양대학교의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되었음을 알리는 공고가 학생들에게 안내됐다. 한양대학교 총학생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지난 26일, 하루 앞둔 한양대학교의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되었음을 알리는 공고가 학생들에게 안내됐다. 한양대학교 총학생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한양대 총학 선거가 무산된 것은 한 선본(선거운동본부)의 영문 명칭의 대문자·소문자 표기 논란이 발단이었다. ‘HYLIGHT’라는 이름의 선본이 입후보 추천 서명을 받으면서 ‘hylight’나 ‘HY_Light’, 또는 한글로 ‘하이라이트’등의 표기를 혼용했다. 총학생회장에 입후보하려면 500명 이상의 학생 서명을 받아야 한다. 한양대 총학생회 선관위는 추천 명부를 검토한 뒤 “후보 등록 신청서와 추천인 명부의 선본명이 다르게 기재돼 형식적인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다”며 의결을 거쳐 입후보 등록을 거절했다.

결국 또 다른 선본의 단독 입후보 상태로 27일 선거를 치르기로 했지만 ‘HYLIGHT’ 측은 법원에 선거 실시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동부지법은 “후보자 등록을 거절한 것은 선거 절차상 중대한 하자에 해당한다”며 ‘HYLIGHT’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표기방법에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각 선본 명칭의 발음이 동일하다”며 “서명 명부에서 후보들의 이름은 정상적으로 기재돼 추천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학생들은 법정까지 간 사태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재학생 우승준(19)씨는 “선관위의 결정이 조금 과했다는 생각을 했지만 가처분 결정까지 나왔다는 소식에 놀랐다”며 “학생회에서 자체적으로 문제를 풀지 못하고 정치권 싸움처럼 법정 다툼까지 벌어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재학생 안희(22)씨는 “총학이 없으면 축제나 학생 복지가 소홀해질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선관위 측은 “추후 회의를 거쳐 결정 사항이 생기면 빠른 시일 내로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벌금형 기준 완화’에 “선거 결과 인정 안 하겠다”

지난 23일 배재대학교 학생처가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올린 학생자치기구의 선거에 대한 입장 표명 게시글. 독자 제공

지난 23일 배재대학교 학생처가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올린 학생자치기구의 선거에 대한 입장 표명 게시글. 독자 제공

배재대도 선거 규칙을 둘러싼 법정 싸움을 앞두고 있다. 총학생회가 개정한 선거 규칙을 대학 본부측이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갈등이 커졌다.

그동안 총학생회장은 ‘100만원 이상 벌금형 선고’를 받으면 입후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 배재대 총학생회 선관위는 ‘500만원 이상 벌금형 선고’로 기준을 완화했다. 대신 입후보자는 각 단과대 학생회장의 50% 이상의 추천서를 받도록 했다.

이에 대해 배재대 학생처는 “벌금형 기준을 완화하고 추천서 문턱을 높인 건 공정하고 민주적인 선거를 저해할 수 있다”며 총학생회에 선거 규칙을 이전으로 되돌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총학생회가 지난달 23일 선거를 강행하자 대학 측은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배재대 관계자는 “기존 학생회가 지지하는 특정 후보만 당선시키겠다는 의지로 보인다”며 “선거 규칙의 환원 요청은 학교의 정당한 학생 지도다”고 말했다.

반면 김명현 배재대 총학생회장은 “입후보자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출마 문턱을 낮추면서, 추천서의 대표성은 더 높이기 위한 방책이었다”며 “학교가 이례적으로 학생 자치권에 개입한 것이 매우 부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 측과 협의가 안 될 상황을 대비해 후보자들은 소송까지 준비 중이다”고 말했다.

외면 당하는 총학생회, 감시·견제 공백 상태

지난 21일 오후 연세대 학생회관 앞에서 열린 총학생회 정책토론회. 이날 관람석에 앉아있는 이들은 선거운동원이 대부분이었다. 김민정 기자

지난 21일 오후 연세대 학생회관 앞에서 열린 총학생회 정책토론회. 이날 관람석에 앉아있는 이들은 선거운동원이 대부분이었다. 김민정 기자

이처럼 대학 곳곳에서 선거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는 배경에는 학생들의 무관심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요즘 대학생은 부당한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성향이 강한데도 총학생회의 존재감이 너무 미미하다보니 대학 사회가 제대로 감시와 견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의 한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인 이모씨는 “총학 인기가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정치권 등용문으로서 총학생회장이 되기 위한 경쟁이 있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며 “선거와 활동을 제대로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해선 학내 구성원들의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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