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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항복 다음 날…해방은 실감했지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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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7호 22면

1945년 해방 직후사

1945년 해방 직후사

1945년 해방 직후사
정병준 지음
돌베개

일제가 항복을 선언한 건 1945년 8월 15일. 이 책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해방을 실감한 건 그날이 아니라 다음날부터다. 8월 16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독립투사 2000여 명이 풀려나 종로까지 행진했다. 인파가 모인 휘문중학교에선 여운형이, 경성중앙방송국 라디오를 통해선 안재홍이 각각 연설에 나섰다. 이를 통해 건준(조선건국준비위원회) 출범을 알리고 일본인들과의 충돌 방지를 포함해 조선총독부와 사전에 협의한 내용과 그 의미를 전했다.

해방 직전부터 그해 말까지를 다룬 이 책은 이화여대 교수이자 현대사를 40년 연구하며 『몽양 여운형 평전』 『우남 이승만 연구』 등 여러 저서를 쓴 저자의 신작. 건준-인공과 미군정이 그 중심이다. 소련군의 한반도 점령을 예상했던 조선총독부가 누구와 어떻게 접촉했느냐를 비롯해 사안마다 다른 주장이나 논거 등을 통해 결과적으로 여러 세력의 움직임을 아우른다.

저자는 미군정을 이끈 존 하지의 면면만 아니라 이묘묵을 비롯한 통역들의 역할을 이른바 “문고리 권력”으로 강조한다. 새로 주목하는 대표적 인물이 당시 군의관으로 한국에 들어온 조지 윌리엄스. 선교사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서 15년쯤 살았던 그는 한국어에 능통한 모습이 우연히 눈에 띄어 하지의 개인 비서이자 정치고문으로 3개월 일했다. 한데 이듬해 미국에서 그가 한 연설에서는 지한파에게 기대하는 것과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저자가 그를 “다른 한편으로 일제 식민지 시기 한국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확신과 한국인의 자치 능력 결여에 편견을 가진” 양가적 인물로 평하는 이유다. 통역들의 성향이나 판단은 기독교, 반공, 유학생, 선교사가 세운 학교 등의 인물들을 중용하고 친일파에 관대했던 미군정의 정책, 그리고 한민당의 부상과 연결된다.

미군정의 이 같은 초기 정책을 저자는 점령지의 특정 세력과 연계해선 안 된다는 미 국무부 방침을 어긴 것이라고 지적한다. 나아가 미군정과 이승만의 과도정부 출범 시도, 그리고 이승만의 독촉중협(독립촉성중앙협의회)을 “알려지지 않은 반탁운동”으로서 새로이 주목한다. 해방 직후의 역동성과 이후 현대사의 구도를 파악하는 데에도 요긴하게 읽힐 법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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