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만명 살던 거대도시 신전 앙코르와트…정글 속에 묻힌 이유 [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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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세계사 1, 2

피터 프랭코판 지음
이재황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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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는 이 책의 일부일 뿐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역사학 교수인 지은이는 자연 환경이 어떻게 문명을 만들고 황폐화시켰는지를 보여준다. 화산 폭발부터 가축 길들이기와 수자원 통제, 인간이 유발한 기후변화까지 폭넓은 자연 환경을 종횡으로 다룬다.

한국인의 인기 관광지 앙코르와트를 보자. 동남아시아는 인도와 중국을 연결하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9~10세기 교역으로 번성했다. 중국 도자기와 인도 청동제품, 자바 광택거울에 이집트의 유리공예품까지 오갔다. 크메르(현재 캄보디아)에는 거대도시 앙코르가 들어섰다. 이 도시는 정교한 수자원 관리를 바탕으로 최대 75만 명이 거주했고, 주변에 이들을 먹여 살릴 농경지를 운영했다.

 캄보디아 앙코르에 있는 앙코르와트의 거대한 신전. [사진 책과함께]

캄보디아 앙코르에 있는 앙코르와트의 거대한 신전. [사진 책과함께]

문제는 늘 막히는 수로를 뚫고 쓰레기를 치우는 물 관리에 상당한 인력과 비용이 들었다는 점이다. 권력이 수자원을 허투루 관리하면 가뭄이나 홍수 같은 기후 재앙에 대응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2세기 이 지역 군주가 거대한 ‘건설 잔치’를 벌었다. 이에 따라 수자원 관리 부담이 늘면서 앙코르의 수리시설은 황폐화했다. 주민들은 도시를 떠나야 했고 크메르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앙코르의 거대 신전인 앙코르와트가 오랫동안 정글 속에 묻혔던 이유다.

지은이는 인도에 거대 정복 제국이 잘 나타나지 않는 이유도 자연 환경에서 찾는다. 프랑스 역사학자 조르주 뒤비가 “제국이 없는 곳”으로 묘사했을 정도다. 불교에 귀의해 숲에 불을 지르는 것을 금하고, 살생을 줄인 기원전 3세기 아쇼카의 마우리아 제국이나 4~6세기 굽타 제국 정도가 꼽힐 뿐이다.

지은이는 그 이유를 이 지역의 불안한 자연 환경에서 찾는다. 강에는 거대한 퇴적물이 쌓여 흐름을 방해했고 이에 따라 홍수는 도시를 불안하게 했다. 1330년 델리를 지나간 북아프리카 베르베르인 여행가 이븐 바투타는 “아름다움과 권력을 겸비한 크고 빛나는 도시”라고 감탄했다. 하지만 6년 뒤 다시 이곳을 찾은 그는 이 거대한 도시가 사라지고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운 자연 환경은 교역 도시는 물론 권력의 중심지도 이렇게 황폐화시켰다는 설명이다.

올 여름 키르기스스탄에서 열린 월드 콕보루 컵 대회에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의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 콕보루는 말을 타고 벌이는 전통 스포츠로 울락 타르티시라고도 불린다. [AP=연합뉴스]〉

올 여름 키르기스스탄에서 열린 월드 콕보루 컵 대회에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의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 콕보루는 말을 타고 벌이는 전통 스포츠로 울락 타르티시라고도 불린다. [AP=연합뉴스]〉

지은이는 인류 문명사는 자연에 대한 통제의 역사라고 말한다. 선사시대 동굴벽화는 약 4만 년 전쯤부터 동물에 대한 묘사가 흔해졌다. 인간이 사냥과 가축 사육을 하며 세력을 떨치기 시작한 시기다.

고대 이집트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굴된 관에는 말이 끄는 전차를 탄 파라오의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됐다. 말이 끄는 수레와 전차는 권력자의 힘을 보여준다. 키르기스스탄의 이식쿨에서는 날개 달린 말 모양의 화려한 금장식이 발굴됐다. 중앙아시아와 그 너머의 스텝에서 말이 권력과 재산 유지에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남프랑스에서 나온 고대 로마시대 모자이크는 소로 밭을 가는 모습을 담았다. 지은이는 이 모두가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자연을 통제하면서 문명을 발전시킨 인간은 그 문명으로 자연을 훼손하기 시작했다. 제국주의 시대는 정복된 원주민뿐 아니라 그 지역의 자연에도 위해를 가했다. 고무농장이 한 사례다. 고무농장은 제국주의 시절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주요 산업이었다. 20세기 들어 전 세계적인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광범위한 삼림이 벌채돼 플랜테이션 농장이 됐다. 이런 남벌은 지구환경에 타격을 가했다.

2010년 인도네시아 서칼리만탄주 케타팡 지역에서 숲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2010년 인도네시아 서칼리만탄주 케타팡 지역에서 숲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야자유도 자연을 짜내서 얻는 환금작물이다. 식물성 기름인데도 동물성 유지처럼 상온에서 고체인 야자유는 입술연지부터 비누, 아이스크림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수요가 있었다. 여기에 맞춰 돈을 벌기 위해 인간은 넓은 삼림을 개간해 야자나무 플랜테이션을 만들었다. 이러한 거대한 개간은 생물 다양성과 토양화학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쳤다.  강대국들은 한술 더 떠 남태평양 등지에서 수많은 핵실험을 했다. 지은이는 이러한 핵실험이 20세기 중반 지구 기후 패턴에 영향을 준 듯하다고 지적했다.

이데올로기도 자연환경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중국 권력자 마오쩌둥(毛澤東)은 1950년대 모기‧파리‧참새‧쥐를 박멸하자는 운동을 펼쳤다. 자연의 먹이사슬과 생태계 순환, 그리고 균형을 무시한 이 정책은 뜻하지 않은 비극을 불렀다. 기근이 들면서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헬의 '눈 속의 사냥꾼'. 15세기 중반에 그려진 이 그림은 소빙하기(대략 1550~1800)에 관한 관념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사진 책과함께]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헬의 '눈 속의 사냥꾼'. 15세기 중반에 그려진 이 그림은 소빙하기(대략 1550~1800)에 관한 관념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사진 책과함께]

인간은 이제 기후변화라는 난제를 맞고 있다. 요즘 새로 떠오른 의제로 보이지만 사실 온실효과는 19세기부터 과학적 연구가 진행됐다는 게 지은이의 지적이다. 인류가 지각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1992년 당시 미국의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지구정상회의에서 “우리 아이들은 오늘 이후 우리가 하는 행동으로 우리를 판단할 것이니 그들을 실망시키지 말자”고 말했다. 오늘날 전 세계 지도자들이 인류 문명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데 필수적인 이 다짐을 얼마나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지 의문이다. 원제 The Earth Transfor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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