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의 1심 판결에서 무더기 유죄가 선고돼 더불어민주당이 충격에 빠졌다. 이재명 당 대표의 ‘재판 리스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또 다른 사법리스크가 현실화하면서 내년 총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란 우려가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3부(부장 김미경·허경무·김정곤)는 29일 ‘울산시장 선거개입·하명수사’ 사건의 1심 선고 공판에서 “경찰 조직과 대통령 비서실의 공적 기능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적으로 이용해 투표권 행사에 영향을 미치려 한 선거 개입 행위는 죄책이 매우 무겁다”며 피고인 15명 가운데 12명에 유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청와대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친구인 송철호 전 울산시장의 당선을 돕기 위해 조직적으로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현 국민의힘 대표) 측근에 대한 하명 수사를 실시했다는 의혹이 골자다.
재판부는 “엄중한 처벌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공익사유가 매우 크다”며 당시 울산경찰청장이던 황운하 민주당 의원에 징역 2년6개월(공직선거법 위반)·6개월(직권남용), 송철호 전 울산시장에게 징역 3년(공직선거법 위반)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징역 2년)과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등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핵심 참모들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다만 “증거인멸이나 도망의 우려는 없다”며 이들을 법정 구속하지는 않았다. 송 전 시장 경쟁자에게 경선 포기를 권유했다는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된 한병도 민주당 의원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총선을 4개월여 앞두고 이 사건 1심 재판이 무더기 유죄로 결론을 맺은 건 민주당에 악재다. 이재명 대표의 배임·제3자 뇌물·공직선거법 위반·위증교사 혐의 등 재판이 줄줄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전임 정부까지 도덕적인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총선 공천을 앞두고서 현역 의원인 황 의원이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것도 부담이다. 민주당이 황 의원을 공천하면 사법부를 무시하는 뜻이 되고, 황 의원을 컷오프(공천배제) 하면 이미 부패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는 이 대표와의 형평성 문제가 부각될 수 있어서다. 비(非)이재명계의 한 의원은 “예전 같으면 이런 경우 당 지도부가 해당 인사를 설득하거나 징계하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차단했다”며 “훨씬 더 센 사법리스크를 품고 있는 이 대표 입장에선 공천 불이익 등 조치할 명분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의원은 “당내 기소되거나 수사받는 사람이 40여명인데 이들을 어떻게 건건이 판단하겠나”라며 “결국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당 지도부는 이날 판결 결과에 극도로 말을 아꼈다. 청와대 출신의 의원은 전망을 묻는 말에 “사건 자체만 봐야지, 확대해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답했다. 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일체의 코멘트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또 다른 지도부 관계자는 “지난 5월 통과한 총선 특별당규상 공직선거법 위반이 ‘부적격’ 기준에 들어가는 건 맞지만, 정치탄압으로 판단하면 예외로 둘 수 있으니 논의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황운하 의원은 판결 직후 항소 의지를 밝히며 “검찰의 보복 기소이자, 윤석열 정권의 황운하 죽이기 보복 판결임이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의 피해자인 김기현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헌법파괴, 정치테러에 대해 일부나마 실체가 밝혀진 것에 대해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 이상 늦기 전에 수사가 중단됐던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에 대한 수사가 재개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