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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무기력 드러낸 대중국 외교, 돌파구 찾을 노력은 하는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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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진 외교부 장관과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대신,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 26일 부산 누리마루에이펙하우스에서 제10차 한·중·일 외교장관회의를 하러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박진 외교부 장관과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대신,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 26일 부산 누리마루에이펙하우스에서 제10차 한·중·일 외교장관회의를 하러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한·중·일 외교장관들, 정상회의 일정도 확정 못 해

외교부·안보실의 정보·교섭 능력 철저히 점검해야

2019년 8월 이후 4년3개월 만에 한·중·일 외교장관이 지난 주말 부산에서 만났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3국 정상회의 개최 일정을 확정하지 못했다. 연내 또는 1월에 정상회의를 열고 내년 초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성사시키려던 한국 정부의 대중 외교 구상엔 큰 차질이 생겼다. 정상회의 일정조차 확정 짓지 못한 게 중국 측의 소극적 태도 때문이라지만, 중국을 상대로 한 윤석열 정부의 외교력에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상의 만남은 적잖은 기대를 모았었다. 2019년 이후 중단된 한·중·일 정상회의를 복원할 좋은 계기로 여겨졌다. 지난 9월 서울의 3국 고위급회의(SOM)에서 3국 정상회의를 ‘상호 편리한 가장 빠른 시기’에 개최하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하지만 결과는 ‘빈손’이었다. 왕이 외교부장이 급한 국내 일정을 이유로 서둘러 출국하는 바람에 공동회견과 만찬도 무산됐다.

중국의 기류는 지난 1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미·중 정상회담 이후 확 달라졌다는 것이 외교가의 진단이다. 패권 경쟁으로 냉각됐던 미·중 관계가 정상회담 성사에 일시적 유화 국면으로 바뀌자 중국은 한국과 일본에 아쉬운 소리를 할 이유가 줄어들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중국 측의 이런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한국의 대중 외교가 소극적이고 미진하다는 지적은 피해 가기 어려워 보인다. 외교의 최일선인 주중 대사관이 중국의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부터 의구심을 사고 있다. 예컨대 시 주석의 미국행 당시 중국 외교부는 한국 담당 간부와 통역조차 대동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외교부와 대통령실은 막판까지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중 정상회담 성사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우리 외교부와 국가안보실의 정보력과 교섭력을 심각하게 점검해 봐야 할 대목이다.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 강화는 옳은 방향이지만,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는 결코 포기해서도,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된다. 미·중 패권 대결 와중에 어느 한쪽에 과도하게 올인하는 외교는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 고위층이 불필요하게 상대를 자극하는 언행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한국 경제에서 중국은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북핵·미사일 도발 억제에서도 중국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다각도로, 지속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지난 6월 야당 대표를 만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으로 생긴 오해와 앙금도 가능하면 조기 수습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정부가 대중 외교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관계의 조기 정상화를 위한 돌파구를 시급히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