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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지나친 친중 안하면 미·중 사이 운신 폭 커질 것” [중앙포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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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9일 ‘미·중 패권 경쟁 시대, 한국 경제의 활로는’을 주제로 열리는 2023 중앙포럼을 앞두고 중앙일보는 양국을 대표하는 싱크탱크의 진단과 조언을 들었다. 중국 경제의 성장세가 꺾인 원인과 전망에선 양측의 시각차가 컸다. 하지만 미·중 대결의 격화와 탈(脫)세계화 흐름에 대해선 모두가 패배자가 될 수 있다며 한목소리로 우려했다.

 애덤 포센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소장. AFP=연합뉴스

애덤 포센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소장. AFP=연합뉴스

애덤 포센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소장은 최근 워싱턴 정가에 중국의 성장이 정점을 지났다는 ‘피크 차이나(Peak China)’론에 불을 붙여 주목받은 인물이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시진핑 권위주의 시대’가 열리면서 경제적 자유가 제한됐고, 경제 기적도 막을 내리고 있다고 짚었다.

최근 포린어페어스(2023년 9~10월호)에 쓴 ‘중국 경제 기적의 종말’이 화제다.
“중국 경제의 둔화 원인을 다룬 글이다. 2015년 이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일상적인 상업활동까지 간섭하고 있는 게 중국 경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팬데믹 봉쇄정책 때문에 평범한 중국인마저 자신의 재산과 직장이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간섭과 통제가 현재 중국 경제를 둔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란 얘기다.”
미국의 제재도 중국 경제 둔화에 한몫하고 있을 듯한데.
“미국 제재 때문에 당장 중국이 입은 타격은 거의 없다. 교역은 샛길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요즘 중국 컨테이너선이 멕시코나 베트남을 거쳐 미국으로 들어온다. 미국 선박도 비슷한 샛길을 거쳐 중국에 이르고 있다. 중국인들은 달러를 직접 사지 않는다. 중동 아부다비나 두바이로 위안화를 보낸 뒤 그곳에서 달러로 환전한다. 다만 교역과 투자, 기술 교류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시진핑과 공산당이 자급자족 경제를 추구하도록 유도해 장기적으로 중국 경제에 좋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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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제재 탓에 중국이 폐쇄경제로 갈 수 있다는 건가.
“(중국처럼 큰 나라의) 폐쇄경제는 불가능하다. 다만 미 제재가 중국이 자급경제를 추구하도록 할 수는 있다. 이는 중국과 미국 모두를 가난하게 만들 뿐이다. 시진핑과 공산당이 자급경제 모델을 추구할 경우, 마오쩌둥(毛澤東)이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 등 바이든 정부의 산업정책은 효과가 있나.
“보조금 지급과 세금 감면을 중심으로 한 산업정책으로 업종 내 챔피언이 (시장 경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다. 게다가 군비 경쟁과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중국과 유럽 등도 미국이 주는 보조금에 맞춰 기업을 지원할 수밖에 없다. 결국 바이든의 산업정책은 글로벌 시장을 하나로 통합하는 게 아니라 갈라놓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바이든 행정부가 산업정책을 동원해 중국을 압박하는 이유는.
“미국 내 정치 상황뿐 아니라 내가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작용한 탓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요직에는 ‘세계화는 미국에 좋지 않고, 힘을 활용해서라도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바이든을 설득한 인물들이 있다. 이런 좁아터진 생각은 도널드 트럼프의 세계관의 연장이다.”
미·중 갈등은 사실상 세계화의 종말이지 않을까.
“한 부문의 세계화가 주춤하는 사이 다른 부분의 세계화는 빠르게 진행되곤 한다. 미국과 중국이 상대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대해 규범보다 힘을 이용해 압박하는 바람에 ‘세계화의 질’이 나빠지고 있다. 정치적 힘이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워싱턴에선 중국 제재의 효과를 어떻게 보나.
“사실 제재의 효과가 나타날 수 없다. 반면에 우리는 많은 역효과를 보고 있다. 미·중 사이에 높은 관세장벽이 놓여 있다. 이미 투자된 상대국 자본도 중국과 미국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중국 유학생 유입이 줄었다. 다만 두 나라 정부가 관세장벽 등을 동원해 압박하지만, 교역 상황 등이 보기보다 나쁘지 않다. 그렇더라도 제재 상태가 몇 년 더 이어진다면, 두 나라의 경제적 결별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
미국의 기술 중상주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중국이 첨단 반도체 기술을 얻지 못하도록 막는다고 막아지는 게 아니다. 세계의 기술혁신을 더디게 하고, 비효율만 키울 뿐이다. 중국에 수출하고 싶어 하는 개발도상국이나 한국 같은 동맹국만 화나게 한다. 중국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도 헛돈만 많이 쓰게 된다.”
한국은 미·중 갈등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국이 일본이나 싱가포르처럼 정치적으로 안정돼 친중 국가로 지나치게 기울지 않는다면, (미·중 갈등 국면에서) 한국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이 더 커질 수 있다.” 

☞애덤 포센=1966년 미국 브루클린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버드대에서 정치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97년 연방준비제도(Fed)에서 경제 분석을 담당했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일본 내각부, 유럽 국가의 거시경제정책을 컨설팅했다. 2009~2012년엔 영국 영란은행(BOE) 통화정책위원회 위원이었다. 2013년부터 PIIE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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