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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거장이 만든 학폭물의 진화…진실의 뒤통수 친 '괴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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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새 영화 '괴물'(11월 29일 개봉)은 몰라보게 바뀐 아들(쿠로카와 소야)의 행동에 이상함을 감지한 엄마(안도 사쿠라)가 학교에 찾아가면서 감춰져 있던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을 그렸다. 사진 미디어캐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새 영화 '괴물'(11월 29일 개봉)은 몰라보게 바뀐 아들(쿠로카와 소야)의 행동에 이상함을 감지한 엄마(안도 사쿠라)가 학교에 찾아가면서 감춰져 있던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을 그렸다. 사진 미디어캐슬

학교폭력 소재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불러온 나비효과일까.
학폭, 교사·학부모·아이 간 소통단절 등 학교 현실을 담아낸 영화가 잇따라 관객을 찾는다. 시각을 달리한 작품도 늘어났다. 사건 본질에 대한 이해와 사회 인식의 변화, 현실에 없는 상상까지 더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모양새다.
29일 개봉하는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괴물’은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아동폭력 소재 드라마 ‘마더’의 작가 사카모토 유지와 손잡은 작품이다.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가 부쩍 행동이 이상해진 초등학교 5학년 아들(쿠로카와 소야)의 학교로 찾아가며 소용돌이가 시작된다.
교사의 괴롭힘을 의심하는 학부모, 형식적인 사과를 거듭하는 학교 측의 사정, 아이들 간의 따돌림, 가정폭력, 두 소년의 은밀한 우정까지, 학부모‧교사‧아이 3자의 시선에서 입체적으로 그렸다. 아이들의 세계가 나오는 3장을 거의 다 봤을 때에야 알게 되는 진실이 뒤통수를 친다.

OTT·스크린 찾는 학폭물 변화상

고레에다 "가장 큰 괴물은 부추기는 방관자" 

‘괴물’의 차별점은 어느 한쪽을 문제의 원인으로 규정하지 않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지난 22일 한국 취재진과의 화상 간담회에서 “처음 사카모토 작가의 플롯을 받을 때부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는데 긴장감이 지속됐다. 저도 모르게 ‘괴물 찾기’를 하고 있었다”면서 “관객도 3장을 다 봐갈 때쯤 상황을 알게 된다. 그때 ‘괴물은 나였구나’ 생각하는 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결국 화살을 여기저기 돌리고 있다가 마지막에 나에게 돌아오는 구조라는 것이 이 각본의 뛰어난 점”이라 말했다.

영화 '괴물'(11월 29일 개봉)의 제3장에선 비로소 아이들의 진실이 드러난다. 사진 미디어캐슬

영화 '괴물'(11월 29일 개봉)의 제3장에선 비로소 아이들의 진실이 드러난다. 사진 미디어캐슬

“'일반적인' '남자다운' 등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들이 듣는 아이들에게 억압적이고 폭력적일 수 있다”는 감독의 관점대로다. 굳이 영화에서 괴물을 찾는다면 ‘우리들’과 같은 방관자란 설명이다. 그 축소판이 영화 속 교실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그 학급에서 가장 큰 괴물은 주인공 소년들을 놀리고 괴롭히는 남자아이들이 아니라, 곁에서 집단 속에 얼굴을 감춘 채 부추기는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학폭 가해자, 링 위에서 응징한 교사

동명 웹툰 원작의 영화 ‘용감한 시민’(10월 25일 개봉)은 학교 재단을 ‘빽’으로 둔 안하무인 학폭 가해 학생(이준영)을 햇병아리 기간제 교사(신혜선)가 응징하는 과정을 그렸다. 학폭 피해자인 제자를 지키려고 가면에 얼굴을 감춘 채 암약하던 교사가 가해 학생의 결투 신청으로 링 위에서 맞붙게 된다.

 영화 '용감한 시민'에서 기간제 교사 시민(신혜선)은 안하무인 학폭 가해 학생을 링 위에서 응징한다. 사진 콘텐츠웨이브, 마인드마크

영화 '용감한 시민'에서 기간제 교사 시민(신혜선)은 안하무인 학폭 가해 학생을 링 위에서 응징한다. 사진 콘텐츠웨이브, 마인드마크

학폭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고충 뿐 아니라 학폭 대처에 무능한 학교, 침해된 교권 문제까지 건드린다. 교사와 학생의 주먹다짐이란 소재 탓에 학생이 1년 유급해 성인 나이란 설정을 넣었다. 해법이 안 보이는 학폭의 심각성을 현실에서 불가능한 판타지로 풀었다. 최근 드라마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사적 복수 장르로도 묶인다.
박진표 감독은 “원작을 시나리오로 옮긴 2년 전만 해도 극 중 학폭 묘사가 너무 세다는 의견이 있었다”면서 “우리가 모른 척 했던 학폭‧교권‧학부모 갑질 문제가 최근 드러나고 있다”고 밝혔다.

학폭물 새로운 빌런, '갑질' 학부모 

1일 개봉한 영화 ‘독친’은 청소년 자녀에게 든든한 보루가 돼야 할 부모의 사랑이 너무 지나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혜영(장서희)은 등교한 줄 알았던 모범생 딸이 죽은 채로 발견되자, 형사가 말한 자살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영화로 데뷔한 김수인 감독이 대치동 학원 강사 시절 보고 들은 내용, 주변 이야기를 통해 그간 잘 드러나지 않은 현실의 문제들을 녹여냈다. 학교와 청소년을 둘러싼 문제가 갈수록 복잡해지는 시대상을 담았다는 분석이다.

영화 '독친'은 부모의 지나친 사랑이 자녀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을 그렸다. 실제 감독이 대치동 학원 강사 시절 보고 들은 현실을 녹여냈다. 사진 트리플픽처스

영화 '독친'은 부모의 지나친 사랑이 자녀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을 그렸다. 실제 감독이 대치동 학원 강사 시절 보고 들은 현실을 녹여냈다. 사진 트리플픽처스

영화평론가이자 심리학자인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전임교수는 “예전엔 영화 ‘친구’처럼 폭력적인 선생님이 방점이었다면 요즘은 오히려 학부모가 궁극의 빌런이란 인식이 생겼다. 교권 침해의 원인이 된 아이들에 대한 지나친 과보호‧이기주의, 재력‧권력을 가진 강력한 계층이 학부모”라면서 “영화 ‘괴물’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2022)처럼, 가해 학생 이면의 사회 환경, 성장 배경, 가족 등 어떻게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었는지 묘사한 작품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학폭물, 홀로코스트 작품 3단계 진화 따른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요즘 벌어지는 학폭은 과거처럼 피‧가해자의 이분법으론 해결이 안 된다”면서 “‘괴물’의 경우 예전 방식으론 아이들의 고민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3자 시선 구조로 한 단계 더 들어가 보여준다”고 평했다.
학폭을 묘사하는 시선이 성숙해지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드라마 비평가인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홀로코스트 비극을 다루는 콘텐트가 3단계로 진행되는데, 학폭도 같은 단계를 거치고 있다”면서 “1단계가 피해자의 고통에 초점을 맞췄다면, 2단계는 가해자의 악행 폭로, 반성‧회개를 다룬다. 3단계인 지금은 방관자를 또 하나의 가해자이자 공범으로 소환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과거 학폭에 대해 받은 대로 육체적 고통을 돌려주는 서사가 많았다면, ‘더 글로리’ 등 요즘 콘텐트들에선 심리적인 부분도 복수의 영역에 포함된다"면서 "주제의식도 단순한 반성, 폭로를 넘어 그 다음의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고 짚었다.

"사적 학폭 복수극, 현실서 패배주의 우려"  

학폭 묘사의 수위가 높아지는 건 우려할 점이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 때문에 사적 복수극으로 대리 만족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심영섭 교수는 “최근 학폭물 속 가해자들은 범죄자 수준인데 비해 피해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건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 폭로 밖에 없다. 결국 모든 것이 사적 복수로 귀결된다”면서 “학폭에 대한 사회적 성찰 대신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좌절감, 교육 현장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패배주의가 심해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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