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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91) 유비는 백제성에서 눈 감고, 제갈량이 후주와 촉을 이끌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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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는 육손의 공격에 크게 패하고 백제성으로 도피했습니다. 마량이 성도에서 돌아왔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유비도 승상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성도로 돌아가서 여러 신하를 볼 낯도 없었습니다. 백제성에 머물기로 하고 역관(驛館)을 고쳐 영안궁(永安宮)이라고 했습니다.

조비는 가후에게 촉과 오 중에서 어디를 먼저 공격해야 하겠냐고 물었습니다. 가후는 촉에는 제갈량이 있고 오에는 육손이 있으며, 요충지마다 군사들을 둔치고 있어 단시일에 쳐부수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지켜보면서 두 나라의 변화를 기다리다가 때를 보아 움직이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조비가 오를 공격하기 위해 삼로(三路)로 군을 진군시켰다고 하자, 상서 유엽도 오의 육손이 이미 방비를 했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조비가 언짢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경은 전에 짐에게 오를 치라고 권하더니 지금은 어째서 치지 말라고 간하시오?

형편이 그때와는 아주 다릅니다. 그때는 동오가 촉에게 여러 번 패해 기세가 크게 꺾여 있었기 때문에 공격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승을 거두어 사기가 한껏 올라있기 때문에 공격하면 안 됩니다.

척후병이 달려와 동오가 대비를 하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유엽은 현 상황에서 중지할 것을 청했지만 조비는 듣지 않고 군사를 이끌고 갔습니다. 동오는 여범에게 군사를 이끌고 조휴를 막게 하고, 제갈근에게 군사를 이끌고 남군에서 조진을 막게 하고, 주환에게 군사를 이끌고 유수에서 조인을 막도록 했습니다. 결국, 조비가 보낸 군사들은 동오의 방어에 막혀 모두 패하고 말았습니다. 조비는 어쩔 수 없이 군사를 이끌고 낙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로부터 오와 위는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한편, 영안궁에 있는 유비가 병이 들어 앓아 누었습니다. 병세가 점점 위중했습니다. 비몽사몽 간에 관우와 장비의 혼령과 만났습니다. 유비는 자신이 곧 죽을 것임을 알고는 성도로 사자를 보냈습니다. 승상 제갈량과 상서령 이엄 등을 불렀습니다. 제갈량은 태자 유선에게는 성도를 지키게 하고 유비의 둘째, 셋째 아들인 노왕 유영과 양왕 유리를 데리고 영안궁으로 왔습니다.

‘새가 죽을 때는 그 울음소리가 애처롭고, 사람이 죽을 때는 그 말이 착하다’고 하셨네. 짐은 본래 경들과 함께 역적 조가를 섬멸하고 한나라를 붙들어 세우기로 하였는데, 불행하게도 중도에서 이별해야겠네. 수고스럽지만 승상은 이 조서를 태자 선에게 전해주고, 예사로운 말처럼 여기지 말도록 모든 일을 승상이 더욱 지도해 주기 바라네.

폐하! 용체를 쉬시도록 하소서. 신 등은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해 폐하의 지우지은(知遇知恩)에 보답하겠나이다.

승상은 조비보다 열 배는 나은 재주를 가졌으니 반드시 나라를 안정시키고 끝내는 큰일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일세. 만일 우리 큰 자식을 도울만하면 돕고, 그렇지 못하면 자네가 직접 성도의 주인이 되도록 하시게.

신이 어찌 감히 고굉(股肱)의 힘을 다하지 않고 충정(忠貞)한 절의(節義)를 다하여 대를 이어 목숨을 바치지 않겠습니까!

너희들은 명심해라! 짐이 죽으면 너희 3형제는 모두 나처럼 승상을 섬기도록 하거라. 절대 소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유비는 안도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백제성에서 제갈량에게 유언하는 유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백제성에서 제갈량에게 유언하는 유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유비가 오를 치고자 삼협으로 향하나 蜀主窺吳向三峽
애끓게도 죽은 곳은 영안궁이었네. 崩年亦在永安宮
황제의 깃발 빈 산 너머 펄럭이니 翠華想像空山外
옥빛 대궐도 공허한 들판 절에 있었구나. 玉殿虛無野寺中
낡은 사당 숲속에는 왜가리가 깃들고 古廟杉松巢水鶴
명절이면 촌로들만 이곳을 찾네. 歲時伏臘走村翁
무후의 사당이 언제나 옆에 있어 武侯祠屋長隣近
군신의 구별 없이 함께 제사 받드네. 一體君臣祭祀同

서기 223년. 이릉대전에서 대패하고 백제성으로 피신한 유비는 병과 한이 깊어 63세의 나이로 붕어(崩御)했습니다. 제갈량은 영구를 성도로 모셔 혜릉에 장사 지내고 소열황제(昭烈皇帝)로 추존했습니다. 이어 태자 유선을 황제로 세웠습니다. 조비는 유비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뻤습니다. 걱정거리가 없어졌으니 이참에 군사를 일으켜 공격할 생각이었습니다. 가후가 말렸습니다. 제갈량이 지키고 있기도 하지만 상란(喪亂) 중에 공격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마의가 가후의 말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어린 나이에 황제에 오른 유선. 출처=예슝(葉雄) 화백

어린 나이에 황제에 오른 유선. 출처=예슝(葉雄) 화백

이런 기회에 쳐들어가지 않고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습니까!

오! 어떤 계책이 좋겠는가?

중원의 군사들만 일으켜서는 단시일 안에 승리를 거두기는 어렵습니다. 반드시 오로(五路)의 대군으로 사방에서 협공해야만 제갈량이 앞뒤에서 구원할 수 없을 터이니, 그때 도모할 수 있습니다.

조비는 사방으로 비밀리에 사람들을 파견하고 조진에게는 10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양평관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곧장 촉에도 알려졌습니다. 후주 유선은 매우 놀라 제갈량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병이 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했습니다. 후주가 제갈량을 만나러 갔습니다. 제갈량을 만난 후주는 제갈량을 다그쳤습니다. 그러자 제갈량이 말했습니다.

강왕 가비능, 만왕 맹획, 반장 맹달, 위장 조진, 이 사로(四路)의 군마는 신이 이미 모두 물리쳤습니다. 다만 손권 쪽의 군마가 남아 있는데 신은 물리칠 계책을 이미 세워 놓았으나 말 잘하는 사람이 꼭 하나 있어야 되겠는데, 그런 사람을 구하지 못해 곰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폐하! 무엇하러 걱정하십니까?

상부의 계책은 정말 귀신도 예측하지 못하겠군요.

위의 공격에 대비책을 마련하고 후주를 안심시키는 제갈량. 출처=예슝(葉雄) 화백

위의 공격에 대비책을 마련하고 후주를 안심시키는 제갈량. 출처=예슝(葉雄) 화백

후주는 제갈량을 만나자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제갈량은 손권에게 보낼 사자로 등지를 생각해두고 그에게 한나라를 중흥시키려면 어느 나라를 먼저 공격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등지가 자기 생각을 밝혔습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위는 비록 한나라의 역적이지만 세력이 너무 커 단시일 안에 흔들어 놓기는 어려우니 천천히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주상께서 갓 보위에 오르시어 민심이 안정되지 않았으니, 동오와 연합하여 순치(脣齒)의 관계를 맺고 선제 때의 원한을 깨끗이 씻어버리는 것이 바로 장래를 위한 계책이라 여겨집니다. 승상의 뜻은 어떠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제갈량은 등지의 말을 듣고 크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동오 설득사(說得使)로 임명하여 손권에게 보냈습니다. 등지는 어떻게 예전처럼 촉오동맹을 맺을 수 있을까요.

모종강은 유비가 제갈량에게 어린 아들을 부탁하는 장면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선주가 제갈량에게 어린 아들을 부탁하는 말을 보면 동오정벌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니라, 위의 정벌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주는 제갈량에게 “자네 재주는 조비보다 열 배는 낫다”고 말했다. 어째서 손권보다 열 배는 낫다고 말하지 않았겠는가? 한나라의 원수는 위나라이고, 자신의 상대는 조씨(曺氏)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선주는 또 “사자(嗣子)를 도울만하면 돕고, 그렇지 못하면 직접 그 자리를 차지하라”라고 했다. 그 말은 역적을 토벌할 만하면 돕고, 역적을 토벌할 위인이 못되면 직접 그 자리를 차지하라는 말과 같다. 역적을 토벌하느냐 못하느냐에 중범을 두고 있기 때문에 아들이 황제 자리를 잇는 것에 대해서는 큰 무게를 두지 않았다. 이것이 제갈량이 전후 출사표를 올리며 그만두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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