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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90) 칠백리 영채를 불태운 육손, 살기 위해 백제성으로 도망간 유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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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칠백 리에 걸쳐 40여 곳이 넘는 영채를 수풀이 우거진 산기슭으로 옮기자 육손은 대단히 기뻐했습니다. 즉시 군사를 이끌고 직접 동정을 살폈습니다. 평지 둔덕에 허약한 군사들이 있었습니다. 주태가 가서 무찌르겠다고 했습니다만 육손은 복병이 있음을 간파하고 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촉군이 더없이 와서 욕하며 꾸짖어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유비의 매복작전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육손은 유비가 영채를 완전히 옮기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부하 장수들은 영채가 완성되면 어떻게 무찌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육손이 말했습니다.

칠백리 영채가 화공에 무너진 채 도망치는 유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칠백리 영채가 화공에 무너진 채 도망치는 유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여러분은 병법을 모르시오. 유비는 바로 이 세상의 사납고 야심 찬 영웅인 데다가 지략까지 겸하고 있소. 그의 군사가 처음 왔을 때는 규율이 매우 엄했지만, 지금은 싸우고 싶어도 싸우지 못하고 오랫동안 지키기만 하여 군사들은 피곤하고 사기도 떨어져 있소. 지금이 바로 무찌를 기회요.

유비는 효정에서 수군을 모두 일으켜 앞장세우고 장강을 따라 오나라 경계로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황권이 퇴각하기 어려움을 들어 후진(後陣)에 남으라고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유비는 듣지 않았습니다. 군사를 둘로 나눠 강 북쪽은 황권에게 지휘토록 하고, 강 남쪽의 군사는 본인이 직접 지휘하며 진격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조비는 고개를 젖히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유비는 병법을 모른다. 진지를 7백 리나 늘어놓고 싸우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고원이나 습지 험한 곳에 군사를 둔친다는 것은 병법에서 대단히 꺼리는 일이다. 유비는 반드시 동오 육손의 손에 패할 것이다. 열흘 안에 반드시 소식이 올 것이다.

여러 신하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두 군사를 파견하여 대비하라고 청했습니다. 조비는 이참에 명령을 내렸습니다.

육손이 만약 이기게 되면 반드시 동오의 군사를 모두 이끌고 서천으로 쳐들어갈 것이다. 오군이 멀리 가면 나라 안은 텅 빌 터이니, 짐은 싸움을 돕겠다고 핑계를 대고 일제히 삼로(三路)로 쳐들어가면 동오는 힘 안 들이고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조인은 유수(濡須)로 나가고, 조휴는 동정호(洞庭湖) 어귀로 나가고, 조진은 남군(南郡)으로 나가되, 삼로의 군마는 날짜를 맞추어 몰래 동오를 기습하라. 짐이 뒤따라 지원하러 가겠다.

한편, 마량은 제갈량을 만나 유비의 진세를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제갈량은 그림을 보다가 탁자를 내리치며 비명처럼 외쳤습니다.

누가 주상께 이렇게 영채를 치라고 했는가? 당장 그의 목을 쳐야겠다.

모두 주상께서 직접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계책이 아닙니다.

아, 이럴 수가! 이제 한나라의 운수도 끝장났구나!

동오의 육손은 촉군의 태만해진 모습을 보자 더는 방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공격에 나설 차례가 된 것입니다. 육손은 전투에 능숙하지 못한 순우단에게 촉군의 영채 하나를 뺏도록 명령했습니다. 용장인 서성과 정봉에게는 순우단이 패하고 오면 구원만 해서 오도록 명령했습니다. 육손의 생각대로 순우단은 촉군에게 패하고 돌아왔습니다. 서성과 장봉이 걱정했지만 육손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나의 이번 계책을 꿰뚫어 볼 사람은 제갈량뿐이다. 그런데 천행으로 그가 이곳에 없으니 그것은 하늘이 나에게 큰 공을 세우라는 것이다.

육손은 동남풍이 불면 곧장 촉군의 영채에 불을 지르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유비를 잡을 때까지 밤낮으로 쉬지 말고 뒤따라 공격하라고 했습니다. 유비는 육손의 깔보고 그의 계략은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참모인 정기가 간했지만 무시했습니다. 결국 유비는 육손의 맹공을 받고 괴멸되었습니다. 조운의 용맹으로 겨우 목숨을 건져 백여 명의 부하들과 함께 백제성으로 피신했습니다. 일개 서생일 뿐이라고 조롱당하던 육손이 유비의 대군을 괴멸시키자 후세 사람들이 그를 우러르는 시를 지었습니다.

이릉대전서 패한 유비가 피신한 백제성. 허우범 작가

이릉대전서 패한 유비가 피신한 백제성. 허우범 작가

화공으로 칠백 리 영채를 무찌르니 持矛擧火破連營
현덕은 살기 위해 백제성으로 도망가네. 玄德窮奔白帝城
그 이름 하루아침에 촉과 위를 놀라게 하니 一旦威名驚蜀魏
오왕이 어찌 육손을 공경하지 않겠는가. 吳王寧不敬書生

대승을 거둔 육손은 승리의 여세를 몰아 추격을 계속했습니다. 한참을 뒤쫓다 보니 살기가 느껴졌습니다. 재삼재사 알아보게 하였습니다. 그곳에는 수십 개의 돌무더기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육손은 제갈량의 속임수라 믿고 석진(石陣)을 통과하려고 하였습니다. 순간, 일진광풍에 휩싸여 빠져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제갈량의 팔진도(八陣圖)에 걸려든 것입니다. 육손은 제갈량의 장인인 황승언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제갈량을 존경했던 두보는 이 구절에서 시 한 수를 지어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공은 위촉오 삼국을 뒤덮고 功蓋三分國
이름은 팔진도로 드높였네. 名成八陣圖
강물이 흘러도 돌은 아니 구르니 江流石不轉
오를 무찌르지 못해 한이 된 것이네. 遺恨失呑吳

육손은 즉각 추격을 금지하고 군대를 철수시켰습니다. 이제껏 두 나라의 싸움을 지켜보던 위나라의 조비가 기습해 올 것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육손이 군사를 물린 지 이틀이 되던 날, 세 곳에서 위군이 국경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급보가 날아왔습니다. 육손의 생각이 적중했던 것입니다. 육손은 어떻게 삼로로 몰려오는 위군을 막을 수 있을까요. 모종강은 육손이 순우단을 보내 일부로 패하게 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이릉대전을 승리로 이끈 육손. 출처=예슝(葉雄) 화백

이릉대전을 승리로 이끈 육손. 출처=예슝(葉雄) 화백

‘적의 사기를 꺾어 놓는 전략을 쓰는 사람은 앞으로 있을 대접전을 위해 먼저 소규모 접전을 벌여 적의 사기를 꺾어 놓는다. 장차 있을 대접전에서 이기기 위해 먼저 소규모 전쟁을 벌여 이김으로써 적의 사기를 꺾어 놓는 것이다. 이것이 주유가 썼던 전략이다. 적을 교만하게 만드는 전략을 쓰는 사람은 앞으로 있을 대접전을 위해 먼저 겁을 먹고 나가지 않는 것처럼 하여 적의 마음에 교만을 심어 놓는다. 장차 있을 총공격에서 이기기 위해 먼저 소규모 전쟁을 벌임으로써 적을 교만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다. 이것이 육손이 썼던 전술이다. 적이 처음 왔을 때는 당연히 그 예봉을 피해야 하는데 도리어 그 예봉을 꺾어 놓았으니 이것이 기이했던 주유의 전략이고, 적이 여러 번 이긴 다음에는 그 교만을 무찔러야 하는데 도리어 그 교만을 부추겼으니 이것은 육손이 보여준 변화된 전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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