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당신이 잘 찍은게 아니다…반가사유상 인증샷 놀라운 비밀 [더 헤리티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최욱 건축가

더 헤리티지

‘불멍’을 아시나요? 국립중앙박물관의 ‘불멍’(불상을 멍하게 바라봄) 말입니다. 2년 전 국보 금동반가사유상 두 점만을 위한 ‘사유의 방’이 생긴 이래 13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불멍’을 하고 갔습니다. 1400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고대인부터 MZ세대까지 ‘사유’를 교유하는 놀라운 공간인 겁니다. 인증샷 명소가 된 이 방, 공간 설계의 비밀을 소개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을 설계한 최욱 건축가가 반가사유상을 바라보고 있다. 방은 원반 무대를 기울여 시선이 불상으로 바로 향하도록 설계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을 설계한 최욱 건축가가 반가사유상을 바라보고 있다. 방은 원반 무대를 기울여 시선이 불상으로 바로 향하도록 설계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31만7741명(2023년 10월 12일 기준). 2021년 11월 국립중앙박물관에 국보 금동반가사유상 두 점만을 위한 ‘사유의 방’이 생긴 이래 누적 관람객 숫자다.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개관했음에도 하루 수백 명씩 들러 ‘불멍’(불상을 멍하게 바라봄)을 즐겼다.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기 전 각각 국보 78호와 83호로 불린 이들 불상은 상설전시실 2층에 단독 공간이 생긴 뒤로 존재감이 확 커졌다. 각각 6세기 후반(78호)과 7세기 전반(83호)에 만들어진 두 반가사유상이 439㎡(약 133평) 크기의 사유의 방에 나란히 전시돼 있다.

이 공간을 설계한 최욱(60) 원오원아키텍츠 대표는 북촌의 두가헌, 학고재 갤러리,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현대카드 영등포사옥 등으로 널리 알려진 건축가다. 그는 설계하기 전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당시 직함)으로부터 ▶반가사유상 두 점만 단독 공간에 전시해 달라 ▶유리 없이 노출하되 두 불상이 우러러 보였으면 좋겠다고 요청받았다.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풀기 어려운 숙제였다.

“한참을 고민하다 고등학교 때 땡땡이치고 종종 갔던 소극장 생각이 났어요. 연극은 배우의 표정이 보여야 하는데, 일반적인 맨눈으론 무대까지 거리 24m가 한계치입니다. 반가사유상 전용 공간에서 가까이서든, 멀리서든 고유의 자태와 표정이 보일 수 있게끔 하자 싶어 박물관 측에 그만한 넓이를 내달라고 요구했어요. 이 공간 길이가 딱 24m입니다.”

마치 극장처럼 컴컴한 복도를 거쳐 사유의 방에 들어서면 멀찌감치 두 반가사유상이 앉아 있다. 사면은 온통 불그스레한 황톳빛이다. 이 황토 벽은 위에서부터 서서히 안쪽으로 비스듬히 좁혀 오는데, 가만 보면 바닥도 기울어 있어 두 불상이 앉은 곳이 살짝 높다. 이들이 배치된 타원형 무대도 살짝 기울어 있다. 황토 벽에서 배어나오는 희미한 숯내, 흙내가 고요한 공기와 어우러지면서 불상 주변에 거대한 신비를 만들어낸다.

“사방의 조명이 오로지 금동불상만 향하고 있죠. 진열대도 옻칠을 통해 빛을 최대한 죽여서 결과적으로 오롯이 빛나는 불상이 공간을 압도하게 했어요. 원반 무대를 살짝 기울인 것도, 그래야 면적이 아닌 테두리에만 빛이 가해져 시선이 불상으로 바로 향하거든요.”

불상의 전시 형태도 고심했다. 인체의 절반 크기에 불과한 불상에 실제 이상의 존재감을 주게끔 진열대 높이를 수차례 수정했다. 최종적으론 가까이 갔을 때 관람객 눈높이가 불상의 배꼽 부분, 손을 올리면 불두(佛頭) 높이가 되게끔 했다. 마지막으로 뻥 뚫린 공간에서 불상 앞뒤를 각각 관람하는 이들의 시선이 부딪치는 문제가 남았다. 이건 타원 무대로 해결했다.

“무대가 타원이면 몸이 자연스럽게 돌게 돼 있어요. 일종의 탑돌이 같은 거죠.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불상이 다르게 보일 뿐만 아니라 각도가 서로 어긋나면서 앞뒤 시선이 겹치지 않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인증샷’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불상 찍는 카메라 프레임에 타인이 정면으로 잡히는 일이 거의 없죠.”

박물관 기념품숍에서 파스텔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이다. 최근엔 짜리몽땅 캐릭터 인형도 잘 팔린다. 모두 MZ세대 디자이너의 발상을 박물관 측이 쿨하게 수용하면서다. 사유의 방에서 명상의 시간을 즐기고 돌아서는 발걸음에 반가사유상 ‘굿즈’를 소유하는 게 이들 정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