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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장환칼럼] 비인기 종목 외면받는게 국민탓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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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제15회 아시안게임 개막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개막식은 12월 1일이지만 3일 전인 28일에 한국과 방글라데시의 축구 예선전이 벌어진다. 15일간의 아시안게임 기간 중에 미처 다 끝내지 못하는 축구, 야구 등은 개막 전에 미리 경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2006년은 정말 정신없는 한 해였다. 1월과 2월에는 미프로풋볼(NFL)과 하인스 워드 열풍으로, 3월에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으로, 5월과 6월에는 독일 월드컵으로, 그리고 이제 12월에는 아시안게임이 대미를 장식한다.

원래 스포츠 세계에서는 짝수 해가 바쁜 해고, 홀수 해가 좀 느슨하다. 2년 간격으로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그리고 겨울, 여름 올림픽이 번갈아가면서 열린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한 가지 걱정이 생긴다. 소위 '비인기 종목'과 '인기 종목'에 대한 비판과 애국심의 회오리 바람이 한바탕 휩쓸 것이기 때문이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이 열릴 때마다 생기는 현상이다.

한국은 이번에도 금메달 70개 이상을 따내 일본을 제치고 종합 2위를 지킨다는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금메달을 무더기로 따내는 '효자 종목'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번에 무더기 금메달을 기대하는 종목은 태권도, 양궁, 레슬링, 볼링, 사이클, 펜싱, 유도 등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비인기 종목이다.

반면에 축구나 야구, 농구 같은 인기 종목은 금메달 1개를 따든가, 아니면 동메달도 못 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언론이나 스포츠팬들의 관심은 당연히(?) 이들 인기 종목에 쏠려있다.

항상 이때마다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금메달 딸 때만 환호하다가 대회가 끝나면 언론이고, 국민이고 다 모른 체한다고. 비인기 종목을 살려야 한다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여자핸드볼 팀의 투혼에 많은 국민이 감동했다. 그래서 '핸드볼을 살리자'는 캠페인도 일어났고, 실제로 삼척에서 열린 핸드볼대회에는 관중이 체육관을 메워 핸드볼 관계자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다시 원위치다. 그리고 이제 아시안게임을 맞이했다.

자, 이 시점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금메달이 쏟아지면 언론과 국민은 또 환호할 것이다. 그리고 대회가 끝나면 이번에도 다시 그 열기는 식을 것이다.

'非 人氣'는 인기가 없다는 말이다. 왜 인기가 없을까? 한 마디로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취재하면서 한국에서는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이, 레슬링이 '재미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장내 아나운서의 박진감 넘치는 중계에, 득점 때마다 울려퍼지는 경쾌한 음악, 쉬는 시간에 관중과 함께 하는 신나는 프로그램. 프로축구, 프로 야구, 프로 농구에서나 맛볼 수 있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는 없다. 썰렁한 체육관에 '찍-찍'거리는 선수들 신발 끄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애국심에 호소해서 마음먹고 찾아갔다 하더라도 두 번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 내 돈 들여서, 내 시간 내서 가기는 '아깝다'.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른 뒤 'K-리그를 살리자'는 캠페인이 한국을 뒤흔들었다. 국내 프로축구가 살아야 한국 축구의 수준이 올라가고, 국가대표도 산다는 논리였다. 맞다. 그러나 매번 심판 판정에 항의하고, 팬들에 서비스하기보다 이기는 데만 집착하고, 골도 들어가지 않고, 재미없는 축구를 하면서 축구장을 찾지 않는다고 팬들을 비난한다면 앞뒤가 바뀐 것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명승부를 펼치고 많은 메달을 따주는 종목에 국민은 열광할 것이다. 정치판은 시끄럽고, 경기는 회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부동산만 날뛰어 재미가 하나 없는 국민에 기쁨을 주는 그들은 말 그대로 '효자'다.

한 가지 더 기대한다면 왜 우리가 '비인기 종목'인가 곰곰이 생각해보고, 어떻게 하면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해 주길 바란다.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은 또 한 번 자신과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이렇게도 한 번 생각해보자. 금메달을 따는 종목인데 인기가 없다고 화내지 말고, 평소 무관심 속에서도 메달을 따낸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사실이 그렇다. 모든 종목이 다 인기를 얻을 수는 없다.

손장환 스포츠부문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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