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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평생학습은 미래의 권리이자 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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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

수학자이기도 했던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의 소설 『거울나라의 앨리스』에는 붉은 여왕의 경주가 나온다. 여왕은 숨 막힐 정도로 빨리 달릴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거기서는 그렇게 달려야만 같은 장소에 머무를 수 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면 적어도 두 배는 더 빠르게 달려야 한다. 이 장면에서 먼저 드는 생각은 그런 세계에서 산다면 얼마나 괴로울까였다. 가상의 세계에나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상황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와 가까이 있는 실제 세계다. 흐르는 물에 사는 민물고기는 물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떠밀려 내려가게 된다. 민물고기가 바다로 떠내려가지 않는 것은 계속 헤엄치기 때문이다. 민물고기의 세상에선 헤엄치지 않으면 하류로 떠밀려 내려가고, 두 배 빠르게 헤엄쳐야 상류로 갈 수 있다.

지식의 생명 점점 짧아지는 시대
대학 졸업장만으론 버틸 수 없어
동화 속 붉은 여왕처럼 달리려면
평생 즐겁게 공부할 수 있게 해야

붉은 여왕의 경주는 군비 경쟁이나 생명의 진화처럼 경쟁하면서 공존하는 사회의 모습을 설명하는 가설로 사용돼왔다. 이런 분야는 책이나 뉴스를 통해서나 접할 수 있는 영역이어서, 대다수 시민의 일상적인 삶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상황이 점점 달라지면서 변화의 물결이 우리의 일상생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정보·디지털·인공지능·의생명 분야의 눈부신 발전은 우리 사회의 지형을 급속히 바꿔놓았다. 그 변화의 속도와 활용도는 앞으로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기계는 외관상으로는 인간과 점점 더 비슷해질 수도 있겠지만, 여러 능력에서 인간을 압도적으로 추월할 것이다. 자동차와 장거리 경주를 한다거나 인공지능과 암기력을 겨루는 것처럼 그 승패가 이미 정해져 있는 상황이 곳곳에서 펼쳐질 것이다. 그러면 인간이 하던 일의 대부분은 기계와 로봇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다. 여러 연구보고서가 지적하는 것처럼 현재 우리 사회의 직업군 중에서 20년 후에도 존속할 직업군은 기껏해야 반 정도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전 세대는 평생직장에서 평생직업을 가지고 일했다. 한 가지 능력만 있어도 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충분했기에 대학을 나오면 더 이상 공부하지 않아도 됐다. 이런 상황은 지식기반 사회로 변하면서 확연히 달라진다. 미래 사회에서 지식은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지식 기반 산업뿐 아니라 사회 경제 체계의 중추적 요소로 작용하면서 국력의 기초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기여와 역할을 충실히 하게 하고 자아 성취를 이루게 하는 기본 요소가 될 것이다. 지식의 사회적 역할과 중요성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지식의 축적 속도가 빨라지면서, 지식의 총량이 증가하고 지식체계의 지형이 변하는 속도가 더욱 가파르게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기초 지식이 아닌 한, 지식의 유효 수명은 점차 짧아지게 된다. 인간의 수명은 늘어나지만 지식의 유효 연한은 짧아진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등장하면서 사회 구조와 조직이 바뀐다. 지금의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이 나타나며, 그 등장과 소멸의 간격은 점점 좁아진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대학은 대부분 사라질 수도 있지만, 설령 존재하더라도 졸업하고 10년만 지나면 대학에서 배운 지식만으로는 새로 생긴 일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대응하여 자신의 역할을 하면서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려면 새로운 지식을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과거가 평생직업의 시대였다면, 미래는 평생학습·평생교육의 시대다. 붉은 여왕처럼 계속 뛰어야 하고, 점점 빨리 뛰어야 한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붉은 여왕처럼 밤낮으로 쉬지 않고 뛰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건 우리에게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바람직하지도 않다. 지속 가능한 달리기가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평생교육이 필요하다는 이 지점에서 약점을 드러낸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인의 업무 역량은 20세 초반에서 정점에 이르고 30세 초반까지는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지만, 이후 OECD 평균보다 낮아지면서 가파르게 하락한다. 역량 개발을 위한 재교육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량 강화를 위한 학습권을 보장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비용지원 등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공부가 재미있어야 한다. 그래야 평생 공부할 수 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너무 많이 공부하라고 강요한다. 인생의 모든 것이 대입 전형으로 결정되는 것처럼 학교와 학원을 쉴 틈 없이 돌게 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이해하기보단 차라리 암기하는 게 고득점을 얻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공부가 어떻게 재미있겠는가. 이렇게 정신적으로 탈진 상태에서 대학에 들어가니 20대 초반 이후 한국인의 역량이 하락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미래엔 어느 대학을 다녔는지가 아니라, 평생 즐겁고 행복하게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 평생학습은 미래의 의무이고 권리다.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