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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김기현 총선예산 '노터치'…이러고 예산 심사하는 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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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3월 23일 서울 성북구 장위2동 주민센터에서 열린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법 관련 현장간담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3월 23일 서울 성북구 장위2동 주민센터에서 열린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법 관련 현장간담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시작한 국회가 4·10 총선을 의식한 ‘선심성 퍼주기’ 경쟁을 시작했다. 정부는 긴축 기조를 강조하고 있지만, 여야는 아랑곳하지 않고 선거용 예산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국회는 지난 13일부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산하 소위원회에서 새해 예산안 심사에 들어갔다. 지난 8월 정부는 올해 예산보다 2.8% 증가하는 데 그친 656조9000억원 규모의 예산안을 제출했다. 2005년 이후 19년 만에 가장 작은 증가폭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예산안과 관련해 그동안 꾸준히 일관된 메시지를 발신했다. “전 정부의 ‘재정 만능주의’와 ‘선거 매표’를 단호히 배격하겠다”(8월 29일) “어려운 서민을 두툼하게 지원해주는 쪽으로 예산을 재배치를 시키면 ‘내년 선거 때 보자. 아주 탄핵시킨다’ 얘기까지 나온다. 그래서 제가 ‘하려면 하십시오’(라고 한다)”(11월 1일) 등이었다.

하지만 국회는 정부와 정반대다. 예산안 심사에 앞서 ‘증액할 예산’부터 발표했다. 지난 13일 여당인 국민의힘은 ‘5대 분야 40대 주요 증액 사업’을 제시했다. 여기엔 당장 급해 보이지 않는 항목이 적지 않다는 평가다. ‘기후 위기 대응’ 명목으로 명절 기간 전국민에게 반값 여객선 운영 등 대중교통 이용을 지원하겠다는 게 대표적이다. ‘양극화 해소’ 분야엔 ▶타지역 기업 인턴 프로그램 참여 청년에 체류지원비 지급 ▶청년 월세 한시 특별지원 사업 지원 기간 확대 등 현금성 지원 사업도 다수였다.

더불어민주당도 예산 증액을 촉구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6일 ‘5대 생활 예산’으로 ▶대중교통 ‘청년 3만원 패스’ 사업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 지원 ▶소상공인 가스·전기요금 지원 ▶청년 월세 한시 특별지원 등에 대한 증액을 요구했다. 매월 3만원만 내면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하게 해주자는 ‘청년 3만원 패스’에 대해 지난 3일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무분별하게 운영돼 지출 효율화에 좋지 않을 수 있다”고 반대했지만, 민주당은 사흘 뒤 발표 때 이 사업을 빼놓지 않았다. 민주당은 정부가 대폭 삭감한 새만금 신공항·항만·철도 등 주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예산도 전면 복구를 예고했다. 당장 15일 국회 국토교통위 예산소위에서 1400억여원을 복원시켰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3월 28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푸른솔문화관 학생식당 천원의 아침밥 현장을 찾아 학생 등과 식사 및 대화를 하기 위해 외부인 식권을 구매하고 있다. 뉴시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3월 28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푸른솔문화관 학생식당 천원의 아침밥 현장을 찾아 학생 등과 식사 및 대화를 하기 위해 외부인 식권을 구매하고 있다. 뉴시스

특히, 여야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표 사업’ 예산도 증액을 벼르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13일 증액 사업에 김기현 대표가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천원의 아침밥’ 확대 관련 예산도 포함시켰다. 천원의 아침밥은 2017년부터 시행된 정책으로, 학생이 1000원만 내면 정부와 대학이 각각 1000원과 2000원을 보조해 4000원짜리 아침 식사를 먹을 수 있게 하는 게 핵심이다. 김 대표는 3·8 전당대회 당선 직후 경희대 학생식당을 방문해 천원의 아침밥 전면 확대 방침을 밝혔었다.

민주당 역시 이재명 대표의 대표 정책인 ‘지역사랑상품권’ 사업 예산 복구에 나섰다. 정부는 당초 내년도 예산에서 0원으로 전액 삭감했는데, 지난 10일 민주당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7053억원으로 증액했다. 이는 올해 예산인 3525억원의 2배로 불어난 액수다.

당초 정부가 대폭 삭감해 논란이 빚어졌던 연구개발(R&D) 예산은 여야가 증액 경쟁을 하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15일 “내년도 R&D 예산을 조정·편성하는 과정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며 R&D 예산 증액 뜻을 밝혔다. 민주당은 1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예산안심사소위원회에서 정부가 삭감한 R&D 예산 중 8000억원을 증액해 단독 의결했다. 이날 이재명 대표는 대전 유성구 기초과학연구원(IBS)을 찾아 “민주당은 R&D 예산을 복원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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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여야가 예산 증액을 강조하면서도 구체적 방안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다는 점이다. 이개호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6일 예산 증액 방향을 강조하면서도 “증액이 얼마나 될 건지 말하지 않은 것은 협상 전략”이라고 했다. 국민의힘도 증액 사업을 세세하게 밝히면서도 거기에 돈이 얼마나 투입되는지는 전혀 표시하지 않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총선을 앞두고 편성한 예산이 국민을 위해 쓰이는 것이라면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경제적인 타당성과 그 효과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검증이 이뤄졌는가가 중요한데 대부분의 선심성 예산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노인예산 10% 증액…“투표율 높은 노년층 겨냥 예산 폭탄”

긴축 재정이 기조인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에서 유독 노인 관련 예산은 지난해보다 증액됐다. “선거 매표(買票) 예산을 배격했다”(지난 8월 윤석열 대통령)는 설명과 달리, 노인 표심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0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노인일자리 박람회에서 시민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지난 10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노인일자리 박람회에서 시민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국회로 넘어온 정부 예산안 중 보건복지부 소관의 노인 정책 예산은 전년(23조2289억원) 대비 10.3%(2조4041억원) 증가한 25조6330억원이다. 사회복지 예산 중 공적연금을 제외하고 가장 큰 규모의 증가율이자, 예산 총지출 증가율(2.8%)의 4배다.

구체적으로 소득 하위 70% 노인 가구에 지급하는 기초연금은 기존 월 최대 32만3000원에서 내년 33만4000원까지 오른다. 이를 위해 1조 6710억원이 더 지출된다. 또 노인 일자리 사업에 4862억원을 더 투입해 기존보다 14만 7000개 일자리를 늘린다. 이같은 증가폭은 역대 최대로, 내년 노인 일자리 참여자는 100만명(88만3000명→103만명)을 넘을 전망이다. 노인 일자리 사업 확대는 문재인 정부 시절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총선용 돈 풀기, 퍼주기 복지”(심재철 원내대표)라고 줄곧 비판했었다.

441억원을 늘려 노인 맞춤 돌봄서비스도 확대한다. 신체 제약이 있는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돌봄 시간을 월 16시간에서 20시간으로 늘린다. 이를 위한 사회복지사 등 제공 인력도 기존 3만6524명에서 3만8959명으로 늘게 된다.

국민의힘은 한술 더 떠 예산을 더 늘리겠다고 나선 상태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내년도 예산안 심사 방안’을 발표하며 “가장 중점적으로 예산을 반영할 5대 분야” 중 하나로 ‘인구 구조 변화’를 꼽았다. 내년도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 것에 맞춰 예산을 조정ㆍ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노인 복지와 관련해 건강보험에서 지원하는 임플란트 개수를 2개에서 4개로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정년에 이른 근로자를 계속 고용할 때 사업주에게 지급하는 ‘고령자 계속 고용장려금’ 지급 대상도 62세에서 63세로 한 살 올린다. 윤 원내대표는 “약자 복지를 최우선 정책 과제로 삼고 도움이 절실한 분들을 위한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고 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지난 13일 국회에서 2024 예산안 심사방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지난 13일 국회에서 2024 예산안 심사방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60대 이상 유권자 비율은 27.3%였는데, 1000만 노인 시대인 내년 총선에선 이 비율은 높아질 것이 확실하다. 또 지난 총선 기준 투표율(전체 투표율 66.2%)도 60대(80.0%)와 70대(78.5%)는 20대(58.7%)와 30대(57.1%)를 압도했다.

김상봉(경제학) 한성대 교수는 “내년 노인 인구가 갑자기 확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노인 맞춤형 예산을 10%나 늘리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크다”며 “현금성 복지에 초점을 맞추는 건 보수 정부의 정체성과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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