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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87) 동오 공격을 막아선 조운, 술버릇 못 고쳐 먼저 죽은 장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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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제 도적 조비를 치는 것은 천하의 대의를 밝히는 것이니 민심이 모두 폐하께 향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사사로이 원한 갚기에만 바쁜 나머지 손권을 치시면 천하의 민심을 어떻게 수습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손권을 치는 일은 뒤로 미루어야만 합니다.

짐이 아우를 위해 원수를 갚지 못한다면 비록 만리 강산을 얻는다 한들 뭐가 그리 가치 있겠느냐?

유비가 군사를 일으켜 동오를 치려 하자 조운이 막아섰습니다. 그러나 유비는 조운의 간청을 듣지 않고 출동명령을 내렸습니다. 한편, 장비는 낭중에서 관우가 손권에게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술로 화를 풀었습니다. 거슬리는 것이면 장수건, 사병이건 닥치는 대로 매질을 하여 맞아 죽는 사람이 많이 생겼습니다. 유비는 장비를 거기장군으로 삼았습니다. 장비는 당장 동오로 쳐들어가지 않는 것이 억울하고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동오정벌을 반대한 조운. 출처=예슝(葉雄) 화백

동오정벌을 반대한 조운. 출처=예슝(葉雄) 화백

제갈량을 비롯한 모든 신료가 동오 정벌을 말렸습니다. 조금 마음이 돌아설 즈음, 장비가 찾아와 대성통곡을 하며 유비의 마음에 다시 불을 지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지난날의 맹세를 알겠습니까? 만약 폐하께서 가시지 않는다면 신이 목숨을 버려 둘째 형님의 원수를 갚겠습니다. 만약 원수를 갚지 못하게 된다면 신은 차라리 죽을지언정 폐하를 뵙지 않겠습니다.

짐은 경과 함께 가겠다. 경은 소속 병사들을 데리고 낭중에서 나오라. 짐은 정예병을 거느리고 가겠으니 강주(江州)에서 만나자. 함께 동오를 정벌하여 이 한을 풀어야겠다.

모종강은 장비가 동오를 치자고 한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장비가 위를 먼저 치지 않고 오를 먼저 치자고 청한 것은 그가 형제의 의리만 있고 군신의 의리를 몰라서가 아니다. 그가 오를 치자고 한뜻은 위는 분명한 한나라의 역적이지만, 오는 위의 당(黨)이므로 역시 한적(漢賊)이기 때문이다. 예부터 잔포한 것들을 쓸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그 당을 잘라버렸다. 가령 은(殷)이 걸(桀)을 칠 때 먼저 위(韋)를 치고, 고(顧)를 치고 곤오(昆吾)를 쳤다든지, 주(周)가 주(紂)를 칠 때 먼저 숭(崇)을 치고 밀(密)을 친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를 위해서도 오를 먼저 쳐야 할 뿐만 아니라 군신을 위해서도 오를 먼저 쳐야 했기 때문이다.’

유비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제 신료들의 간청도 소용없었습니다. 종사제주(從事祭酒) 진복이 재차 아뢰었지만 겨우 죽음만 모면했을 뿐입니다. 제갈량이 다시 표문을 올렸지만 땅바닥에 뒹구는 휴지가 되어버렸습니다. 황제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유비이건만, 오직 동오를 공격하여 관우의 원수를 갚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유비는 75만명의 병력을 출동시켜 동오로 향했습니다.

한편, 낭중으로 돌아온 장비는 사흘 안에 백기(白旗)와 백갑(白甲)을 만들라고 군중에 명을 내렸습니다. 하급 장교인 범강과 장달이 시일이 촉박하니 조금 늦춰달라고 했습니다. 장비가 호통쳤습니다.

장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장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나는 복수가 한시 급하다. 내일 당장 역적의 땅으로 쳐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네가 어찌 감히 나의 장령을 어기려 드느냐? 저 두 놈을 당장 끌어내다 50대씩 때려라! 그리고 내일까지 완비해 놓지 못하면 그 즉시 너희 두 놈을 죽여 본때를 보여주겠다.

장비는 평소에도 술에 취하면 병사들을 마구 대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유비는 항상 장비의 술버릇이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특별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하 장교들을 피가 토하도록 매를 때렸으니 장교들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오늘 형벌을 받았지만 내일까지 어떻게 조달할 수 있겠나? 그 사람 성미가 불같이 난폭하니 만약 내일까지 다 만들어 놓지 못하면 자네와 나는 모두 죽고 살아남지 못할 것일세.

그렇다면 그가 우리를 죽이기 전에 우리가 그를 죽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우리 두 사람이 만일 죽을 괘가 아니라면 그는 술에 취해 침상 위에 곤드레만드레 되어 있을 것이고, 우리가 죽을 괘라면 그는 취하지 않았을 것일세.

장비는 그날 밤도 술에 떡이 되어 자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품었던 단도를 꺼내어 장비의 배를 깊이 찔렀습니다. 장비는 외마디 소리를 크게 지르며 죽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죽음이었으니, 이때 그의 나이는 55세였습니다.

고약한 술버릇 때문에 부하에게 죽는 장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고약한 술버릇 때문에 부하에게 죽는 장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안희현에서 독우를 때렸다고 하더니 安喜曾聞鞭督郵
황건적 소탕하고 한나라 살리려 애썼네. 黃巾消盡佐炎劉
호뢰관의 명성은 이미 진동했고 虎牢關上聲先震
장판교에서는 강물도 역류했네. 長坂橋邊水逆流
엄안을 놓아 주어 서촉을 보듬고 義釋嚴顔安蜀境
지혜로 장합 속여 중원을 장악했네. 智欺張郃定中州
오나라 치기 전에 몸이 먼저 죽으니 伐吳未克身先死
가을 풀은 낭중 땅에 한으로만 남았네. 秋草長遺閬地愁

손권을 치기도 전에 장비까지 잃자 유비는 또다시 통곡했습니다. 한날한시에 죽겠노라는 맹세에도 불구하고 두 아우를 잃은 유비는 평정심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대의(大義)는 오나라를 치는 것뿐이었습니다. 진진이 청성산에 사는 도인 이의를 불러 그 도인의 말로 유비를 진정시키고자 했습니다. 어렵게 모셔온 이의는 천수(天數)라며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유비가 재삼 가르쳐달라고 청하자 종이와 붓을 달라고 하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처음에는 병마(兵馬)와 무기 등을 40여 장 그리더니 일일이 찢어버렸습니다. 그다음엔 거인 한 사람이 땅 위에 누워 있고 그 옆에서 한 사람이 땅을 파고 묻으려고 하는 그림을 그리고는 위에 커다랗게 ‘白’자를 쓰고는 머리를 조아리며 떠났습니다. 유비는 몹시 언짢아하며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미친 늙은이다.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즉시 태워버려라!

한편, 손권은 유비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다고 하자 매우 걱정되었습니다. 이때, 제갈근이 다시 나서서 청했습니다.

원하옵건대 제가 목숨을 걸고 촉주를 찾아가 만나 뵙고, 어떻게 하는 것이 이롭고 해로운지 달래어 양국이 화친하고 힘을 합쳐 조비를 토벌하여 죄를 묻도록 하겠습니다.

손권은 크게 기뻐하며 즉시 제갈근을 사자로 보내 유비와의 화친을 성사시키라고 했습니다. 과연 이번에는 제갈근이 성공할까요.

모종강은 장비의 죽음이 유비가 더욱 오를 공격하게 했다고 평했습니다. 그의 평을 살펴보겠습니다.

‘장비가 죽은 것을 보면 유비가 오를 치려는 계획을 더욱 확고히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장비가 죽은 것은 관우를 위해 죽은 것이고, 관우를 위해 죽었다면 그것은 손권이 죽인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 한 아우를 죽인 원수도 참을 수 없는데, 두 아우를 죽인 원수를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일신의 사사로운 은혜를 위해 조조를 놓아주었다고 관우를 질책하지 않았다면, 세 사람의 의리를 위해 손권을 토벌하려는 유비도 비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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