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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86) 조비는 황제에 오르고 유비는 동오 총공격을 명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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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비는 위왕에 오르자 곧바로 마각을 드러냈습니다. 조비의 돌격대장은 화흠이었습니다. 조비가 즉위한 다음으로 기린(麒麟)이 내려오고 봉황(鳳凰)이 날아들고, 황룡(黃龍)이 나타나고 가화(嘉禾)가 자라나고 감로(甘露)가 내리니 이는 곧 하늘의 상서로운 기운으로 위가 한을 대신해야 한다는 상징들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그리고 ‘위(魏)가 허도(許)에서 번창(昌)한다’는 것으로 선위를 압박했습니다. 헌제는 듣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상서라든지 도참 따위는 모두 허망(虛妄)한 것들이다. 어떻게 허망한 일들 때문에 짐이 서둘러 조상들이 물려 준 기업을 버릴 수 있겠느냐?

자고이래로 흥성했다가는 반드시 쇠망했나이다. 어찌 패망하지 않는 나라와 가정이 있겠습니까? 한 왕실은 4백여 년이나 전해져 폐하에게 이르렀습니다. 기수가 이미 다했으니 주저하지 마시고 일찌감치 물러나소서. 늦으시면 변이 생기옵니다.

헌제는 통곡하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힘이 없음을 한탄하며 위왕에게 선양하기로 했습니다.

한나라의 기수가 이미 쇠퇴하여 천하의 질서가 어지럽고 흉포한 무리가 멋대로 역모를 저지르는 이때, 조조가 나라를 어려움으로부터 구하여 안정시켰으매 오늘의 천하는 필시 그의 덕이니라. 이제 조비는 이를 받들어 더욱 명심하고 대업을 넓혀 밝게 비추라. 이는 요순시대의 선위와 같은 것이요 천하는 덕 있는 자가 다스리는 것이니 조비는 엄숙한 마음으로 천명을 받들지어다.

헌제에게서 선위를 받는 조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헌제에게서 선위를 받는 조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서기 220년 10월 28일 새벽. 조비는 허도의 번양(繁陽)에 쌓은 수선대에서 헌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황제에 올랐습니다. 선양책(禪讓冊)을 읽고 옥새를 바치는 헌제의 두 눈엔 뜨거운 눈물이 맴돌았습니다. 하지만 그뿐, 만세소리 드높게 위나라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모든 절차는 평화적이고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선위가 끝나자 헌제는 산양공(山陽公)에 봉해졌습니다. 그러자 화흠이 칼을 잡고 헌제를 가리키며 목청을 돋웠습니다.

한 황제가 서면 한 황제는 폐하는 것이 예부터 정해진 법도이다. 금상(今上)께서 인자하셔서 차마 해치지 못하고 너를 산양공으로 봉하셨으니, 오늘 당장 떠나도록 하라! 황제가 부르시지 않는 한 다시는 조정으로 들어오지 말아야 한다.

헌제의 두 볼에는 회한의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한나라 사백년 사직, 32년의 천하가 눈물에 잠겨 떠내려갔습니다. 주악소리는 망국의 황제가 된 헌제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넋조차 사라지게 했습니다.

한나라 사직 자못 순탄치 않았는데 兩漢經營事頗難
하루아침에 옛 강산을 모두 잃어버렸네. 一朝失却舊江山
조비가 요순의 선양을 본뜨려 한다지만 黃初欲學唐虞事
사마씨가 그대로 본뜨는 것 보리라. 司馬將來作樣看

황제에 오른 조비는 자신이 연강(延康)이라 했던 연호를 황초(黃初)로 고치고 나라 이름을 대위(大魏)라고 했습니다. 문무백관의 벼슬을 올려주고 천하에 대사면을 내려 민심을 다스렸습니다. 나라의 영원한 번영을 위해 지명의 이름도 바꿨습니다. 번양을 번창(繁昌)으로, 허도를 허창(許昌)으로 고쳤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도에 보고되었습니다. 한술 더 떠서 헌제가 살해되었다고 했습니다. 한중왕 유비는 효민황제(孝愍皇帝)라는 시호를 올리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제갈량을 비롯한 참모들은 한중왕을 황제에 추대했습니다.

경들은 나를 불충불의(不忠不義)하게 만들 셈이오?

아닙니다. 조비가 한나라를 찬탈하여 스스로 그 자리에 들어섰습니다. 주상께서는 바로 한 황실의 후예이시니 대통을 계승하여 한나라 사직을 이어 가심이 이치에 합당합니다.

내가 어찌 역적들이 한 짓을 따라 하겠소?

지금 한나라 천자는 이미 조비에게 시해당하셨습니다. 주상께서 제위에 오르시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역적들을 토벌하지 않으신다면 충의가 될 수 없습니다. 지금 천하에는 주상을 황제로 삼아 효민황제의 한을 풀어드리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만약 신들의 건의를 따르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백성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일입니다.

황제가 된 조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황제가 된 조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제갈량은 유비가 고집을 꺾지 않자 병을 핑계로 조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한중왕은 제갈량이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직접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군사! 무슨 병으로 앓고 계시오?

근심 걱정으로 애가 타서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군사가 걱정하는 것이 대체 무엇이오?

제갈량은 삼고초려 후 유비를 따라 한중왕에 이르기까지의 일을 말하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유비는 제갈량의 말이 끝나자 말했습니다.

내가 핑계를 대며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천하 사람들의 비평이 두려울 뿐이오.

성인께서 말씀하시길,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도 조리가 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명분도 바르고 말도 조리가 서는데 무슨 비판할 것이 있겠습니까? 어찌 ‘하늘이 주시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벌을 받게 된다.’는 말도 못 들으셨습니까?

군사의 병이 나은 뒤에 거행해도 늦지 않을 것이오.

제갈량은 그 즉시 병상에서 일어났습니다. 병풍을 손으로 치자 밖에 기다리고 있던 문무 관료가 모두 들어와 절하고 즉시 날을 잡아 황제에 오를 것을 주청했습니다. 서기 220년 4월, 한중왕 유비는 황제에 올랐습니다. 왕비 오씨는 황후가 되었고, 맏아들 유선은 황태자가 되었습니다. 둘째 유영은 노왕(魯王)에, 셋째 유리는 양왕(梁王)으로 삼았습니다. 제갈량은 승상이 되었고, 허정은 사도에 올랐습니다. 대소 관료를 모두 승진시키고 천하에 사면령을 내렸습니다. 군사와 백성들이 모두 기뻐했습니다. 다음날, 황제에 오른 유비는 천자가 되어 첫 번째 명령을 내렸습니다.

짐은 도원에서 관우·장비와 의형제를 맺으면서 생사를 같이 하기로 맹세했는데, 불행하게도 둘째 아우 운장이 동오의 손권에게 살해되고 말았다. 만약 원수를 갚지 않는다면 이것은 맹세를 저버리는 것이다. 짐은 전국의 군사를 남김없이 일으켜 동오를 쳐부수고 역적을 사로잡아 이 한을 풀려고 한다!

그것은 아니 되옵니다!

황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반열에 있던 조운이 계단 밑에 엎드려 간청했습니다. 조운은 무슨 말로 황제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을까요. 모종강은 황제에 오른 유비와 조비를 비교해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유비는 성도에서 황제 노릇을 했고, 조비는 낙양에서 황제 노릇을 했으니 똑같은 황제다. 그런데 사가(史家)의 붓은 유비를 취하고 조비는 취하지 않았다. 정통을 계승한 것과 참칭한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유비가 서천을 뺏은 것에 대해 논하자면 유씨가 유씨의 것을 뺏었으니 어떤 사람은 역리로 빼앗아 순리로 지켰다고 여기고 있고, 유비가 제위에 오른 것에 대해 논하자면 유씨가 유씨를 계승했으니 곧 순리를 취해 순리로 지킨 것이라고 한다. 의논할만한 것은 유비가 고조와 광무제의 업을 계승하여 그 대통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니 진실로 조상을 높였다고 할 만하지만, 유모(劉瑁)의 아내를 맞아들여 황후로 세웠으니 조상을 모독했다는 꾸지람 또한 면치 못할 것 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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