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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85) 위왕에 오른 조비, 조식은 칠보시(七步詩)로 목숨을 구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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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숨을 거두자 시신은 곧바로 업성으로 옮겨졌습니다. 조비는 상고 소식을 듣자 방성통곡을 했습니다. 영구를 맞아들여 편전에 안치하고 곡을 할 때, 사마부가 울음을 그치고 큰일부터 처리하라고 했습니다. 바로 빨리 왕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대왕께서 밖에서 흉서하셨으니 사랑하는 아들들이 사사로이 왕이 되어 피차가 변을 일으키면 사직이 위태로워집니다.

난세의 간웅 조조. 출처=예슝(葉雄) 화백

난세의 간웅 조조. 출처=예슝(葉雄) 화백

눈치 빠른 화흠이 헌제로부터 조비를 위왕에 봉한다는 조서를 받아왔습니다. 조비는 그날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때, 동생인 언릉후 조창이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장안에서 왔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조비는 조창이 왕위를 다투려는 것으로 알고 긴장했습니다. 간의대부(諫議大夫) 가규가 조창을 설득하기로 했습니다.

선왕의 옥새는 어디 있는가?

가정에는 장자가 있고, 나라에는 세자와 여러 왕자가 계십니다. 선왕의 옥새는 군후께서 물으실 일이 아닙니다.

……

군후께서는 상고 때문에 오셨습니까? 아니면 왕위를 다투러 오셨습니까?

나는 선왕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경황없이 달려오는 길일세. 달리 품은 마음은 없네.

다른 마음이 없으시면 어째서 군사를 데리고 성안으로 들어오시나이까?

조창은 가규의 말에 장수와 병사들을 꾸짖어 물리치고 조비를 군왕으로 예우했습니다. 조비에게 부하 군마를 넘겨주고 언릉으로 돌아갔습니다. 조비는 대소 관료들을 모두 승진시키고 선왕인 조조의 시호를 무왕(武王)이라 지어서 업성의 고릉에 장사 지냈습니다. 우금에게는 능을 관리 감독하게 했습니다. 우금은 명을 받들어 능으로 갔습니다. 도착해서 보니 능의 재실 백분벽(白粉壁)에 관우가 7군을 물로 휩쓸며 우금을 사로잡는 장면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이 사뭇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관우는 의젓하게 상좌에 앉아 있고, 방덕은 성을 내며 무릎을 꿇지 않았으나 우금 자신은 땅에 엎드려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우금은 그림을 보자 부끄럽고 원망스럽고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곧 병이 생겨 오래지 않아 죽었습니다. 우금의 행동을 비루하게 여겼던 조비가 그림을 그리게 해놓고 일부로 우금을 보냈던 것입니다. 후세 사람들이 시를 지어 한탄했습니다.

30년을 사귀어온 오랜 교분으로 말하자면 三十年來說舊交
어려움 당해 조조에 불충한 게 안타깝지만 可憐臨難不忠曹
사람을 안다고 속내까지 아는 건 아니니 知人未向心中識
이제부터 범을 그릴 땐 뼈까지 그리시오 畵虎從今骨裏描

언릉후 조창은 이미 군사와 말들을 넘겨주고 갔건만, 임치후 조식과 소회후 조웅은 상고 소식을 듣고도 달려오지 않았습니다. 화흠이 마땅히 죄를 물어야 한다고 청하자 조비는 그 말을 따랐습니다. 조비는 즉시 사자를 보냈습니다. 소식을 접한 조웅은 죄를 무서워하여 자결했습니다. 하지만 조식은 정의·정이 형제와 술에 취하여 법도를 지키지 않고 무례했습니다. 조비의 명령을 받은 허저가 3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술에 취해 있는 이들을 잡아 왔습니다. 정의·정이 형제부터 목을 베어 죽였습니다. 그러자 어머니인 변씨가 깜짝 놀라 조비에게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울면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네 아우 식은 평소 술을 너무 좋아해 행동이 거칠고 난잡하다. 모두 제 재주를 믿고 멋대로 구는 것이니, 너는 한 뱃속에서 태어난 정을 생각해서라도 그 애를 살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구천에 가더라도 눈을 감을 것이다.

저 역시 그 동생의 재주를 깊이 사랑합니다. 어찌 그 동생을 해치겠습니까? 지금은 바로 그 동생의 버릇을 고쳐 주려는 것뿐입니다. 어머님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화흠이 이 말을 듣고는 살려두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조비는 어머님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다며, 진정 동생의 재주를 확인한 후에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잠시 후, 조식이 들어와 엎드려 죄를 청했습니다. 조비는 일곱 걸음을 떼기 전에 시 한 수를 지으면 목숨은 살려주겠지만 만일 그렇지 못하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시제(詩題)가 내려지고 조식은 일곱 걸음을 옮기며 시를 지어 읊었습니다. 뭇 신하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그러자 조비가 다시 말했습니다.

조비 앞에서 시를 읊는 조식.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비 앞에서 시를 읊는 조식. 출처=예슝(葉雄) 화백

너는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 한 수를 지어라.

시제를 주십시오.

나와 너는 형제다. 이것을 제목으로 삼아라. 역시 형(兄)자나 제(弟)자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

콩을 볶는다고 콩깍지를 태우니 煮豆燃豆萁
콩이 가마 속에서 흐느끼네. 豆在釜中泣
본래가 한 뿌리에서 나왔거늘 本是同根生
어찌 이리도 호되게 들볶는가. 相煎何太急

조비는 비분과 애원이 넘치는 조식의 시를 접하고는 안향후(安鄕侯)로 관직을 강등하여 풀어주었습니다.

성도에서도 조비가 왕위를 계승한 것을 알았습니다. 문무 관리들과 상의하고 있을 때의 요화가 땅에 엎드려 울면서 간청했습니다.

관공부자가 해를 입은 것은 실로 유봉과 맹달의 죄이오니, 바라옵건대 이 두 놈부터 목을 베소서.

안됩니다. 당분간 그대로 두고 천천히 도모하소서. 서두르면 변이 생깁니다. 이 두 사람을 태수로 승진시켜 나누어 보내소서. 그런 다음에나 잡을 수 있습니다.

유비는 제갈량의 말을 따랐습니다. 유봉을 승진시켜 면죽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맹달은 그를 돕는 사람들을 통해 이 사실을 알고 위왕 조비에게 투항했습니다. 유비가 이를 알고 노발대발했습니다. 제갈량은 유봉이 맹달과 싸우게 하여 제거하기로 했습니다. 유봉이 맹달과 싸우려 하자 하후상과 서황이 맹달과 합세하여 공격하는 바람에 당해내지 못하고 서천으로 도망쳐 왔습니다. 유비가 대로하여 꾸짖었습니다.

유봉을 꾸짖으며 죄를 묻는 유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유봉을 꾸짖으며 죄를 묻는 유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치욕스런 자식아! 무슨 면목으로 돌아와 다시 나를 대하느냐?

어려움에 빠진 숙부를 제가 구원하려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맹달이 못 가게 말렸기 때문에 못 갔습니다.

이런 놈을 봤나! 너는 사람이 먹는 밥을 먹고 사람이 입는 옷을 입고 있으니 나무로 만든 장승이 아니다. 어찌 역적 놈이 말린다고 그 말을 들을 수 있느냐? 당장 끌어내 목 베어 죽여라!

모종강은 여기까지 읽은 후에 유비와 조비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유비와 조비를 보면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다. 유비는 정이 깊어 성이 다른 형인데도 아우의 죽음을 가슴 깊이 슬퍼했고, 조비는 박정하여 한 배에서 나온 형인데도 서둘러 아우를 죽이려고 했다. 한 사람은 의동생(義弟)의 죽음을 슬퍼하며 양자(養子)의 은혜마저 돌아보지 않았고, 한 사람은 친동생을 죽이려고 어머니의 사랑도 돌아보지 않았다. 천륜(天倫)에 대한 감회가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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