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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88) 손권을 철천지원수로 삼은 유비, 손권은 제갈근을 천하의 신교(神交)로 믿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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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는 대군을 일으켜 장강을 따라 내려와 백제성에 군사를 주둔시켰습니다. 이때 손권이 보낸 제갈근이 사신으로 왔습니다. 유비는 만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황권이 사신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 좋다고 하자 그제야 제갈근을 만났습니다. 유비를 만난 제갈근은 관우가 혼사를 허락하지 않은 일, 여몽과의 사이가 나빴던 일을 말하고 형주와 함께 손부인과 항복한 장수들도 돌려 드릴 테니 다시 손을 잡고 조비를 물리치자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유비가 노해서 소리쳤습니다.

내 아우를 죽인 원수와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가 없다. 짐에게 전쟁을 그만두라는 말이냐? 죽어 없어지면 그만두겠다. 승상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면 네 머리부터 먼저 베겠다만 이제 너를 그대로 돌려보낸다. 손권에게 가서 목이나 씻고 칼 받을 준비나 하라고 해라!

제갈근은 유비가 전쟁을 멈출 생각이 없음을 알고 강남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때, 손권의 참모인 장소는 제갈근이 오를 배반하고 촉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손권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나와 제갈근은 죽어도 변치 말자는 맹세를 했소. 내가 그를 배반하지 않는 한, 그도 나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오. 옛날 그가 시상에 있을 때 제갈량이 오로 왔었는데 내가 근을 시켜 량을 잡아두려 하였소. 그러자 그가 말하길, ‘아우는 유비를 섬기고 있으니 두 마음을 품지 않을 것입니다. 아우를 잡을 수 없는 것은 제가 가지 않을 것과 같습니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은 신명(神明)이 통하기에 충분했소. 오늘 어찌 촉에 항복하겠소? 나와 제갈근은 신교(神交)라 할 만하오. 다른 사람이 이간시킬 수 있는 사이가 아니오.

손권이 말을 마치자마자 제갈근이 도착했습니다. 장소는 수치심에 얼굴이 빨개진 채 물러갔습니다. 제갈근은 유비가 화친할 의향이 없다고 알렸습니다. 손권도 대비했습니다. 먼저 중대부(中大夫) 조자를 사신으로 삼아 신(臣)이라 칭하는 표를 써서 위나라로 보냈습니다. 조비는 손권을 오왕(吳王)에 봉하고 구석(九錫)을 덧붙여 주었습니다.

위나라 조비에게서 오왕의 작위를 받는 손권. 출처=예슝(葉雄) 화백

위나라 조비에게서 오왕의 작위를 받는 손권. 출처=예슝(葉雄) 화백

모종강은 조비가 손권에게 구석을 준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위왕도 구석을 받고 오왕 역시 구석을 받았다. 위왕이 구석을 받자 사람들은 조조가 황제가 되려 한다고 비방하고, 오왕이 구석을 받자 사람들은 손권이 황제가 되려 하지 않는다고 비웃는다. 어째서인가? 차라리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의 항문이 되지 않기 위해 한후(韓侯)는 스스로 분기했다. 강동의 땅이 어찌 한(韓)나라보다 작겠는가? 더욱이 위에 항복하는 것이 오에 유익하다면 또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오에 유익한 것도 없이 공연히 무릎을 꿇는 치욕이나 당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탄스러운 일인가?

조조의 구석은 조조 자신이 덧붙인 것이고, 손권의 구석은 손권 자신이 덧붙인 것이 아니라 위가 덧붙여 준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덧붙인 것과 남이 덧붙여 준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리고 조조의 구석은 천자가 감히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고, 손권의 구석은 위가 주려는 것을 손권이 감히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감히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과 주는 것을 감히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에는 또한 큰 차이가 있다. 더욱이 한(漢)의 구석을 받았다면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위의 구석을 받았다면 치욕스러운 일이다. 한나라를 찬탈하기 위해 한나라의 구석을 받았다면 강자라 하겠지만, 위에 항복하며 위의 구석을 받았다면 약자라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손권을 위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대부 유엽이 조비에게 이참에 오를 협공하면 열흘 안에 무너뜨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조비가 그 이유를 말했습니다.

손권이 이미 예를 다해 짐에게 항복했다. 짐이 만약 공격한다면 천하의 항복하려는 마음을 막는 것이 되니 받아들이는 것이 낫고 옳은 것이다.

조비의 생각은 어느 쪽도 돕지 않고 두 나라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나라가 망하고 한 나라가 남으면 그때 가서 그 나라를 제압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편안하게 앉아서 촉오의 전쟁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촉오전쟁을 막으려 한 제갈근. 출처=예슝(葉雄) 화백

마지막까지 촉오전쟁을 막으려 한 제갈근. 출처=예슝(葉雄) 화백

손권은 손환과 주연, 이이와 사정으로 하여금 촉군과 싸우도록 했습니다. 촉군의 선봉은 오반이었고 좌우는 관흥과 장포가 맡았습니다. 전투는 처음부터 치열했습니다. 그러나 원수를 갚으려는 관흥과 장포의 한 서린 칼과 활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손환은 크게 패하여 수하의 장수와 많은 병사를 잃고 이릉성으로 달아났습니다, 손권은 한당과 주태를 구원병으로 보냈습니다.

유비는 초반 전투에서 승리하고 장강의 무협에서 이릉까지 이르는 70여 리에 40개의 영채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관흥과 장포가 세운 공을 높이 치켜세웠습니다.

옛날부터 짐을 따르던 여러 장수는 모두 늙고 쇠약해서 쓸모가 없게 되었는데, 다시 두 조카가 이렇게 영웅다우니 짐이 손권을 무엇하러 걱정하겠느냐?

이때, 한당과 주태가 쳐들어왔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노장 황충이 대여섯 사람을 이끌고 나갔습니다. 황충이 유비의 말을 듣고 자신이 늙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싸우러 나간 것이었습니다. 유비는 관흥과 장포를 불러 황충을 도와주도록 했습니다. 노장 황충은 과연 혼자서 적들을 물리칠 수 있을까요.

유비 앞에서 형제를 맹세하는 장포와 관흥. 출처=예슝(葉雄) 화백

유비 앞에서 형제를 맹세하는 장포와 관흥. 출처=예슝(葉雄) 화백

모종강은 손권이 제갈근을 신교(神交)로 사귀는 장면에 있어서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손책은 태사자를 의심하지 않았고, 손권은 제갈근을 의심하지 않았으니 두 경우는 같은 것인가? 아니다. 손책은 당시 군세(軍勢)가 한창 강력하던 때였으니 태사자를 믿기가 쉬웠지만, 손권은 당시 나라의 형편이 걱정되던 때였으니 제갈근을 믿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덕은 형이 촉에 있었는데도 위를 배반하지 않았고, 제갈근은 아우가 촉에 있었는데도 오를 배반하지 않았으니 두 경우는 같은 것인가? 아니다. 방덕은 끝내 마초를 섬기지 않았으니 방덕의 의리는 의리라고 할 수 없고, 제갈근은 한결같이 손권을 섬겼으니 제갈근의 충성은 참된 충성이라고 할 만하다. 또한 제갈근은 옛날 ‘자신이 가지 않을 마음으로 아우가 머물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듯이 손권은 오늘날 제갈근이 아우가 머물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듯이 제갈근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군신 간의 믿음이 자못 형제간의 믿음에서 결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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