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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표' 김장

중앙일보

입력


날씨가 춥지는 않았지만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지던 지난 21일.
분당 정자동 주택전시관 옆 여의도순복음교회 제3성전(담임목사 김태복)은 주일처럼 신도들로 북적였다. 불우 이웃들에 나눠줄 배추 3500여 포기 분량의 김장을 하느라 주부 200여 명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날 김장재료로 쓰인 배추 2500 포기와 무 1000 개는 성남시 분당구청 공무원들이 직접 재배한 것이다.
김 담임목사는 "이달 초 구청에서 직접 가꾼 배추로 교회에서 김치를 담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줬으면 좋겠다고 제의했을 때, 우리 교회가 이같이 좋은 일에 동참할 수 있어 정말 고맙다는 생각으로 기쁘게 받아들였다"며 '사랑의 김장 담그기' 행사 배경을 설명했다.

이 교회는 해마다 신도들 중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 김장을 나눠주기 위해 몇 백 포기 씩은 담갔다. 하지만 이번처럼 수천 포기 김장을 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이날 최남철(55)씨는 길이 150cm,깊이 60cm 쯤 되는 큰 플라스틱 용기에 김장 양념을 버무리느라 진땀을 뺐다. 특별 제작한 긴 주걱으로 고춧가루와 젓갈.소금을 잘 섞이도록 휘저었다. 최 씨는 "주부들이 하기엔 너무 힘이 들어 도와주고 있다"며 "서너 시간 이 일을 했더니 온몸이 뻐근하지만 마음은 상쾌하다"고 말했다. 양념 만들기를 함께 하던 노귀옥(51·여) 씨가 "어제부터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무로 채를 써느라 수고한 사람들도 많다"며 일을 채근했다.
전날엔 주부 신도 150여명이 다음날 김장 준비를 위해 온 힘을 쏟았다. 우정희(57) 여선교회장은 "교회의 15개 구역별로 10명 씩 뽑아 김장을 도와달라고 알렸는데 이날 행사에 온 주부가 200명이 넘었다"며 "오늘 비가 조금 오다 그친 것은 좋은 일 하는 것을 알고 하늘이 도와 주신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 행사를 주관한 이종철(54)총무장로는 "구청 직원들이 틈틈이 시간을 내 직접 재배한 '귀한 배추'를 정성스레 김장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했다.

배추는 구청 산업경제팀이 중심이 돼 재배했다. 김영하 담당은 "관내의 농지를 활용해 채소를 자체 경작해 이웃돕기에 사용함으로써 공무원이 '남을 돕는 사회' 풍토 만들기에 앞장서고자 기획했다"며 그 취지를 밝혔다. 석운동의 휴경 농토 약 300평을 무상으로 빌려 올 8월 중순부터 직접 김을 매고 배추·무 씨를 뿌려 20일 모두 수확했다. 지난 가을 가뭄 때는 물을 대느라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교회도 구청이 전달해 줄 배추로 김치를 담그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였다. 고춧가루(600근,540만원)·젓갈(60통,108만원)·쪽파(150단,30만원)·마늘(25관,30만원)·소금(25포대,32만원) 등 각종 양념을 준비하고, 포장박스(234만원).봉사자 식사비 등을 위해 총 1500만원의 긴급 예산을 세웠다. 배추가 부족할 것 같아 1000여 포기를 더 구입하고,김장재료를 김장 장소(5층)로 쉽게 옮기기 위해 크레인을 부르기도 했다.
김장 담그기 행사는 신도들이 김칫소 버무리기,김칫소 넣기,용기 담기 등 3개조(組)로 나뉘어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그 덕분에 오전 9시 시작한 '3500포기 사랑의 김장'은 오후 5시쯤 불우이웃 전달을 위해 구청측에 인계될 수 있었다.
김칫소 버무리기조에 참가한 유복연(53)씨는 "주부들이 자기 집 김장하듯이 정성을 쏟았다"며 "신도들까지 함께 웃으며 즐겁게 일할 수 있어 더욱 뜻깊은 행사가 됐다"고 했다. 용기 담기조 한정숙(43)씨는 "고무장갑은 교회서 제공했지만 앞치마는 직접 가져오는 바람에 각양 각색의 앞치마가 선을 보였다"며 "즉석 패션쇼를 벌이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고 전했다.

김칫소 넣기에 참여한 신현갑 분당구청장은 "주민들과 함께 다른 주민들을 위한 김장을 담가 더 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나중에 보니까 와이셔츠에 양념이 잔뜩 묻어있더라"며 활짝 웃었다. 박명옥 사회복지팀 담당은 "김장 김치는 야탑3동 및 정자2동 등에 사는 독거노인.소년가장 등 550 가구에 전달돼 본격 추위를 앞두고 따뜻한 사랑의 선물이 됐다"고 말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제3성전은 서현동에서 1992년 창립됐고, 4년여 후 현재의 신축 성전으로 옮겼다. 성남·용인 일대 신도가 6000명을 헤아린다. 이 교회의 올해 4대 목표 중 하나는 '이웃을 내몸 같이 사랑하자'다.

프리미엄 조한필 기자 chop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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