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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전화를 타고…

중앙일보

입력


"할머니! 저예요. 아침 맛있게 드셨어요?"
"아이구 우리 딸이구나. 그래 맛있게 먹었어. 몸은 건강하구…. 집안 어른들도 모두 안녕하시지?"
"참 할머님도…제가 할머니 안부가 궁금해 전화했는데…제 걱정까지 하시고. 제대로 약은 드시고 계시죠?"
전화로 사랑을 전하는'행복콜(Call)' 전도사들이 있다.
서울 양천구의 40~60대 여성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해피콜봉사단'이 주인공이다.

2003년 1월 양천구의 자원봉사센터에서 각종 궂은 일을 도맡아 하던 여성들은 서로 뜻을 모으기 시작했다.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반찬을 배달하고, 때론 각종 민원서류 심부름까지 마다하지 않던 그들은 "그 분들이 오래 살 수 있도록 도와드리기 위해서라도 매일 안부를 체크해야 한다"는 생각에 입을 모았다.
의기투합된 이들은 먼저 자원봉사센터에 3대의 전화기를 설치했다. 목표는 매일 독거노인 등의 건강상태와 안부를 묻고 건강상태까지 관리하는,말 그대로 '자녀'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손을 맞잡은 봉사자는 20여명에 달했다.
하지만 홀로 힘겹게 사는 노인을 어림 잡으니 700여명이나 돼 회원 한 사람이 30~40명을 감당해야 했다. 벅찬 상황이었다. 그러나 시작하기로 했다.

봉사센터와 집을 가리지 않고 매일 아침만 되면 회원들의 휴대 전화기, 집 전화, 사무실 전화 등 장소와 여건만 되면 가리지 않고 통화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할머니 제가 오늘부터 매일 연락 드릴게요. 필요한 일 있으시면 저에게 말씀 주세요."
내친 김에 회원들은 서울시에서 주관한 상담가 전문과정 연수도 마쳤다. 귀가 멀어 수화기 음성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노인들은 지역의 업체 등의 후원을 받아 보청기 선물도 했다.
마침내 노인들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아니 노인들은 더 적극적으로 변해갔다. "오늘 아침엔 왜 전화가 없어. 어디 아픈 거 아냐?" 딸같은 회원들의 음성을 기다리다 못해 먼저 전화를 걸어오는가 하면 "한 일주일 강원도 친척집에 다녀올게. 그동안 목소리 못 들어서 어쩌나"라며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한 할머니는 전화를 걸어온 회원의 친모가 병환 중이란 말을 듣고 "꼭 집에 들르라"더니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 접어둔 1만원을 건넸다. "음료수라도 사 먹이라"는 말에 회원은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2년 전 봄엔 이 모임의 부회장 한이재(57)씨에게 독일에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그가 매일 안부를 묻던 신 모(91)할머니의 딸이었다. "간호사 일로 독일에서 산 지 수십년이 됐다"는 딸은 "너무 감사한다. 어머님을 잘 부탁한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이미 부모가 돼 버린' 노인들을 위한 회원들의 사랑은 전화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매년 봄·가을이면 푼푼이 모은 자비를 털어 함께 나들이 길에 나서고 있다. '효 나들이'란 이름으로 그동안 서울랜드도 다녀왔고, 고궁 등 문화재 탐방도 했다.
오래도록 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2004년부터는 매년 이 맘때가 되면 조촐한 잔치도 열고 있다. '삼순잔치'란 이름을 내걸었다. 할머니들이 칠순,팔순,구순까지 오래도록 세월을 같이하길 바라는 마음에 붙인 이름이다.

회원 정경남(57·여·서울 양천구 신월3동)씨는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보며 전하는 말씀을 듣다보면 눈물이 쏟아질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며 "우리가 도움을 드리기보다 어머님들이 오히려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마음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해피콜봉사단 회장 조원선(60)씨는 "어렵게 혼자 생계를 이어가는 노인분들이 희망을 잃고 낙담하지 않도록 정말 딸같은 말벗이 되보고자 봉사를 시작했다"며 "주변에서도 조금이라도 노인들의 희망의 빛을 잃지 않도록 도움의 손길을 보태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후원문의: 양천자원봉사센터 02-2644-4750,51

프리미엄 양성철 기자 ygodo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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