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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드론 정밀 공습, 민간인 피해 줄인다?…"이스라엘 오만" 왜

중앙일보

입력

인공지능(AI) 무기체계가 전쟁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AI 강국인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전투에 AI 무기를 전면 투입하면서다. AI가 공습 표적을 식별하고 공격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등 사실상 기계가 인간을 대신해 전장을 지휘하는 단계를 넘보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올해 실전 배치한 인공지능(AI) 기반 무기쳬계 중 하나인 소형 자살 드론 '스파이크 파이어플라이'를 한 군인이 들고 있다. 사진 라파엘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올해 실전 배치한 인공지능(AI) 기반 무기쳬계 중 하나인 소형 자살 드론 '스파이크 파이어플라이'를 한 군인이 들고 있다. 사진 라파엘

이런 추세면 조만간 AI가 “적 수뇌부의 생각까지 예측할 수 있다”(포린어페어스)는 얘기도 나온다. 인구절벽에 따른 병력 자원 급감과 대북 군사대비 태세 첨단화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AI 무기체계 도입을 서두르는 한국군이 이번 전쟁에 주목하는 이유다.

"세계 첫 'AI 전쟁' 수행 군대"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이번 전쟁 이전부터 AI 무기체계 도입을 서둘러왔다. 2021년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11일간 분쟁 당시 적의 로켓 발사대를 식별해 ‘자살 드론’으로 공격하고, 하마스 고위 간부 2명을 폭살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 최초의 AI 전쟁 수행 능력을 갖춘 군대”라는 평가가 뒤따를 정도였다.

IDF는 올해 초엔 “치명적인 군사작전에 AI를 도입하겠다”며 AI 무력을 한층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IDF가 공습 대상을 선정하고 전시 병참을 조직하는데 AI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블룸버그통신)는 분석이 나왔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이튿날인 지난달 8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내 하마스 근거지인 가자시티에서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으로 화재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이튿날인 지난달 8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내 하마스 근거지인 가자시티에서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으로 화재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의 AI 활용은 특히 공습 작전에서 두드러진다. 먼저 AI 체계가 정찰위성 등 정보자산으로 수집한 영상·이미지·음성 등 다양하고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공습 대상을 선정한다.

다음 단계에선 ‘파이어 팩토리(fire factory)’로 명명한 또 다른 AI 체계가 임무를 부여한다. “군이 승인한 표적의 데이터를 사용해 탄약량을 계산하고, 항공기 및 무인기(드론)에 우선순위를 지정해 수천 개의 표적을 할당하고, 이에 맞는 공격 일정까지 제공하는 것”이 파이어 팩토리의 역할이다.

인간의 역할은 크게 줄었다. IDF 관계자는 블룸버그에 “예전엔 몇 시간이 걸리던 일을 이젠 몇 분이면 끝내고, (AI가 내린 결과를) 전담자가 검토하는 데 몇 분만 더 걸릴 뿐”이라며 “같은 인원으로 훨씬 더 많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 IDF 측은 “AI를 활용한 공습은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오폭에 따른 ‘부수적 피해(민간인 희생)’ 가능성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전쟁을 촉발한 하마스의 지도부와 핵심 군사시설만 골라서 정밀 제거하는 이른바 ‘외과적 공격(surgical strike)’을 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시가전용 '자살 드론'도 배치

공습 체계뿐만 아니다. 이스라엘군은 다양한 AI 무기를 일찌감치 최전방에 배치했다. 아제르바이잔이 수입해 2016년 아르메니아와 분쟁에서 사용했던 자살 드론 ‘하롭’이 대표적이다. 16㎏ 폭발성 탄두를 탑재한 하롭은 최대 1000㎞ 떨어진 목표물까지 공격이 가능해 방공포대 등 군사시설 파괴에 효과적이다.

이스라엘군이 올해 처음 실전 배치한 소형 자살 드론 ‘스파이크 파이어플라이’는 가자지구와 같은 밀집된 도심에서의 시가전에 특화해 개발됐다. 30g 폭발물을 탑재한 채 날아가 창문 등으로 은밀히 침투한 뒤 적을 제거할 수 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이스라엘군은 또 수송·정찰 임무에 적합한 4륜 자율 전투 로봇 ‘렉스 MKII’, 병력을 대신해 매복하거나 미끼 역할까지 수행하는 6륜 반자율 로봇 ‘로배틀’ 등도 도입했다. 전투용은 아니지만 2008년부터 가자지구 주변을 순찰하는 반자율 소형 차량 ‘가디엄’도 있다. 특이하게도 가디엄 운용은 전원 여성 대원이 맡는다. 카메라와 확성기만 갖춘 비전투 수단이란 것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지난 9월 AI 기술을 이용한 신형 전차 ‘바락’을 공개하기도 했다. 전차 안에서 360도 사방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첨단 AI 관측 기술 등이 적용됐다. 미국 군사전문 매체 디펜스뉴스에 따르면 “2025년까지 여단급 전차 부대 창설”이 목표다.

군사 AI가 인재풀 키워

이스라엘군이 이처럼 강력한 AI 군사력 건설에 성공한 것을 두고는 “전담 조직을 갖추고 인재를 확보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IDF 내부엔 군사용 AI와 소프트웨어를 연구개발하고 구현을 전담하는 ‘시그마(Sigma)’란 부서가 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또 군사정보국(MID) 산하 정보수집 전담 부대인 '8200부대'는 데이터과학 및 AI 센터를 운용하면서 실질적인 데이터 처리를 맡고 있다. 8200부대 출신 중엔 세계적인 AI 기반 스타트업 창업자도 여럿 있다. 사이버보안 업체를 세운 니르 주크(팰로앨토 네트웍스), 길 슈웨드 (체크 포인트 소프트웨어 테크놀로지스) 등이 대표적이다. 대부분 군에서 쌓은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에 성공했다. 이들이 민간에서 연구개발한 AI 체계를 이스라엘군이 활용하는 선순환도 일어나고 있다.

"AI 맹신하면 오히려 안보위협" 

하지만 이스라엘군의 AI 의존도 증가는 치명적인 한계도 안고 있다. 지난달 7일 하마스가 기습 공격할 당시 이스라엘군이 자랑하던 AI 기반 첨단 경계망은 사전 경고에 실패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 국경에 24시간 감시할 수 있는 얼굴 인식 체계와 통신 도청, 적외선 감시기 등을 투입해 '철통 경계'를 자부했었다. 하지만 불도저로 철조망을 부수고 패러글라이더로 장벽을 넘는 고전적인 수법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와 관련, 로이터통신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AI 기술은 자료의 출처만큼만 유용하며 가자지구처럼 혼잡한 도시 환경에선 (기습 공격 모의 등) 인간 활동을 해석하기 쉽지 않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당국이 AI 체계의 능력을 과신한 결과”라며 “예리한 분석과 조기 경보를 자신하는 AI 업체에 점점 더 의존하는 다른 국가의 정부에 대한 경고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일 가자지구 남부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부상당한 한 여성이 칸 유니스의 나세르 병원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3일 가자지구 남부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부상당한 한 여성이 칸 유니스의 나세르 병원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AI로 계산한 정밀 공습이 민간인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이스라엘 측 주장이 “오만”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당장 가자지구에서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피해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폴 샤레 신미국안보센터(CNAS) 연구 책임자는 LA타임스와 인터뷰에서 “AI 체계는 학습 데이터와 다른 상황에 놓일 때 불안정하고 취약하다”며 “가장 큰 위험은 민간인 사상자를 발생시키거나 아군을 표적으로 오인해 공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IDF 측은 이같은 위험성에 대해선 공식적인 답변을 거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AI 무기체계 도입을 서두르는 한국군도 이런 이스라엘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박용한 한국국방연구원(KIDA) 선임연구원은 “수 분 내에 수도권을 공격할 수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선 실시간 AI 감시 체계는 반드시 갖춰야 할 자산”이라며 “다만 윤리적, 법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휘관의 결심을 보조하는 참모 역할 수준으로 활용도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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