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부담 많은 「잠자는 시장」(경협 손잡은 한소: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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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밀린돈 2천5백만불 속타는 기업/구상무역 어렵고 합작사업도 저조
소련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평가는 정치인이나 정부 관료들보다 기업인들이 훨씬 인색하다.
한마디로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먹을게 없는게 이윤을 생명으로 삼고 있는 기업들이 보는 오늘의 소련 시장이다.
때문에 말은 무성하지만 대소 교역이나 투자의 경우 실제상황은 말만큼 이뤄지지 못하고 있으며 경제인들이 앞장서는 듯 하면서도 실제로는 정치인들보다 뒤에 서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실질적인 한소 경협을 위해선 소련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도 있겠지만 우리 정부도 발벗고 나서야할 부분이 적지 않다.
양국간 교역은 LC(신용장) 거래보다는 대부분 물건을 보낸 뒤 2∼3개월 후에 값을 받는 CAD(선적서류제시 후 대금지불)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수금이 발생하고 그렇게 밀린 돈이 현재 2천5백만달러에 이른다.
기업의 입장에선 미수금의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구상무역 형태를 취하려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못하다.
우리가 물건을 보내고 소련으로부터 가져올 수 있는 물품은 선철 ·목재·원유·광물 등 원자재인데 정부의 도움없이는 처리가 원활치 못하다.
예컨대 선철은 포철이 사줘야 하고 석탄 등은 한전이 사줘야 하는데 각자의 구매선이 따로 있고 구매계획이 짜여 있어 구상무역을 한다해도 그 다음이 문제다.
삼성물산과 포철은 계약을 맺어 삼성이 들여오는 선철을 포철이 구매해주고 있지만 럭키금성상사 등 국내 굴지의 종합상사들도 국내 구입선을 마련치 못해 마지 못해 CAD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아 결국은 미수금이 많이 쌓이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많은 기업들은 정부가 대소 구상무역을 통해 들여오는 물품의 재처리를 조정·알선해 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합작사업 등 프로젝트사업도 수월치 않다.
투자보장에 대한 위험부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소련당국이 대소투자에 대한 원금 및 이익의 송금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무런 후속조치도 없었다.
여기에 소련측은 대부분의 합작사업에 있어 땅과 노동력만을 제공하고 우리측에 돈과 기술 및 경영을 요구하고 있는데 자원개발에 있어서는 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시설이 미비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가 많다는 기업측의 얘기다.
상황이 좀 나은 경우라 하더라도 초기 투자자본이 많이들고 종업원들을 훈련시키는 등 시간까지 많이 잡아 먹는다고 한다.
소련 이외의 국가보다 1.2∼1.5배의 투자비용이 드는 데다 생산성미저 낮은 나라에 투자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공장건설문제 등에 있어서도 우리의 현실이 상당부분 일본 설비를 들여다 쓰고 있어 어설프게 소련에 공장을 지어준다고 했다가는 우리는 돈도 제때에 못받고 일본만 좋은일 시켜줄 가능성까지 있다는 것도 기업의 대소 투자마인드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기술이전 문제도 마찬가지여서 올해초 소련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등이 7백86건의 대한 기술이전 목록을 제시했지만 현재까지 62개 기술에 대한 세부자료만 입수했을 뿐 우리가 재 요청한 2백여 개 기술의 세부자료는 아직 받아보지도 못하고 있다.
기술 이전에 따른 소련측의 요구액도 터무니 없이 높다. 예컨대 부틸 고무제조기술 이전과 관련,소련측이 1천만달러의 기술료 지급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 등 다른 나라들이 사후관리까지 해주는데 반해 소련측은 그러지도 못하면서 너무 비싼 값을 요구하고 있다는 기업측의 주장이다.
따라서 정치적 이득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인 경제적 이득을 우리가 얻을 수 있도록 정부가 보다 치밀한 대소경협정책을 세워주기를 기업들은 바라고 있다.<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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