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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털기 청문회에 손사래"…김행 사퇴 뒤 인재난 허덕이는 용산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5일 김행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질의에 답변 도중 머리를 쓸어올리고 있다. 김성룡 기자

지난달 5일 김행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질의에 답변 도중 머리를 쓸어올리고 있다. 김성룡 기자

“다들 하지 않으려고 하더라.”

길어지는 대법원장 공백 사태에 대해 최근 여권 고위 관계자가 답답한 듯 전한 말이다. 지난달 6일 국회에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뒤 윤석열 대통령은 아직 차기 후보자를 지명하지 못했다. 지난 9월 김명수 전 대법원장 퇴임 뒤 사법부 수장 공백 사태도 4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기존 후보군 외에도 범위를 넓혀 다양한 사람을 검증 중이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인재난’에 허덕이고 있다.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할 대법원장과 장관은 물론, 차관급인 수석비서관 후보자를 찾는 것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인 현직 장관과 대통령실 참모들이 다수라 ‘인사 비상’이란 말까지 나온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사퇴와 이균용 부결 사태 이후 공직을 맡겠다는 사람이 확 줄었다”며 “모두 신상털기 청문회를 이유로 손사래를 친다”고 말했다. 대법원장은 후보군이라도 거론되지만, 여가부 장관은 그조차도 없는 상황이다. 지난 2일 여가부 국정감사엔 ‘잼버리 사태’로 사의를 표명했던 김현숙 장관이 국정감사장에 앉아 야당 의원들의 ‘잼버리 질타’를 들었다.

2000년 6월 이한동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도중 땀을 닦고 있다. 중앙포토

2000년 6월 이한동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도중 땀을 닦고 있다. 중앙포토

인사청문회는 2000년 6월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돼 노무현 정부에서 모든 국무위원으로 확대됐다. 이명박(MB) 정부 때 방송통신위원장 등 위원장급 인사와 한국은행 총재도 국회의 청문을 거치도록 했다. 헌정사상 최초의 피청문인은 2000년 6월 청문회장에 섰던 고(故) 이한동 국무총리다. 정계의 요직이란 요직은 모두 거친 6선 의원도 청문회장에선 땀을 닦기 바빴다. 이 총리는 “리허설을 하면 최초의 청문회가 무색해진다”며 시작 전엔 여유를 부렸지만, 청문회가 끝나자 “공직자에게는 무한한 도덕성이 요구된다고 하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인사청문회에 대한 답답함을 쏟아낸 건 윤석열 정부만은 아니다. 박근혜와 문재인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중앙일보의 프리미엄 구독 서비스인 더중앙플러스에 회고록을 연재 중인 박 전 대통령은 2일 자 회고록에서 인사청문회에 대한 씁쓸한 기억을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정부가 막 출범했던 2013년 2월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를 손수 낙점했다. 미국 알카텔ㆍ루슨트 최고전략책임자(CSO) 겸 벨연구소 사장이었던 김 후보자는 이중국적 등 개인 신상 문제로 공격을 받고 2주 만에 자진사퇴했다. 그는 당시 박 전 대통령에게 “내가 고통받는 것은 상관없지만, 아내와 가족들이 매일같이 울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절망스러웠고, 더는 견디기가 힘들다”며 울먹였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그의 낙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한숨이 나온다”고 말했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2013년 3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을 피해 떠나고 있다. 뉴시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2013년 3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을 피해 떠나고 있다. 뉴시스

문 전 대통령은 취임 초만 해도 인사청문회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2018년 10월 당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임명하며 “‘인사청문회 때 많이 시달린 분들이 오히려 일을 더 잘한다’라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해 야당의 반발을 샀다. 하지만 서울ㆍ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야당에 대패한 직후인 2021년 5월 기자간담회에선 “우리 인사청문회는 능력 부분은 젖혀두고 오로지 흠결만 놓고 따지는 무안 주기식 청문회가 됐다”며 “이런 제도로는 좋은 인재를 발탁할 수 없다”고 답답함을 드러냈다.

인사청문회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계속돼왔지만, 여야는 자신이 놓인 상태, 즉 정권의 유무에 따라 인사청문회에 대한 태도를 바꿔오며 현 제도를 유지해왔다. ‘능력 중심’을 외쳤던 여당 의원들은, 정권을 빼기면 ‘송곳 검증’을 주장했고, 이는 야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유 문체장관, 윤 대통령, 신 국방장관,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김현동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유 문체장관, 윤 대통령, 신 국방장관,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김현동 기자

대통령실은 ‘인사청문회 통과’ 여부를 향후 주요 후보자 선정의 최우선 기준으로 두겠다는 입장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뒤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낮은 자세로 국민을 대할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별도의 지시도 내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소통과 민생 행보로 지지율을 겨우 올려도, 사람을 잘못 고르면 순식간에 날아가는 것이 현실”이라며 “윤 대통령의 고심도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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