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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차대전 승리가 육군 덕분? 천만에, 미군의 힘은 따로 있다 [BOOK]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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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전, 최강국의 탄생
폴 케네디 지음
이언 마셜 그림
강주헌 옮김
한국경제신문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지금까지 제2차 세계대전의 유럽 전선은 지상전 승부라는 인상이 강하다. 1943년 2월 끝난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끊임없이 되새김질 되는 이유다.
하지만 세계적 베스트셀러 『강대국의 흥망(1987)』에서 1500~1980년 강대국들이 정치적‧경제적으로 부상하고 쇠퇴한 이유를 탐구한 역사학자인 지은이는 시각을 확대한다. 연합군이 승리한 열쇠를 “미국과 영국이 병력과 군수품을 끝없이 실어 나른 덕분”이라고 정리한다. 미국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무기와 전쟁물자는 미국 행정부의 무기대여법에 의해 영국은 물론 소련에도 쏟아졌다. 지은이는 이를 뒷받침해준 것이 연합군의 해군력과 생산성 혁명이라고 강조한다.
영국과 미국이 1943년 북대서양에서 연합군 수송선을 노리던 독일 유보트에 중대한 타격을 입히고 제해권을 재확보한 바탕이 바로 해군력이었다. 대서양을 건너는 해상수송로를 지킬 수 있게 되자 미국에서 만든 폭격기와 전투기, 기갑차량, 야포, 군함이 대거 유럽으로 쏟아질 수 있었다. 그 결과 미군은 북아프리카에 상륙해 교두보를 확보했고, 영국은 몰타를 장악해 지중해를 내해로 만들 수 있었다. 그해 9월 연합군이 시칠리아에 이어 이탈리아 본토에 상륙하자 이탈리아 왕국은 닷새 만에 항복했다.
태평양 전선에선 미군이 뉴기니 동쪽의 솔로몬제도 해전에서 일본의 해상‧항공 전력을 강타했다. 일본은 수송능력까지 달리면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1936년 몰타의 그랜드 하버에 정박 중인 영국 군함 퀸 엘리자베스함. 한 번 침몰했다가 끌어 올려져 대수선한 다음 2차 대전에서 맹활약했다. 사진 한국경제신문

1936년 몰타의 그랜드 하버에 정박 중인 영국 군함 퀸 엘리자베스함. 한 번 침몰했다가 끌어 올려져 대수선한 다음 2차 대전에서 맹활약했다. 사진 한국경제신문

43년 대서양과 태평양의 승리로 군수품 수송에서 우위를 차지한 연합군은 44년 유럽 전선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펼치면서 전세 역전의 전기를 마련했다. 태평양 전선에선 미군과 호주군이 역대 최대 해전인 필리핀 동부의 레이테 만 전투에서 일본 해군을 난타해 재기불능 상태에 빠뜨렸다.
일본은 이 해전에서 처음으로 가미카제를 동원했다. 자살공격은 일본의 전력고갈을 여실히 보여준 신호였다. 결국 미국의 경제 활황과 강력한 재정지원, 세금인상이 다량의 군수품 제조를 가능하게 했고 해군력이 공급을 담보하면서 전쟁 승리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해군력과 생산력은 전후 국제관계를 좌우했다. 지은이는 36~45년 2차대전 중 강대국들의 해군력 변화 및 해전을 살핀 뒤 “해전 승리가 연합군의 승리로 이어졌고, 국제관계에서 세력 분포의 변화로도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2차대전을 계기로 해군력을 증강한 미국은 종전 이후 기술적으로 앞선 항모전단을 앞세워 글로벌 제해권을 장악했다. 지은이는 이를 “전쟁은 국가를 만들고 국가는 전쟁을 만든다”는 미국 정치학자‧사회학자인 찰스 틸리의 말로 요약한다.
미국은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결국 냉전에서도 승리하고 지금까지 전 세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거나 발휘하려고 한다. 하마스의 민간인 공격과 이스라엘의 보복 공급으로 가자지구가 불안해지자 미국이 가장 먼저 한 조치가 항모전단 이동이라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항모전단은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과 가장 큰 격차를 보이는 전력 분야다.

1945년 그러먼 F6F 헬켓 전투기와 미국 항공모함 본험 리처드호. F6F 헬캣은 태평양 전쟁을 지배한 전투기였다. 일본 항공기의 75%가 이 전투기에 의해 격추됐다. 한국경제신문

1945년 그러먼 F6F 헬켓 전투기와 미국 항공모함 본험 리처드호. F6F 헬캣은 태평양 전쟁을 지배한 전투기였다. 일본 항공기의 75%가 이 전투기에 의해 격추됐다. 한국경제신문

지은이는 이 책에서 2차대전의 숱한 해전의 배경과 과정, 그리고 결과를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앨프리드 머핸이 제창한 ‘해양 우세’ 전략지정학이 오늘날에도 유용함을 증명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미 해군 제독인 앨프리드 머핸은 “국제정치는 바다를 통제하기 위한 지속적인 투쟁”이라고 강조했다. 강한 해군을 보유한 국가가 국제적으로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머핸은 해양 공간과 통상로 장악이 강대국의 필수조건이라고 지적했다. 머핸은 ‘해양력(Sea Power)’이라는 개념을 고안해 해양 중심의 지정학을 설파했다. 그는 기동성과 교통의 편리함 때문에 해양세력이 대륙세력보다 우세하다며, 외교정책 결정 과정에선 해양 진출과 해양 공간 장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은 역사적으로 지중해 입구의 지브롤터와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수에즈운하,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싱가포르, 중국 남부의 무역항인 홍콩을 서로 연결하는 통상로를 장악했다.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ica‧영국에 의한 평화)’ 시대를 열고 1815~1914년 패권 국가로 군림한 배경이다. 그 뒤 20세기와 21세기에는 미국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국가 대전략, 경제력, 국제관계, 글로벌 영향력, 패권 경쟁 등에서 바다와 해상수송로, 그리고 해군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78세 노학자의 웅변이 들리는 듯하다. 2016년 세상을 떠난 해양화가 이언 마셜의 해양 삽화는 이런 내용에 생기를 더한다. 복엽기가 이착륙하는 초기 항공모함부터 수많은 함포가 달린 전함 등 다양한 군함의 자태, 항해 모습, 해전 등을 수채화로 그렸다. 철저한 조사와 고증을 바탕으로 외양뿐 아니라 긴장된 상황도 생생하게 전달한다.
원제: Victory at Sea: Naval Power and the Transformation of the Global Order in World War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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