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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줄서며 원서 내던 곳인데…국내 첫 '불교 유치원' 폐원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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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 100년 만에 문 닫는 강릉 금천유치원 모습. [연합뉴스]

개원 100년 만에 문 닫는 강릉 금천유치원 모습. [연합뉴스]

1923년 문 연 불교유치원

100년 역사를 간직한 국내 첫 불교 유치원인 강릉 관음사 금천유치원이 결국 문을 닫았다. 월정사 강릉포교당 관음사는 지난 25일 강원 강릉교육지원청에 ‘금천유치원 폐쇄 인가 신청서’를 제출하고 직인을 반납했다.

관음사 측은 “금천유치원을 계속 운영하려 이전 등 다양한 방안을 오랜 기간 검토해봤으나 해답을 찾지 못했다”며 “100년을 넘겨보려고 적자를 감수하고 운영해봤으나 결국 지난해 휴원한 뒤 폐원 절차를 밟게 됐다”고 설명했다.

금천유치원 설립은 일제강점기이던 1923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교육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려는 ‘교육구국운동(敎育救國運動)’이 일었고, 여기에 포교 필요성이 더해지면서 불교 유치원이 탄생하게 됐다. 오대산 월정사와 금강산 유점사·건봉사가 공동으로 유치원을 설립하기로 뜻을 모은 뒤 그해 7월 29일 강릉포교당 병설로 개원했다. 금천(錦天)은 ‘비단으로 수놓은 하늘’이란 의미다. 설립 첫해 신입 원생은 60여 명이었다.

금천유치원은 한국전쟁 당시 휴원하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바른 인성교육을 내세워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원서접수 날에는 이른 아침부터 장사진을 쳤다. 원아는 한때 120명이 넘은 적도 있다. 금천유치원 졸업생은 4000여 명에 이른다. 조순 전 부총리도 이곳 출신이다.

1985년 강릉 금천유치원 모습. [사진 강릉교육지원청]

1985년 강릉 금천유치원 모습. [사진 강릉교육지원청]

도시 개발되면서 원생 급격히 줄어

하지만 금천유치원 명성도 도시 팽창에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아파트 등 주거단지가 건설되면서 주변에 어린이집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금천유치원 인근엔 중앙시장이 있다. 교통편과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어느새 원생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저출산도 영향을 줬다. 휴원 직전인 2021년엔 원생이 12명이었다. 당시 신입 원아 모집 기간에 등록한 원아는 한 명도 없었다.

관음사 측은 100년이라도 넘겨보려고 휴원하기 몇 년 전부터 수천만 원의 적자를 감수해가며 어렵게 유치원을 운영했다고 한다. 원생이 줄어들어도 교사와 조리사, 버스 기사 인건비 등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비용은 줄어들지 않아서다. 휴원 전 3년 동안 들어간 돈이 1억원을 넘겼다고 한다.

1985년 강릉 금천유치원 내부 모습. [사진 강릉교육지원청]

1985년 강릉 금천유치원 내부 모습. [사진 강릉교육지원청]

구도심 인구 감소 영향 가장 커 

관음사 측은 금천유치원을 지키기 위해 주거단지 주변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여러 차례 검토했다. 하지만 용지 매입과 건축 비용 문제로 불발됐다.

배헌영 관음사 사무장은 “산골로 들어갈 수는 없고 아이들이 많은 주거단지 주변으로 옮겨 다시 열어야 하는데 땅을 사고 건물 짓는 데만 30억~40억이 필요했다”며 “강릉 인구가 줄면서 아이들도 점점 감소해 구도심에 있는 사립유치원 대부분은 폐원 걱정을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금천유치원이 있는 강릉 중앙동 인구는 매년 급격하게 줄고 있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현황을 보면 지난 6월 기준 중앙동 인구는 4593명으로 2013년 6201명과 비교해 1608명이 줄었다. 또 2013년 유치원에 다닐 수 있는 연령이 포함된 5~9세 아이는 146명이었다. 하지만 지난 6월 기준 63명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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