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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노인돌봄...복지 하나만으론 문제를 풀기 힘든 이유[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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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연대의 경제학
낸시 폴브레 지음
윤자명 옮김
에디토리얼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미국 하버드대의 클로디아 골딘 교수가 "노동시장에서의 여성의 성과에 관한 이해를 증진한 공로"로 받은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골딘 교수는 경제사와 노동경제학 분야에서 경제적 불평등, 여성 노동력, 젠더 간 임금 격차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왔기 때문이다. 여성 노동력, 젠더 간 소득 격차, 소득 불평등, 기술 변화, 교육, 이민 등 연구 분야가 광범위하지만 이를 하나로 꿰는 것은 ‘경제적‧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다.

저자 낸시 폴브레. [사진 에디토리얼]

저자 낸시 폴브레. [사진 에디토리얼]

골딘 교수가 노동시장에 참여한 여성 노동력의 저평가와 임금 불평등 문제를 파고들었다면, 지은이는 임금을 받지 않는 여성의 ‘비시장 노동’에 주목한다. 미국 매사추세츠대 앰허스트의 명예교수인 지은이는 가사‧출산‧보육‧가족보살핌 등을 ‘돌봄노동’이라는 개념으로 체계화했다. 그는 이 대학 정치경제학연구소(PERI)의 ‘젠더와 돌봄노동 프로그램’ 책임자로 관련 연구를 주도해온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다. ‘돌봄노동’은 원래 의료‧교육 등 폭넓은 사회적 서비스를 가리키지만, 지은이는 출산‧보육‧교육과 노인돌봄 등 비시장 노동에 초점을 맞춘다.

지은이는 지금 한국을 포함한 상당수 선진국에서 저출산‧고령화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원인으로, 돌봄노동을 여성의 역할로 몰아간 가부장제를 지목한다. 가부장제 아래에서 여성은 가족 보살핌과 아이 양육 등 돌봄노동을 전담했다. 기술혁신과 임금노동을 확대하면서 이런 불평등 체계가 무너졌지만, 그 빈 공간에서 더 큰 문제가 불거졌다. 기술혁신과 임금노동 기회 확대 속에서 여성은 돌봄노동과 임금노동의 이중고를 강요받았다. 이는 가족 내 돌봄 노동의 분배와 복지국가의 출현과 확대로 이어졌다.

이달초 독일 기센의 난민 관련 시설 유치원에서 난민 어린이들이 놀이를 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이달초 독일 기센의 난민 관련 시설 유치원에서 난민 어린이들이 놀이를 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선진국 자본주의의 특징 중 하나가 복지지출의 확대다. 자본주의에서 사유재산 축적이 성공한 뒤 공적지출 확대로 이어진 것은 아이로니컬하다. 지은이는 복지확대가 첫째 사회갈등을 완화하고, 둘째 자본주의의 시장실패를 해결하며, 셋째 가족과 경제의 관계가 변했다는 사실을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복지는 부와 소득 편중의 심화와 노동 불안전성이 증가하는 자본주의와 연금‧의료 등 사회 서비스를 제공해주지 못하는 시장의 결함을 보충하는 게 목표였다. 복지 등 공공지출의 확대는 기업의 인적역량 창출비용 일부를 공공 정책에서 부담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지은이는 복지국가 정책의 확대가 오히려 복지국가의 진전을 가로막는 벽이 됐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복지국가의 공공지출은 민주적 절차에 의해 비록 삭감되지는 않았더라도 더 이상 확대될 수는 없었다. 자본 이동성이 증가하고 역외 탈세가 쉬워지는 등 기업과 부자에 대한 과세가 어려워지면서 복지재원의 확대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과세부담은 노동자에게 전가됐다고 본다.

여기에 더해 가부장적 편향이 작용하면서 국가는 아이 양육비용을 양육자에게 별도로 지원하지 않았다. 출산과 양육은 사회나 국가가 아닌 개인 부담이라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 아이의 가족이 내는 세금으로 양육자 이외의 사람에게 혜택을 주게 되자 출산율은 기존 인구를 대체할 수 없는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설명한다. 결국 저출산과 노인 돌봄을 둘러싼 갈등은 사회적 비용의 분배를 둘러싼 집단갈등의 하나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없이 복지만 확대하는 방법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지적이다. 지은이는 문제 해결을 위해선 다양한 사회적 약자끼리 연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부장제 체제의 부상과 쇠락, 이후의 새로운 질서’라는 부제가 전체 주제를 요약한다. 원제 The Rise and Decline of Patriarchal Syst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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