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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강경파, 美의회 ‘장악’ 성공…‘배후 트럼프' 끝까지 웃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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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미국 공화당의 소수 강경파가 주도한 의회 권력 교체 작전의 결론은 강력한 친(親)트럼프 성향의 7년차 ‘주니어’ 하원의장이었다.

신임 마이크 존슨 미국 하원의장이 25일(현지시간) 본회의에서 의장으로 선출된 뒤 선서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신임 마이크 존슨 미국 하원의장이 25일(현지시간) 본회의에서 의장으로 선출된 뒤 선서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하원은 25일(현지시간) 본회의에서 공화당 소속 4선 마이크 존슨 의원을 신임 하원의장으로 선출했다. 존슨 신임 의장은 재석 429명 가운데 공화당 소속 220명 전원의 지지를 받아 과반(217표) 득표에 성공했다. 집권 민주당 의원 209명 전원은 자당 소속인 하킴 제프리스 원내대표에게 몰표를 줬지만 투표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로써 지난 3일 케빈 매카시 전 의장이 미국 헌정 사상 최초로 투표로 해임된 이후 벌어진 의장 공석과 하원 마비 사태는 22일만에 마무리됐다.

입법부 수장을 교체한 주체는 보수 성향의 공화당 내에서도 초강경파로 분류되는 ‘프리덤 코커스’다.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은 20여명에 불과하지만 하원이 공화당 221명, 민주당 212명으로 구성돼 공화당 내에서 5명 이상만 뭉칠 경우 과반 표결이 불가능한 상황을 활용했다.

강력한 캐스팅보터가 된 프리덤 코커스는 매카시 전 의장에 대한 해임안을 통과시킨 뒤 당내 다수 중도파 주도로 선출된 자당 후보 2명까지 잇따라 낙마시켰다. 이들이 반대할 경우 본회의 통과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중도 진영의 스티브 스컬리스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와 톰 에머 원내 수석부대표는 경선에서 1위를 하고도 ‘본선’인 본회의 투표 전에 사퇴했다.

마이크 존슨 신임 하원의장이 25일(현지시간) 본회의에서 신임 의장으로 선출되면서, 미국 하원은 22일간의 하원의장 공석 사태를 마무리지었다. 존슨 의장은 대표적인 친 트럼프계 인사로 분류된다. AFP=연합뉴스

마이크 존슨 신임 하원의장이 25일(현지시간) 본회의에서 신임 의장으로 선출되면서, 미국 하원은 22일간의 하원의장 공석 사태를 마무리지었다. 존슨 의장은 대표적인 친 트럼프계 인사로 분류된다. AFP=연합뉴스

다만 존슨 의장의 당선은 당내 중도파와 소수 강경파가 타협한 결과란 평가도 나온다.

프리덤 코커스는 당초 공동설립자인 짐 조던 법사위원장을 후보로 밀었지만, 중도파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이들은 프리덤 코커스 소속은 아니지만 조던 위원장과 친분이 깊고 당내에서도 자신들 못지 않은 극보수로 분류되는 존슨 의장을 일종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강경파들은 특히 존슨 의장이 공화당 주류 100여명이 참여한 당내 중도 성향의 공화당연구위원회(RSC) 의장을 역임했던 사실과 프리덤 코커스와 직접적 관계가 없다는 점 등을 부각하며 중도파의 찬성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이를 통해 2017년 루이지애나주 연방 하원의원으로 의회에 진출했던 1972년생 51세 존슨 의장이 미국의 입법부를 총괄하는 체제가 완성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짧은 정치 경력상 비중 있는 보직을 맡은 적 없는 존슨 의장이 당선된 과정을 두고 “공화당 내분으로 3명의 후보가 연이어 낙마한 초유의 사태가 아니었다면 어떤 시나리오에서도 의장으로 선출됐을 가능성이 매우 낮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법원에서 진행된 민사 재판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법원에서 진행된 민사 재판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존슨 의장의 당선이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마가(MAGAㆍ Make America Great Againㆍ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의 승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6년여 존슨 의장의 의정 활동이 사실상 ‘트럼프 구하기’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존슨 의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패배한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한 시도를 ‘설계’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헌법 전문 변호사 출신인 존슨 의원은 대선 결과를 인증하는 상ㆍ하원 합동회의를 앞두고 바이든 당선의 인증을 반대할 법적 논리를 제공했다”며 그를 해당 작업의 “설계자”라고 보도했다.

실제 그는 2020년과 2021년 상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탄핵 재판을 진행했을 때 변호인단에 참가했다. 또 텍사스주가 바이든 대통령이 승리한 4개 경합주의 투표 결과를 무산시키기 위해 연방대법원에 소송을 준비했을 때도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고 있다”며 공화당 의원 126명의 서명을 받아 텍사스주를 지지하는 의견을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공화당)에 대한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공화당)에 대한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존슨 의장에 대한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소셜미디어에 “나는 선두 후보 마이크 존슨과 함께 가길 강력하게 제안한다”는 글을 올렸다. 당선 직후에는 “그는 위대한 의장이 될 것”이라는 축하글을 남겼다. 존슨 의장은 의장 선출 뒤 ‘2020년 대선이 도둑맞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오늘은 어떤 문제에 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겠다”면서도 “내 입장은 잘 알려져 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내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존슨 의장이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강력한 견제를 가할 거란 관측을 내놨다. 대결정치의 첫 시험무대는 다음달 17일로 끝나는 임시 예산안 이후 내년도 예산안 처리와 전쟁이 진행중인 우크라이나ㆍ이스라엘에 지원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서정건 경희대 교수는 26일 통화에서 “임시 예산안 처리에 협조했던 매카시 전 의장보다 보다 강경한 의장이 나타나면서 다음달 셧다운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며 “이에 앞선 핵심 관전 포인트는 우크라이나ㆍ이스라엘 전쟁에 대한 동시 묶음지원을 원하는 바이든 대통령과 이스라엘 단독 지원을 추진하는 의회 권력 간의 기싸움”이라고 전망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방문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방문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이날 당선된 존슨 의장은 취임 연설에서 “중동에서 우리의 위대한 동맹이 공격받고 있다”며 “내가 잠시 후 상정할 첫번째 법안은 이스라엘 지원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선 “조건부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예고대로 취임 후 첫 안건으로 상정된 이스라엘 지지 결의안은 찬성 412표 대 반대 10표로 통과됐다. 찬반을 표기하지 않고 투표를 보류한 의원은 6명이었다. 반대 10표 가운데 공화당은 1표, 민주당은 9표였다. 보류 6명 전원은 민주당 소속 의원이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일 ‘2개의 전쟁’을 동시 지원하고 중국 견제 등에 사용할 안보 예산 1050억 달러를 의회에 요구한 상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존슨 의장이 선출된 직후 성명을 통해 “우리는 국가 안보 문제를 해결하고 22일 안에 셧다운을 피하기 위해 신속히 움직여야 한다”며 예산안 처리 등을 압박하면서도 “이견이 있더라도 가능한 한 공통점을 찾기 위해 상호 노력해야 한다”며 의회의 협조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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