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신 인질 폰 신호 추적…납치 된 18세 딸 구출 나선 아빠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 인근의 한 광장에 하마스에 의해 납치된 인질들의 사진과 함께 이들의 신발이 놓여 있다. 안전보장이사회 회의가 열린 이날 인질들의 가족들이 이스라엘 정부와 국제사회에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트위터 캡처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인근의 한 광장. 신발 총 220켤레가 각각의 주인 사진 옆에 놓여졌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의해 납치돼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인질들의 신발이었다.

특히 자그만한 신발 곁에 있는 4세 소녀의 사진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뉴욕타임스(NYT)·CBS 등이 전했다. 인질들의 무사 귀환을 애타게 바라는 가족들이 이스라엘 정부와 국제사회에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이날 유엔 본부에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놓고 안전보장이사회 회의가 열렸다. 회의를 마친 엘리 코언 이스라엘 외무장관의 모습이 보이자 인질의 가족들은 그를 향해 "치욕"이라고 외치거나 "당신은 어디에 있었냐"고 항의했다. 이스라엘군에서 복무 중이던 아들이 납치된 부모는 "17일이 지났지만 (정부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여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NYT는 "이 분노엔 이스라엘인들이 정부에 느낀 배신감이 반영됐다"고 전했다.

자녀들이 하마스에 납치된 두 남성이 24일 유엔 본부 앞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날 이코노미스트 등은 이스라엘 정부의 인질 석방 노력이 가족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가족들이 직접 단체를 조직하고, 여기에 자원봉사자들과 정부 반대 인사들까지 합류하면서 점차 정치 세력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신에 따르면 텔아비브에 있는 인질 가족들의 본부는 하마스에 의해 21세 조카가 납치된 변호사 데이비드 잘모노비치가 세웠다.

이 본부에선 전현직 외교관, 미디어 전문가 등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가족들을 돕고 있다. 이 조직은 가족들이 파악한 인질에 대한 정보를 당국에 전달하고 있다. 또 가족이 이스라엘이나 해외 언론과 인터뷰를 하도록 다리를 놓기도 한다. 기술 관련회사들은 인질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뒤지고, 휴대전화 신호를 추적하고도 있다.

하마스에 의해 18세 딸이 납치된 시라 알백은 "정부가 할 일을 하지 않아 대신 민간인들이 나섰다"고 말했다. 가족을 돕고 있는 이스라엘의 한 전직 외교관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들을 도우려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22일 영국 런던에서 하마스에 의해 납치된 인질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AP=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의 '사법개혁'에 반대하던 인사나 단체들도 이들 가족과 연대하고 있다고 매체는 덧붙였다. 이스라엘 내에선 '자신의 부패 혐의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 사법개혁에 몰두한 네타냐후 총리의 실정이 이번 사태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하마스에 의해 억류된 인질의 가족들은 텔아비브에 있는 네타냐후 총리실 밖에서도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를 연일 벌이고 있다. 이스라엘의 피랍자 가족들이 자체 행동으로 정부를 압박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 이번엔 그 어느 때보다 규모가 크고 속도가 빠르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짚었다.

또 매체는 인질 석방이 최우선이란 가족들의 압박이 이스라엘 정부가 가지지구 지상전을 미루고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도 분석했다. 하마스가 가자지구 땅굴에 숨겨놓은 인질의 안전 문제가 본격적인 지상전을 준비하는 이스라엘군에 최대 난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