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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대지진 피해자와 함께 농사…美는 2090년까지 9·11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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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의 심각성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이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라면, 일본에선 1995년 고베 대지진이 계기가 됐다. 6400여명이 사망한 대형 재난이었다. 킨 요시하루(金 吉晴) 일본 국립 정신·신경의료연구센터장은 중앙일보와 화상 인터뷰에서 “고베 대지진과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경험하며 전 국민이 언제든 PTSD를 겪을 수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킨 요시하루(金 吉晴) 일본 국립 정신·신경의료연구센터장이 16일 중앙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가졌다. 이영근 기자

킨 요시하루(金 吉晴) 일본 국립 정신·신경의료연구센터장이 16일 중앙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가졌다. 이영근 기자

日, 지진 트라우마 피해자 ‘찾아가는 서비스’ 제공

일본의 대표적 재난 피해자 심리 지원 기관은 ‘코코로케어 센터’(마음케어 센터)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후쿠시마현·미야기현·이와테현에 설립됐고, 중앙정부가 매년 3억엔(약 27억원)의 예산을 투입 중이다. 센터마다 정신건강의학 전문의와 보건복지사 등 20~50여명이 근무한다.

후쿠치 나루(福地 成) 미야기 코코로케어 센터장(도호쿠대 정신과 교수)이 16일 중앙일보와 화상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2011년부터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 심리지원 기관인 미야기현 코코로센터에서 근무 중이다. 이영근 기자

후쿠치 나루(福地 成) 미야기 코코로케어 센터장(도호쿠대 정신과 교수)이 16일 중앙일보와 화상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2011년부터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 심리지원 기관인 미야기현 코코로센터에서 근무 중이다. 이영근 기자

미야기 코코로케어 센터에서 12년 동안 근무 중인 후쿠치 나루(福地 成) 센터장(도호쿠대 정신과 교수)은 중앙일보와 화상 인터뷰에서 “의료진이 피해자가 생활하는 현장으로 직접 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센터를 찾는 재난 피해자가 좀처럼 없다는 사실을 애초에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설립 단계부터 고안한 전략이었다.

후쿠치 센터장은 “초기엔 주 업무가 가정 방문이었다. 처음엔 ‘참견 필요 없다’며 방문 자체를 거부한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논밭에서 주민들과 땀을 흘리고 함께 낚시를 하거나 장기를 두며 친밀감을 키웠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차츰 마음을 열며 매년 6000~7000여명이 센터를 통해 지원을 받고 있다. 스스로 센터를 찾는 피해자도 2013년 855명에서 2018년 1737명으로 늘었다. 그는 “환자가 오기만 기다리면 아무것도 못 한다”고 했다.

후쿠치 나루 센터장 등 코코로케어 센터 의료진이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들과 농사 짓고 카자구루마(風車·바람개비)를 만드는 취미활동을 하는 모습. 후쿠치 센터장은 "피해자들이 생활하는 곳에 의료진이 직접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루 후쿠치 제공

후쿠치 나루 센터장 등 코코로케어 센터 의료진이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들과 농사 짓고 카자구루마(風車·바람개비)를 만드는 취미활동을 하는 모습. 후쿠치 센터장은 "피해자들이 생활하는 곳에 의료진이 직접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루 후쿠치 제공

 2001년 9·11 테러를 경험한 미국은 2011년 1월 자드로가법(Zadroga Act)을 통과시켰다. 지원 대상을 유가족·생존자에서 구조·복구·청소 작업자와 인근 거주·근로자로 대폭 넓히고, 거주나 근무 사실만 증명하면 복잡한 인증 없이 치료 받을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한 법이다. 이 법에 따라 복지부 산하에 WTCHP(World Trade Center Health Program)를 설립, 피해자의 의료비를 지원한다. 투입된 정부 예산만 약 42억달러(약 5조 6400억원)다. 피해자 위로 기금을 통한 보상과 별개로, 신청만 하면 2090년까지 의료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다. 지난해까지 총 4만 9000명이 혜택을 받았다.

미국와 일본 모두 “오랜 기다림 끝에 배정 받은 상담 기관은 자택에서 대중교통으로 편도 3시간 지역에 있었다. 애써 찾아간 곳에서 받은 지원은 20분 남짓한 기초적인 상담이 전부였다”(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이태원 참사 인권실태조사」)는 국내 참사 생존자·유족에게 제공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보살핌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느리고 제한적이라는 점도 한국의 재난 피해자 지원의 문제로 지적된다. ‘대구 지하철화재사고부상자 의료지원 등을 위한 조례’가 참사 발생 16년 뒤인 2019년 10월에 제정됐지만, 부상자에 대한 치료비는 이때부터 5년 동안만 지원한다. 내년이면 지원이 끝날 상황에서 대구시가 5년 연장을 결정하며 2029년까지 지원 기간이 늘어났지만, 이 역시 한시적이다. 세월호 참사 역시 의료비 지원 기간은 내년 4월 15일로 끝난다. 정해선 안산온마음센터장은 “트라우마는 심하면 평생 간다. 매년 참사일이 다가오면 기념일 반응으로 신체적·심리적 변화를 겪기도 한다. 의료비 지원 기한을 정해둬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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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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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즈버러 참사 27년 진상규명 버팀목…지역사회 ‘무한 지지’ 

 채정호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트라우마 치유의 최종 종착지는 사회적 지지와 연결”이라고 강조한다. ‘힐즈버러 참사’ 이후 영국 사회의 대응이 대표적인 모범 사례다. 힐즈버러 참사는 1989년 4월 15일 열린 리버풀 FC와 노팅엄 포레스트 FC의 축구 경기에서 94명이 압사하고 3명이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영국 축구단 리버풀FC의 홈구장 안필드 외부에 마련된 '힐즈버러 참사' 추모 공간. 힐스즈버러 참사는 1989년 4월 15일 리버풀FC와 노팅엄 포레스트FC와의 경기에서 경찰의 과실로 94명이 압사하고 3명이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리버풀 FC 홈페이지 캡처

영국 축구단 리버풀FC의 홈구장 안필드 외부에 마련된 '힐즈버러 참사' 추모 공간. 힐스즈버러 참사는 1989년 4월 15일 리버풀FC와 노팅엄 포레스트FC와의 경기에서 경찰의 과실로 94명이 압사하고 3명이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리버풀 FC 홈페이지 캡처

참사 직후 정부와 경찰은 사고 책임을 만취한 축구 팬들의 난동 탓으로 돌렸고, 진상 규명 작업은 더디게 진행 됐다. 그동안 희생자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생존자들의 고통은 커져 갔다. 하지만 지역 사회가 보여준 꾸준한 지지와 연대가 피해자들이 일으켜 세웠다. 리버풀 FC와 팬들은 매년 4월 15일 홈 구장 안필드 스타디움에 “떠났지만, 절대 잊지 않겠다”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추모제를 열었다. 경기장 외부에 희생자 97명 전원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공간을 만들고, 선수들의 유니폼 목 부분에도 숫자 ‘97’을 새겨 넣었다. 단단히 연결된 피해자들은 쉽게 지치지 않았고, 결국 참사 27년 뒤 정부는 경찰의 관리 실수와 부실한 대응이 참사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힐즈버러 참사 생존자인 앤 에이어 박사는 중앙일보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트라우마 치유 과정에서 동료 지원 프로그램이나 주변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1991년 설립된 재난 지원단체 ‘디에이’(Disaster Action)에서 활동하며 피해자들의 심리 치료 등을 도왔다. 지난 3월 안산온마음센터가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앤 박사는 “(디에이 활동은) 피해자를 미친 사람들이나 그저 슬픈 사람들이라고 보는 편견에서 벗어나게 했고, 사회·정치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챔피언으로 보게 하는 ‘인식의 도약’을 끌어냈다”고 말했다. 킨 일본 국립 정신·신경의료연구센터장 역시 “지진 등 재난이 잦은 일본에서는 모두가 재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며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는 많지 않고 정신 건강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합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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