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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반년간 급여 80% 받는다…'라떼파파' 스웨덴의 비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8월 30일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에서 '라떼파파'들이 삼삼오오 모여 유모차를 끌고 거리를 지나가고 있다. 스톡홀름=나상현 기자

지난 8월 30일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에서 '라떼파파'들이 삼삼오오 모여 유모차를 끌고 거리를 지나가고 있다. 스톡홀름=나상현 기자

지난 8월,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를 가로지르는 버스 뒷문으로 헤드폰을 낀 한 남성이 유모차를 끌고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스웨덴에선 유모차를 대동하면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버스 내 유모차 전용 공간이 별도로 마련돼 있는 데다 정류장 높이도 버스 높이와 똑같게 설계됐기 때문에 별도의 장치 없이 손쉽게 들어올 수 있다.

같은 날 스톡홀롬 야외 동물원 ‘스칸센’(Skansen)에서도 엄마 없이 유모차를 끄는 남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니며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풀밭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동안 아빠들끼리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떠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날 스칸센에선 여성보다 남성 유모차 부대가 훨씬 더 많이 보였다. 한국에선 다소 생소한 광경이다.

지난 8월 3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야외동물원 '스칸센'(Skansen)에서 유모차를 끄는 '라떼파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나상현 기자

지난 8월 3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야외동물원 '스칸센'(Skansen)에서 유모차를 끄는 '라떼파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나상현 기자

일명 ‘라떼파파’(latte papa·커피를 손에 들고 유모차를 끄는,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라 불리는 남성 육아휴직자는 스웨덴 사회에 당연한 존재가 돼 있었다.

스웨덴에선 출산 직후 1년간 엄마가 육아휴직에 들어가고, 이후부턴 아빠가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웨덴은 자녀 1명당 육아휴직을 최대 480일까지 사용할 수 있고, 부부 한쪽이 반드시 90일을 사용하도록 하는 ‘육아휴직 할당제’를 운영하고 있다. 남성에게도 평등하게 가사·육아를 분담시키기 위해 1995년부터 도입된 제도다. 이를 통해 스웨덴은 지난해 기준 합계출산율 1.52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육아휴직 기간 소득대체율도 높다.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240일 중 195일은 급여의 80%를 받을 수 있고, 나머지 45일에 대해선 하루 180크로나(약 2만2000원)가 지급된다.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저소득층과 무직자, 학생에게도 일정 급여를 지급해준다.

스웨덴 최대 중공업 기업 '아트라스콥코'의 IT 전문가 야콥 보르예손(36). 보르예손은 이전 직장을 포함해 남성 육아휴직을 세 차례 다녀왔다. 스톡홀름=나상현 기자

스웨덴 최대 중공업 기업 '아트라스콥코'의 IT 전문가 야콥 보르예손(36). 보르예손은 이전 직장을 포함해 남성 육아휴직을 세 차례 다녀왔다. 스톡홀름=나상현 기자

스웨덴 중공업 기업 아트라스콥코(Atlas Copco)에 정보기술(IT) 전문가로 재직 중인 야콥 보르예손(36)은 남성 육아휴직을 이전 직장까지 합쳐 총 세 차례나 다녀왔다. 자녀가 태어날 때마다 최소 7개월에서 최대 9개월씩 사용했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눈치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보르예손은 “육아휴직을 간다고 말했을 때 모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지지해줬다”며 “복직한 뒤에도 유연하게 근무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고 말했다.

자신이 떠난 자리에 업무 공백이 발생하거나 복귀했을 때 다른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는 없었을까. 보르예손은 “이미 아내가 임신했을 때부터 육아휴직을 떠날 거라고 회사에 말했기 때문에, 회사도 그 기간 동안 대체 인력을 미리 준비할 수 있다”며 “내가 육아휴직을 다녀온 이후에도 지금 하는 업무를 이어서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걱정은 없다”고 말했다.

물론 스웨덴도 처음부터 남성 육아휴직이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스웨덴은 1974년 남성 육아휴직 제도를 처음 도입했는데, 시행 초기 육아휴직자의 99.5%가 여성이었다. 남성 이용률은 0.5%에 그쳤다. 당시까지만 해도 ‘여성은 육아, 남성은 일’이라는 인식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웨덴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캠페인을 벌이면서 남성 육아휴직자는 점점 늘어났고, 1995년 육아휴직 할당제 도입 이후 큰 효과가 발휘됐다. 50여년에 걸친 노력 끝에 남성 육아휴직 이용률은 30% 수준까지 올라왔다. 보예르손은 “아버지 세대만 해도 육아휴직을 가는 것이 드문 일이었다. 지금도 60대 이상 어르신들과 얘기해보면 ‘좋겠네, 나도 지금 시대에 아이를 키웠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얘기하곤 한다”며 “하지만 이젠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아빠가 육아휴직 간다는 건 얘깃거리도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난 8월 2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만난 토비아스 예 올펠트(37)와 예주영(34) 부부. 한살배기 딸 한나를 돌보기 위해 현재 예씨가 육아휴직 중이고, 남편 올펠트씨도 이듬해 뒤이어 남성 육아휴직을 사용할 예정이다. 스톡홀름=나상현 기자

지난 8월 2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만난 토비아스 예 올펠트(37)와 예주영(34) 부부. 한살배기 딸 한나를 돌보기 위해 현재 예씨가 육아휴직 중이고, 남편 올펠트씨도 이듬해 뒤이어 남성 육아휴직을 사용할 예정이다. 스톡홀름=나상현 기자

스톡홀름 외곽 솔나 지역에 거주하는 토비아스 예 올펠트(37)도 현재 육아휴직 중인 아내 예주영(34)씨에 이어 내년부터 휴직에 들어갈 계획이다. 한국인-스웨덴인 부부인 이들은 맞벌이로 일하고 있지만, 지난해 태어난 딸 한나(1)에 대한 육아 걱정은 없다고 한다. 올펠트는 “오히려 육아휴직을 가지 않으면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 이상하게 쳐다본다”며 “남녀가 동등하게 일하고, 동등하게 육아휴직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밝혔다.

스웨덴에 남성 육아휴직이 보편화돼 있다는 것은, 달리 말해 여성 역시 걱정 없이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다녀올 수 있는 문화라는 의미기도 하다. 스웨덴의 한 공기업에 다니다 육아휴직에 들어간 지 9개월차인 예주영씨는 처음엔 ‘한국 문화’를 생각해 눈치가 보였다고 말했다. 예씨는 “지금 회사에 입사한 지 8개월 만에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말해야 했는데, 솔직히 부담감이 없지 않았다”며 “오히려 인사팀에서 육아 관련 혜택을 상세하게 설명해주면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알려줬다”고 말했다.

심지어 경력직으로 합격한 뒤 입사하기도 전에 육아휴직을 떠난 회사 동료들도 있다고 예씨는 귀띔했다. 예씨는 “스웨덴에선 남녀 상관없이 당연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고, 회사도 그것을 반드시 들어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며 “육아휴직을 다녀와도 경력 단절이 없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마음 편히 사용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스웨덴 최대 중공업 기업 '아트라스콥코'의 인사관리(HR) 담당자 아넷트 스펭베리(56). 스톡홀름=나상현 기자

스웨덴 최대 중공업 기업 '아트라스콥코'의 인사관리(HR) 담당자 아넷트 스펭베리(56). 스톡홀름=나상현 기자

스웨덴 현지 기업들도 사내 육아 제도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장려하고 있다. 경쟁사로부터 우수한 인재를 끌어오기 위해서다. 예컨대 스웨덴 정부는 육아휴직 기간에 임금의 80%를 지급하는데, 아트라스콥코의 경우 여기에 사내보유금으로 10%를 더 얹어서 90%까지 보전해준다. 아트라스콥코의 인사관리(HR) 담당자인 아넷트 스펭베리(56)는 “기업은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은 여성조차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이 국내 남녀 직장인 1000명을 상대로 설문한 결과 45.2%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육아휴직 사용 이후 인사 불이익, 경력 단절 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육아휴직 기간을 12개월에서 18개월로 연장하고 ‘3+3 부모육아휴직제’를 확대 개편하는 등 제도적 개선을 하고 있지만, 정작 적지 않은 직장인들에겐 ‘그림의 떡’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8월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 버스에 유모차를 끄는 '라떼파파'가 타고 있다. 스웨덴 버스는 유모차 전용 공간이 마련돼 있어 아빠·엄마들이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다. 스톡홀름=나상현 기자

지난 8월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 버스에 유모차를 끄는 '라떼파파'가 타고 있다. 스웨덴 버스는 유모차 전용 공간이 마련돼 있어 아빠·엄마들이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다. 스톡홀름=나상현 기자

니클라스 뢰프그렌 스웨덴 사회보험청 대변인은 “스웨덴에서 남성 육아휴직이 보편화될 수 있었던 건 1960년대부터 시작해 오랜 기간 동안 논의해왔기 때문”이라며 “육아 정책을 정착시키기 위해선 제도적 기반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변화 역시 동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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