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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둘만 땅 준다, 그럼 됐나"…칠남매 부친 생전 영상 '반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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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땅을 아들 둘에게 주겠다”는 아버지의 생전 영상 속 “그럼 됐나” 정도로는 사인증여가 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달 27일 일곱 남매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 사건에서 아들 손을 들어줬던 판결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유언 촬영한 줄 알았는데…유언도 증여도 아냐

아들 둘 딸 다섯 집안의 막내 아들 A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 소송을 냈다. 이미 법정상속분에 따라 아버지의 땅과 건물을 어머니와 형제자매들이 나눠가진 뒤였지만, 아버지가 자신과 형에게 땅을 준다고 말했던 동영상 촬영분을 근거로 자신이 더 많은 땅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A씨가 가지고 있던 영상은 돌아가시기 전 해에 찍은 것으로, 아버지가 노트북 화면을 보면서 ‘아들 둘에게 토지와 건물을 나눠주고, 큰아들은 딸들에게 각각 2000만원씩 줘라’는 내용을 읽는다. 중간에 “그럼 됐나”고 말하기도 한다.

영상 속 아버지는 “유언증서. 유언자 OOO는 다음과 같이 유언한다”로 시작해 “유언자 OOO.”로 말을 마치긴 했으나, 이는 유언으로 효력을 갖지 못했다. 민법상 녹음에 의한 유언은 증인이 있어야 하는데 이 영상 촬영 때 증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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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효력이 없는 이 동영상을 가지고, A씨는 사인증여(死因贈與)란 주장을 폈다. 사인증여는 증여자가 생전에 자신의 재산을 주기로 약속하고 사망시 그 약속의 효력이 발생하는 증여계약의 일종으로, 유언과 달리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의사 합치가 있어야 한다.

1심 통영지원 차진석 판사는 A씨의 주장을 받아주지 않았는데, 2심 창원지법 민사2부(부장 홍득관)의 판단은 달랐다. 아버지가 ‘그럼 됐나’ 물었던 것과 전후 사정을 감안하면 “A씨와 아버지 사이 사인증여에 관한 의사 합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판단이 잘못됐다고 봤다. 대법원은 “망인이 자신의 여러 자녀들에게 재산을 분배하는 내용의 유언을 하였으나 그 효력이 부정되는 경우 자리에 동석하였던 일부 자녀와 사이에서만 ‘청약’과 ‘승낙’이 있다고 보아 사인증여로 인정하는 것은 망인의 의사에 부합하지 않고 그 자리에 없던 나머지 상속인과의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는 유언을 하려고 했을 뿐, 증여를 하려고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의 ‘그럼 됐나’ 라는 발언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A씨에게 물었다고 보기 어려워 유독 A씨와의 사이에서만 청약과 승낙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에 대해 “사인증여의 해석에 있어 공동상속인들간의 형평을 해치지 않도록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의의가 있는 판결”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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