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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민간인 피해 최소화’ 조건 이스라엘 지상전 묵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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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8일(현지시간) 재급유를 위해 독일 람슈타인 공군기지에 착륙한 대통령 전용기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재급유를 위해 독일 람슈타인 공군기지에 착륙한 대통령 전용기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지난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하마스 섬멸 작전에 ‘조건’을 달았는지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영국 더타임스는 이날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네타냐후가 비공개 회담에서 바이든으로부터 지상전에 대한 지지를 얻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와 함께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중요하다. 향후 경로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지상군 투입을 강행할 경우 장기 점령은 불가하며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헤즈볼라 개입 땐 전쟁 몇 년 걸릴 수도”

더타임스는 “바이든은 네타냐후에게 실전 공격에서 어느 정도의 절제를 요청했으며, 가자지구에 인도주의적 물자를 들여보내는 것을 허용하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요구한 이상 대규모 민간인 희생을 야기하는 이스라엘의 작전은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지상전을 최대한 지연시켜 이스라엘이 계획을 보다 신중하게 검토하게 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 경험을 얘기했다. 그는 2001년 알카에다 테러를 경험한 자신과 미국인이 하마스의 기습 테러에 이스라엘 국민이 느끼고 있는 “충격, 고통, 분노”를 이해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분노에 잠식되지 말라”고 강조했다. 바이든은 대통령은 “9·11 이후 미국은 분노에 휩싸였다. 정의를 추구하고 정의를 쟁취했지만 동시에 실수도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바이든이 언급한 실수는 탈레반 축출을 목표로 시작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명분으로 시작했던 이라크 전쟁에서 실패했던 걸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대한 복수에만 급급해 ‘승리 이후’에 대한 뚜렷한 계획 없이 지상전에 착수하거나 가자지구를 점령한다면, 예상 못 했던 전쟁 장기화로 적을 축출하고도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미국의 쓰라린 경험을 재현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한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와 데일리 텔레그래프 등 외신은 하마스 섬멸을 내세우며 대대적인 지상전을 예고했던 이스라엘이 바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데엔 미국 등 국제사회의 외교적 압박뿐 아니라 ‘힘에 의한 평화’ 이후의 시나리오가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행 가능한 안보, 정치 전략 없이 보복만 강조하면 자국의 정치적 혼란을 부르고, 더 독하고 강한 적을 만드는 ‘빛바랜 승리’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케네스 폴락 미국기업연구소(AEI) 수석 고문은 이코노미스트에 “지금 이스라엘인은 마치 9·11 테러 직후 미국인들이 처한 것과 같은 상태”라며 “하마스 기습 공격 후 맹렬한 보복을 가하고 있지만, 이는 하마스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스라엘 입장에선 지상전 강행 여부는 하마스에 잡혀 있는 200명에 가까운 인질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인질 문제는 네타냐후 총리에겐 국내 정치 문제라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변수인 만큼 지상군 투입 시기도 여기 달려 있다고 본다”며 “지상군 투입 시기는 연말을 넘기진 않겠지만, 한 번 들어가면 외과수술식의 신속한 작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이날 비공개 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헤즈볼라가 개입할 가능성에 대해 이스라엘 측에 집중적으로 물었다고 한다. 이에 전시 내각에 참여 중인 베니 간츠 전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전선 확대로 인해 전쟁이 몇 년이 될 수도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이스라엘의 지상전이 시작되면 헤즈볼라가 분명히 개입하려 할 것”이라며 “헤즈볼라의 대규모 개입은 곧 이란의 참전을 의미하기 때문에 하마스와는 차원이 다른 전쟁이 전개될 것이며, 여기에 미국까지 대응하면 전선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로런스 프리드먼 전쟁학 명예교수는 “하마스를 진짜 뿌리 뽑는 건 단순히 군사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라며 “이스라엘이 출구 전략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섣불리 지상전에 돌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진핑 “근본적 방안은 두 국가 구현”

이스라엘군은 19일에도 가자지구 전역을 공습했다. 전날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을 계기로 가자지구 남부의 ‘생명 길’ 라파 검문소를 개방하는 데에 합의가 이뤄진 이후 첫 폭격이다. 이날 이스라엘군이 타격한 가자지구 남부 일대는 앞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대피 장소로 안내하며 ‘안전지역’으로 설정한 곳이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정상포럼을 위해 중국을 찾은 무스타파 마드불리 이집트 총리를 만나 “분쟁이 확대되거나 통제 불능이 돼 심각한 인도주의 위기를 초래하지 않도록 가급적 빨리 휴전하는 게 급선무”라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반복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두 국가 방안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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