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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1.0명 넘긴 유일한 곳…이곳에 한국 저출산 해법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성세대는 물론, 기업이 변해야 합니다.”

지난 9일(현지시간)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클로디아 골딘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수상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을 콕 짚어 내린 진단이다. 골딘 교수는 “(한국처럼) 변화가 빠를수록 전통(남성 우위 문화)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며 “출산 휴가 및 육아휴직과 관련해 포용적인 정책을 시행하더라도 직장 문화가 여전히 정책을 따라가지 못하는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구 감소에 따라 경제 ‘허리’인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며 생산·소비·투자를 비롯한 경제 전반이 활력을 잃는 ‘슈링코노믹스(축소 경제)’에 대응하는 열쇠는 기업이 쥐고 있다.

인구 문제 싱크탱크인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한미연)이 최근 성인 2300명을 설문한 결과 직장 만족도가 높은 20~39세 미혼남녀의 68.4%가 “결혼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출산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비율도 60.2%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일반 미혼남녀 57.2%가 “결혼 의향이 있다”, 53%가 “출산 의향이 있다”고 답한 것과 비교된다. 저출산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기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협력업체 등 양질의 일자리가 밀집한 경기도 평택은 상징적인 사례다. 19일 통계청에 따르면 평택의 지난해 출산율은 1.028명으로 인구 50만명 이상 시·군·구에서 유일하게 출산율이 1.0명을 넘겼다. 전국 평균 출산율(0.778명)은 물론, 경기도(0.839명)보다  높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사진 삼성전자

2015년 삼성전자 평택캠퍼스가 들어설 당시 5400명이었던 노동자는 지난해 약 5만 명으로 늘었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주변 반도체 클러스터에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중심으로 한 연구개발(R&D) 기관과 관련 중소기업이 잇따라 들어섰다. 평택시 사업체 수는 2020년 5만9691개에서 2021년 6만910개로 증가했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난 게 평택의 출산율을 높이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국내 1위 기업인 만큼 육아 관련 복지도 잘 갖췄다. 육아·난임·자녀돌봄 휴직이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선제적으로 도입했고, 혜택도 법정 기준보다 다양하다. 그 결과 2021년 기준 육아 휴직자의 회사 복귀율이 98% 수준이다. 최근 ‘네 쌍둥이’를 얻은 직원이 나와 화제가 된 포스코·SK온도 출산 친화적인 제도를 갖춘 회사로 평가받는다.

지난 3월 네 쌍둥이를 자연분만한 송리원 SK온 PM(왼쪽)과 아내 차지혜씨. SK온 제공

지난 3월 네 쌍둥이를 자연분만한 송리원 SK온 PM(왼쪽)과 아내 차지혜씨. SK온 제공

기업 경쟁력 관리 측면에서 유연 근무 확대, 불이익 없는 승진, 경력단절 후 복귀 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8월 육아휴직을 쓴 직원이 퇴직할 경우 3년 뒤 다시 채용하는 기회를 주는 ‘재채용 조건부 퇴직 제도’를 도입했다. 육아휴직 2년+퇴직 3년을 포함해 최대 5년까지 육아 기간을 갖고도 별도 채용 과정 없이, 퇴직 전 직급·급여 조건으로 일터로 복귀할 수 있도록 했다.

롯데는 2012년 국내 대기업 최초로 ‘여성 자동 육아휴직제’를 도입했다. 여성 직원이 출산 시 상사의 결재를 받을 필요 없이 ‘자동’으로 최대 2년까지 휴직할 수 있다. 남성은 아내가 출산한 지 2년 이내 최소 1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남성 대상자의 90%가 육아휴직을 썼다. 휴직한 첫 달은 통상임금의 100%를 회사가 지원(통상임금-정부지원금)한다.

인사혁신처가 내년부터 8급 이하 다자녀(2명 이상) 공무원에게 승진 우대 혜택을 주고, 다자녀 부모가 이전 직장에서 퇴직한 뒤 10년까지 공무원 경력직 채용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공직 사회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홈플러스 최고인사책임자(CHRO)를 지낸 최영미 이화여대 특임교수는 “여력이 있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중소기업도 육아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며 “육아휴직으로 자리를 비운 직원을 대체할 임시 직원을 채용하는 회사에 보조금을 주는 등 경영자 입장에서 육아 친화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유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미연은 기업을 대상으로 ‘인구영향 평가제’ 도입을 제안했다. 기업별로 직원이 결혼을 얼마나 했고, 자녀는 얼마나 낳았는지, 어떤 출산 친화 제도를 갖췄는지 평가해 우수 기업에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지원금을 주는 내용이다. 이인실 한미연 원장은 “100대 대기업을 대상으로 시작하고 점차 중견·중소기업으로 평가 대상을 확대해 기업이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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