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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부모보다 빨리 늙는다"…당뇨∙고혈압 증가 5060 압도 [MZ 가속 노화]

중앙일보

입력

전문가들은 학창시절부터 누적된 운동 부족과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 등을 2030 만성질환의 원인으로 꼽는다. 사진 셔터스톡

전문가들은 학창시절부터 누적된 운동 부족과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 등을 2030 만성질환의 원인으로 꼽는다. 사진 셔터스톡

고지혈증약을 5년째 매일 먹는 직장인 박모씨는 34세다. 29살에 진단을 받고 의사로부터 “운동을 하고 육류보단 채소를 많이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박씨는 “어린 나이에 약을 달고 사는 게 우울하다. 바빠서 운동과 식단 관리를 하는 일이 여전히 쉽지 않다”고 말했다.

‘중장년의 병’이 MZ세대(20~30대)를 위협하고 있다. 중앙일보가 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대와 30대 만성질환 환자가 중장년층 보다 빠르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20, 30대의 당뇨병 진료환자는 13만1846명으로 10년 전(2012년, 7만5868명)보다 74% 늘었다. 고혈압 환자는 같은 기간 45% 증가(15만4160명→22만3779명)했다. 고지혈증도 2배 이상(9만9474명→21만4243명)으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MZ세대가 실제 나이에 비해 생물학적 나이가 더 늙는 ‘가속 노화(accelerated aging)’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20~30대가 부모세대보다 빠르게 늙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당뇨병(335만 4251명)과 고혈압 환자(727만8875명)의 약 53%는 50·60세대였다. 하지만, 증가율은 10년간 50~60대에서 당뇨는 69%(20~30대 73%), 고혈압은 33%(20~30대 45%) 환자가 늘었다. 20~30대의 증가율은 50~60대를 압도하는 것은 물론, 전 연령에서 가장 높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건강검진 보편화로 진단이 늘어난 것도 한 요인이지만, MZ세대의 만성질환 증가를 온전히 설명해주진 못한다. 심경원 이대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혈압이나 당뇨는 검진에서 발견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 몸에 이상을 느껴 내원하는 젊은 환자들이 많다. 검진 확대만으로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면서 “진료 현장에선 확실히 20~30대 환자가 눈에 띄게 증가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관절이 안 좋아 정형외과를 찾는 20~30대도 늘고 있다. 수십 년을 써야 망가지는 뼈가 잘못된 습관과 운동 부족으로 일찍 망가진 탓이다. 이 때문에 의료현장에서 오십견이 아니라 ‘이십견’ 환자가 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민간비영리기구(NPO)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위모(35)씨는 서너 달마다 물리 치료를 받으러 정형외과에 다닌다. 손목과 무릎 관절이 골고루 안 좋아서다. 병원에선 ‘관절을 아껴 써라’고 하지만 회계 결산 시즌이나 감사를 앞두면 12시간씩 의자에 앉아 자판을 친다. 위씨는 “관절을 아껴 쓰고 싶어도, 방법이 마땅찮다”고 말한다.

건보공단 통계에 따르면 20~30대 퇴행성 관절증 환자는 10년 전 16만4636명에서 지난해 20만2198명으로 22% 늘었는데, 같은 기간 25% 늘어난 50~60대 관절증 환자와 비슷한 증가 속도다. 강종우 고려대 안산 병원 수부외과 교수는 “십수 년 전엔 아무리 젊어도 40~50대, 식당ㆍ건축 현장 같은 특수한 직업을 가진 환자들에게 관절염이 왔는데 최근에는 그 연령층이 10년 정도 당겨졌다”면서 “컴퓨터 없이 직장 일이 안 되고 스마트폰을 종일 쓰는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MZ세대가 빠르게 늙는 이유로 학창시절부터 누적된 운동 부족과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 등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입시와 사교육의 굴레로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놀 기회가 적었고, 취업과 경쟁에 내몰리면서 성인이 되어서도 습관화된 운동 부족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배달문화 보편화와 서구화된 식습관은 혈당 조절에 문제를 만들고, 비만으로 이어져 만성질환의 씨앗이 된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있다. 또 나아가 암이나 심혈관 질환 같은 중증질환의 위험도도 키운다고 경고한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대사증후군의 특징은 혈당이 빠르게 오르내린다는 것이다. 혈당을 조절하기 위해 인슐린이 점점 많이 나오는데, 이것들이 지방세포의 성장도 촉진하고 암세포의 성장도 촉진한다”면서 “가속 노화 문제를 방치하면 현재의 2030 세대는 베이비부머인 부모 세대보다 건강하지 못한 세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평균 수명이 늘고 있지만, 건강하지 못한 삶을 오래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울한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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