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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비용 세계일주 맞먹어, 한 번에 임신 간절히 기도"…시술 위해 휴직·퇴사도 [난임 부부의 눈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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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0호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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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갔다, 시간도 비용도 부담되고 체력도 버겁네요.”

서울시 중구 서울역 인근에 있어 접근성이 좋은 차병원 서울역 난임센터는 원정 난임 부부에게 잘 알려진 곳이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26일에도 이 병원 대기실은 난임 부부들로 북적였다. 전북 전주시에서 KTX로 3시간 만에 이곳을 찾았다는 김보은(37)씨는 “여기 오기 전 전북과 대전 등에 거주지 인근 난임 병원에서 인공수정과 시험관(체외수정) 시술을 두 차례 받았으나 아이가 생기지 않아 서울로 병원을 옮겼다”며 “명절 직전이라 기차표가 없어 버스를 타고 올 뻔했는데 다행히 취소 표가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한 난임 병원을 찾은 김모(38·경북)씨는 “수 차례 왕복 교통비와 여정을 감안하면 세계 일주를 할 수준”이라고 말했다.

불임·난임 인구 4년 만에 3만 명 늘여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합계 출산율 0.78명 시대. 유명 난임 병원 앞엔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다. 동서고금 유례없는 저출산 추세가 무색할 정도다. 아이를 원한다. 그것도 간절히. 시간과 비용은 아깝지 않다. 이유가 어찌 됐건 스스로 출산을 미뤘으니 난임 시술 부담도 감당해내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취업에 매달리다 결혼을 늦추고, 주거 안정에 시간을 쏟던 이들이 이제 난임과 싸우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내 평균 초혼연령은 지난해 기준 남자 33.7세, 여자 31.3세로 만혼(晩婚)이 일반화됐다. 산모들의 평균 출산연령도 33.5세로 매년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우고 있다. 그러는 사이 불임·난임 진단을 받은 인구도 지난 2018년 34만9000명에서 2022년 37만9000명으로 늘었다. 의료계에서는 1년간 자연 임신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경우 난임으로 본다.

난임 판정을 받은 부부들이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건 난임 병원이다. 난임 시술의 도움을 받는 게 요즘 같은 시대에 특별한 일이 아니란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연간 출생아 수(24만9000명) 가운데 난임 시술을 통해 태어난 출생아 비중은 9.3%까지 상승했다. 열 명 가운데 한 명은 난임 시술의 도움을 받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비중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신소연 분당차병원 난임센터 교수는 “의학 발달로 예전보다 난임 환자의 임신 성공률이 높아졌지만, 난임 환자 규모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며 “결혼을 비롯해 아이를 가질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초저출산 문제가 쉽게 해소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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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난임 시술이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는 점이다. 정부가 집계한 난임 시술 성공률은 인공수정이 18.9%, 체외수정은 32.8% 수준이다. 더구나 주어진 조건이 개인별로 천차만별이라 체감 성공률은 이보다 낮을 것이란 게 현장 의료진의 공통된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난임 병원 전문의는 “현장에서 실제로 진료를 해보면 성공하는 사례는 난임 시술 한번 만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고, 한번 실패한 경우엔 수차례 시도해도 임신이 성공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며 “난임이 확실치 않은데 병원을 찾은 난임 환자를 제외하면 성공률은 더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난임 시술의 성패는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보고 있다. 생명의 탄생은 현대 의학으로도 여전히 풀어내지 못한 측면이 많아 단언하긴 어렵지만, 난임 부부들의 연령이 중요하단 것이다. 대한산부인과학회에서는 여성의 가임력(可姙力)이 20대를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35세 이후 급격히 감소하는 것으로 본다. 40세 이후부터는 임신 확률이 10% 미만으로 떨어지고, 45세 이후엔 1% 미만으로 낮아진다고 분석한다. 남성 역시 45세를 넘어서면 임신 성공률을 낮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구승엽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난임 시술은 한 사람만 치료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부부 양쪽의 상황에 따라 성공 확률이 달라지기 때문에 결과도 통계처럼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며 “난임 환자 입장에선 시술 한 번이 더 간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난임 시술에 나선 부부들이 느끼는 시간 압박은 상당하다. 2개월 안팎의 시간이 필요한 난임 시술을 반복하다 보면 예비 산모의 신체적·정신적 부담이 커지기 마련이라 난임 시술을 시도해 볼 기회가 제한적인 탓이다. 난임 시술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임신 성공률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휴식 혹은 치료 기간은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난임 부부들 사이에선 시술에 서너 번 실패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살 더 먹는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씨와 같은 병원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결혼 8년 차 한지희(39)씨는 “난임 시술에 실패할 때마다 나이는 먹고, 그만큼 성공 확률은 낮아지기 때문에 제발 이번 시술 한 번에 되도록 하늘에 빌 정도”라고 말했다. 대기 시간이 길더라도 난임 부부들이 조금이라도 유명한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자체별 시술비 지원 소득 기준 제각각

이렇게 한시가 급한 난임 부부들을 지원한 방법은 없을까. 난임 부부들은 난임 치료 휴가를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난임 시술을 받으려는 직장인은 현재 연간 최대 3일(유급 1일, 무급 2일)의 난임 치료 휴가를 요청할 수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단 반응이다. 가령 비교적 간단한 난임 시술인 인공수정 시술만 하더라도 시술 전 초음파 검사와 시술, 결과 검사 등을 위해 매번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체외수정 시술에 나설 경우엔 이보다 자주 병원을 찾아야 한다. 난임 시술을 몇 번 받으면 휴가를 모두 소진하기에 십상이란 얘기다. 실제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난임 치료 휴가가 충분하다는 답변은 응답자의 6.1%에 불과하다. 난임 시술을 받다가 퇴사했다는 응답자 가운데 59.3%는 ‘난임 시술을 위해 계속 개인 휴가를 사용하기 어렵거나 사용할 수 있는 휴가제도가 없어서’ 퇴사를 결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역 난임센터에서 만났던 김보은씨도 연차를 이미 모두 소진한 상태였다. 공기업에 재직 중인 김씨는 다행히 회사에서 난임 치료를 휴직 사유로 인정해 준 덕분에 계속해서 난임 시술을 받고 있다. 김씨는 “회사에 휴직계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난임 병원에 오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지원금도 중요하지만, 병원에 갈 시간이 없으면 난임 부부들은 임신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씨와 같은 병원에 대기 중이던 또 다른 직장인 김미선(33)씨도 “난임 치료 휴가 3일로는 난임 시술을 진행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며 “난임으로 휴직하지 못하면 퇴사밖에 선택지가 없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난임 치료 휴가 확대에 나서는 상황이다.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난임 치료 휴가 기간을 6일로 늘리는 내용을 담은 관련 법률 일부개정안을 심의·의결한 바 있다. 난임 치료 휴가 확대는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실패 우울증·스트레스 막을 상담 필수

난임 부부들을 힘겹게 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난임 시술이 길어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비용도 부담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난임 시술비용은 회당 평균 180만원가량이다. 한 번에 난임 시술에 성공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시술을 거듭할수록 부담은 두배 세 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반면 국내 난임 부부들의 평균 난임 시술 시도 횟수는 7회가량이다. 난임시술을 통해 아이를 가지려면 평균적으로 1360만원가량이 든다는 얘기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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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지자체에선 난임 시술 비용 지원을 확대하는 상황이다. 가령 서울시에서는 지난 7월 난임 시술 지원을 확대했다. 소득에 상관없이 시술비를 지원한다. 문제는 지역별로 지원이 다르다는 점이다. 난임 시술비 지원 사업이 지난 2022년 지자체로 이양된 탓에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지원 여부가 갈리는 것이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인천시와 부산시, 세종시 등은 소득 규모와 상관없이 난임 시술비를 지원하는 반면 일부 지자체는 여전히 중위소득의 180%(2인 가구 622만2000원)를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서울에 사는 난임 부부는 시술비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만, 전북 전주시에서 온 김보은씨는 지원 대상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난임 시술을 받는 부부들에게 차등 없이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난임 시술 시도 자체가 아이를 낳을 의지를 증명하는 만큼, 효과가 불분명한 저출산 지원 정책보다 난임 시술 지원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더구나 주거 지역의 차이 때문에 지원 여부가 갈리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는 보고서를 통해 “난임 부부 시술비 지원사업이 지방으로 넘어가면서 재정부담과 지자체 선호도 등에 따라 지원 혜택에 편차가 발생한다”며 “난임은 지역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인 문제인 만큼 저출산 대응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간과 비용 부담을 덜어주면 난임 부부들의 어깨가 가벼워질까. 전문가들은 가장 중요한 건 난임 부부의 건강 상태라고 지적한다. 난임 시술을 거듭하다 보면 예비 산모 대부분이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데 이런 상황은 간과되고 있다는 것이다. 구승엽 교수는 “선진국 난임센터의 경우 심리상담전문의가 필수인력으로 배치돼 있거나 시술 전 상담을 법으로 의무화하고 있다”며 “난임 치료의 성과에 있어 심리적 안정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난임 시술을 거듭할수록 예비 산모가 우울증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자신감이 사라지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게 시작이고, 심각하면 난임 시술과 관련 없는 일들도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1년간 난임 시술을 쉬다가 최근 다시 강남의 한 난임병원을 찾았다는 곽모(41)씨는 우울증을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곽씨는 “실패가 거듭되면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며 “석 달 만에 체중이 10㎏ 이상 늘었는데, 그럴수록 사람들을 피하게 돼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시술을 멈췄다”고 말했다.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난임·우울증상담센터 센터장은 “체외수정 시술 여성의 80.1%가 우울증이나 감정 기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아이를 더 낳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부부의 행복이 목표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배아 추적·유산 치료 등 한국 난임 의료 세계 최고…체외 성숙배양으로 암 투병 중에도 임신·출산 가능

17.5%. 세계보건기구(WHO)가 추적 조사를 통해 추정한 전 세계 난임 인구 비율이다. 1990년부터 2021년까지 전 세계 성인 인구 여섯 명 중 한 명은 난임을 겪어봤다는 뜻이다. 고소득 국가(17.8%)와 저소득 국가(16.5%) 간 차이도 크지 않다. 한국의 난임 인구 비율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집계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성인 여성의 15~20%가량이 난임으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국가 소득 규모나 환경과 상관없이 전 세계 누구나 난임으로 고통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의료계에선 특별한 이유 없이, 혹은 일시적인 원인으로 1년 이상 임신에 성공하지 못한 경우 난임으로 판정한다. 원인으론 남성의 경우 호르몬 이상이나 고환염, 전립선염 등이 꼽힌다. 여성은 난소 기능 저하, 다낭성 난소 증후군, 배란 장애, 난관 손상 등이 지목된다. 난임 치료는 이런 원인을 해소하는 데서 출발한다. 예컨대 남성의 전립선염이 원인이라면 이를 치료한 뒤 임신을 시도하는 식이다.

원인이 불분명하거나 완전한 치료가 어려울 경우엔 인공적으로 생식 과정을 유도하는 보조생식술이 대안이다. 난임 병원을 찾은 환자들 사이에서 시술의 첫 단계로 여겨지는 인공수정이 대표적이다. 인공수정은 여성의 배란기에 맞춰 배우자의 정액을 채취한 뒤 질 좋은 정자만을 추려낸 뒤 여성의 자궁 속으로 직접 주입하는 방법이다. 인공수정의 임신 성공률은 15% 수준이다.

인공수정은 난임 환자에게 부담이 적다는 게 장점이다. 초음파검사 등 준비 과정을 제외하면 실제 시술 시간은 10분가량이다. 자연임신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난관(나팔관)에서 수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임신에 성공한 뒤엔 자연 임신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다만 여성의 난관 양쪽이 모두 막혔다면 시술이 불가능하다. 흔히 나팔관이라 부르기도 하는 난관은 배란된 난자와 정자의 이동통로인데 한쪽이라도 뚫려 있어야 수정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엔 체외수정이 대안이다. 체외수정은 말 그대로 난임 부부의 난자와 정자를 몸 밖에서 수정시켜 자궁에 이식하는 시술이다. 채취한 정자와 난자를 시험관에서 수정·배양하기 때문에 흔히 ‘시험관 아기 시술’로 불린다. 인공수정보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성공률은 상대적으로 높다. 체외수정을 통한 임신 성공률은 통상 30~35% 수준으로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보고돼 있다. 최근에는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중증 자궁내막증이나 골반 내 유착, 자궁기형 등으로 임신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도 체외수정을 활용하는 상황이다.

난임 치료 분야에서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졌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유명 난임병원들의 경우 보조생식술을 통한 출산 성공률이 60%가량으로 알려졌다. 실시간으로 배아 발달을 확인하는 배아 발달 추적 선별 시스템과 반복 유산 환자들을 위한 면역 치료 등에서도 한국은 난임 의료 선진국으로 꼽힌다.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엔 불가능했던 임신과 출산도 가능해졌다. 예컨대 암 투병 중인 난임 환자의 경우 미성숙난자 성숙배양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사전에 미성숙난자를 채취해 체외에서 성숙시킨 뒤 배양하는 것이다. 방사선·화학 치료를 받을 경우 난자에도 영향을 받는 탓에 기존에는 아이와 암 치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다낭성난소 증후군으로 난자 채취가 어려운 난임 환자들도 이 기술을 통해 도움을 받는다. 미성숙난자를 활용한 임신과 출산 분야에서 가장 앞선 곳은 차병원으로 이미 1989년에 첫 시술에 성공했다.

유전자분석 분야에서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술은 착상전유전검사다. 체외수정에 앞서 유전자 검사를 통해 건강한 배아만 선별해 내는 것이다. 이렇게 선별 과정을 거쳐 이식하면 불가능에 가까웠던 41세 이상 여성의 임신 성공률도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41세 일반적인 체외수정의 성공확률은 25%가량이다. 그러나 착상전 유전검사를 활용하면 성공확률은 50~60%까지 높아진다는 게 난임 전문의들의 분석이다.

황건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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