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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조 쏟고도 출산율 추락, 낳고 싶은 부부 지원 확 늘려야 [난임 부부의 눈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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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0호 10면

SPECIAL REPORT

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에 불과하지만 내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여전하다. 지난 8월 17일 다양한 임신·출산용품과 유아 교육용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제37회 대구 베이비&키즈 페어’에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뉴스1]

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에 불과하지만 내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여전하다. 지난 8월 17일 다양한 임신·출산용품과 유아 교육용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제37회 대구 베이비&키즈 페어’에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뉴스1]

322조원. 그러나 0.78명. 2006년 저출산 제1차 기본계획 이후 현재까지 저출산 대응 예산액은 322조원이다. 이 예산은 해마다 증가해 지난해 50조원을 넘겼지만 같은 해 합계출산율은 0.78명, 출생아 수는 24만명에 불과하다. 이는 1991년 합계출산율 1.71명 절반이자, 출생아 71만명의 3분의 1이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저출산을 극복하려 노력하지만 예산이 효율적으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골프로 치면 미스샷, 노래로 치면 엇박자가 이어진 것이라는 지적이다.

결혼·출산 연령이 높아지면서 난임 치료 건수가 지속해서 늘고 있다. 하지만 난임 치료에 대한 제도적 지원은 현실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1990년 남자 27.8세, 여자 24.8세이던 평균 초혼 연령은 2022년엔 남자 33.7세 여자 31.3세까지 올랐다. 한 세대 만인 32년간 6~7세 늘었다. ‘아홉수’라며 29세에 결혼을 할까 말까를 고민할 필요도 없게 됐다. 한국의 결혼 평균 연령 상승은 출산 연령에 영향을 미친다. 다른 선진국도 출산이 늦춰졌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가파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22 한국 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초산 평균 연령은 1993년 26.23세에서 2020년 32.30세로 27년 만에 6.07세 올랐다. 같은 기간 미국은 2.7세(24.4→27.1세), 영국은 3.3세(25.8→29.1세), 일본은 3.5세(27.2→30.7세) 올랐다. 임신 준비 시기가 늦어지면 난임의 어려움도 늘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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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내놨다. 그러나 최근 출산율의 지속적인 감소세를 고려하면 효과는 전무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 예산정책처(예정처)에 따르면 ‘예산 규모 자체는 커졌지만, 내실 있는 지원은 줄었다’는 분석이다. 예정처는 그 이유 중 하나로 ‘저출산 대책 예산의 범위가 너무 넓어졌다’고 보고 있다. 가령 2006~2015년(제1~2차 기본계획)은 출산 및 양육 지원 사업과 관련한 예산이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2016년도부터는 환경조성(청년 일자리, 맞춤형 돌봄, 주거 지원 등 사회문화 전반)과 관련한 간접적 지원 형태의 예산이 포함됐다. 저출산 예산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직접적인 출산 양육·지원 예산(난임지원이나 아동수당, 보육수당 등)은 증감을 반복하는 등 제자리걸음이다. 예정처는 “주거 지원 사업은 대부분 융자사업으로, 사실상 경제적 지원은 이자 비용에 대한 경감분으로 실제 사업 예산의 극히 일부”라고 지적했다. 환경조성 분야가 저출산 예산에 포함되기 시작하면서 늘어난 금액 대다수가 ‘직접’보다는 대출을 지원해 이자율을 줄이는 등의 ‘간접’ 지원 예산이라 단순 수치로 판단하기에는 부풀려진 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난임 치료를 앞둔 부부들은 속이 탔다. 경제적 장벽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2년째 난임 치료를 받고 있는 정민주(35)씨는 “난임 치료를 하면서 한 번의 시험관 시술을 위해 산모는 병원에서 주사를 하루에 두 차례 맞아야 하고, 집에서도 많은 경우 100번을 스스로 주사를 놔야 하는 경우도 있다”며 “그 과정도 두 달 이상 걸려 일상생활을 하기도 힘들지만, 아이는 낳고 싶다”고 말했다. 정씨는 또 “그렇게 아이를 간절히 낳고 싶은데 정부에서 조금 더 도와줄 수 없나”고 호소했다. 이는 정씨 부부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난임 부부가 겪는 어려움이다.

난임 치료를 위한 소득 제한을 폐지한 서울에서도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의 난임 부부는 시술 1회당 20만~110만원씩 총 22회에 걸쳐 지원을 받을 수 있다. 5년 만에 난임 시술을 통해 임신에 성공한 직장인 최윤영(38)씨는 “난임 시술은 종류별로 회당 400만원 가까이 들고 시술을 이어갈수록 회당 비용도 더 드는데 최대 110만원의 지원은 옹색하다”며 “많은 부부가 우리처럼 수천만 원의 비용을 치를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2021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최근 5년 내 난임 시술을 받은 만 18~50세 기혼 여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난임 치료에 1000만원 이상(정부·지자체 지원 제외)을 지출했다는 응답자가 35.9%에 달했다.

최씨는 또 “회사에 휴가 내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라고 전했다. 현행법은 근로자가 인공수정 또는 체외수정 등 난임 치료를 받기 위해 휴가를 청구하는 경우 사업주는 연간 3일 이내의 휴가를 부여하고, 최초 1일은 유급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난임 치료자 중 52%가 21일 이상 치료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부부가 난임 치료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저출산 문제 해결의 방편이라고 말한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난임 부부들에게 직접적인 지원 금액을 늘리고 지원 절차 간소화가 필요하다”며 “난임 치료 기간은 1회 기준으로 인공수정이 약 5일, 체외수정이 약 6일 소요되는데, 난임 치료 휴가의 기간을 현실에 맞춰 연장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민아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난임 지원과 함께 아이를 낳고 일을 이어갈 수 있는 유연한 노동구조를 정착시키는 것이 근본적인 도움을 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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