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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창틀에, 간판글씨에 멋이 흐른다...골목골목 만나는 역사와 미학[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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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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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학자의 현대 한국 답사기 1·2
김시덕 지음
북트리거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왔는지.’ 동물원의 노래 ‘혜화동’의 한 소절이다. 도시 답사가를 자처하는 저자 김시덕의 이 책 『문헌학자의 현대 한국 답사기』는 ‘우리가 잊고 사는 그 길’에 대한 이야기다.

고고학(考古學)과 대비되는 고현학(考現學)은 그의 답사를 안내하는 이론적 나침반. 돌멩이 하나 허투루 다루지 않는 고고학자처럼 그는 간판, 화단, 창살, 대문, 아파트 급수탑, 계단, 중국집 메뉴판, 골목 언저리의 화단 등 일상의 배경이 되는 부스러기 같은 정보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지역별로 개성을 드러냈던 간판 글자체에는 ‘범영등포체’, ‘을지로체’, ‘신당5동체’ 등의 이름도 붙였다.

저자가 2019~2020년 여러 도시 곳곳에서 촬영해 책에 수록한 다양한 창문 사진 중 일부. 이런 창틀에서도 저자는 '시민 예술'을 발견한다. ⓒ김시덕

저자가 2019~2020년 여러 도시 곳곳에서 촬영해 책에 수록한 다양한 창문 사진 중 일부. 이런 창틀에서도 저자는 '시민 예술'을 발견한다. ⓒ김시덕

특히 거리 풍경과 건물 구석구석을 담아낸 수백장의 사진은 때론 저자의 글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다양한 디자인의 창살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어린 시절 친구와 뛰어놀던 그 골목, 그 집 앞이 아련해진다.

책은 농촌이 산촌과 어촌을 잠식하고, 다시 산업지대가 농촌을 흡수하는 과정을 통해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를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이를 공업도시 울산, 도농복합도시 조치원 등을 통해 생생히 보여준다. 1960년대 이후 서울 화곡동·불광동·방배동 등에 지어진 단독주택이 ‘문화주택’이라는 이름이었고, 그 역사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도 책을 통해 알게 된다.

2권은 대전역 인근, 생산도시로 변모하는 광주, 경북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 서울 방배중앙로, 강원 영월 광산촌, 미군 위안부 기지촌 등을 둘러보는 답사기로 이어진다. 책의 각 장에 QR코드가 있다. 휴대폰으로 연결하면 책이 서술하는 곳의 지도가 나온다. 다음 연휴 땐 늘 가던 관광지 대신 이런 곳을, 예컨대 경북 영주라면 부석사뿐만 아니라 영주역 주변의 관사촌, 영주동의 근대 한옥, 풍국정미소 같은 곳을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저자는 『서울 선언』, 『갈등 도시』, 『대서울의길』 등 왕성한 저작 활동을 해왔다. 팟캐스트나 유튜브에서 강연으로도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일주일에 서너번 도시 곳곳을 촬영하고 기록한다는 그는 독자들도 주변의 일상을 스스로 기록하는 탐험가가 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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